과학의 가치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해석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다른 학생들은 “기하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첫째 부류의 학생들은 “공간에서 관조하기”를 할 수 없고, 둘째 부류의 학생들은 기나긴 계산에 금세 싫증을 느끼고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두 종류의 심리는 과학의 진보를 위해서는 똑같이 필요하다. 논리파와 직관파 모두는 다른 이들이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업적을 이뤄 왔다. 누가 감히 바이어슈트라스의 저작이 별 볼 일 없다거나 리만이 하찮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분석과 종합은 각각 나름의 역할이 있다. 그래서 과학사에서 이 둘의 역할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과학의 가치≫, 앙리 푸앵카레 지음, 이정훈 옮김, 9쪽
해석적 접근이란 무엇인가?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 페이지에 이르는 논문을 쓰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림이 없이 산술로 개념을 해석해 엄밀함을 부여한다. 독일의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가 그 예다.
기하학적 접근은 또 뭔가?
엄밀한 증명 없이 대략적인 개요만을 가지고도 자신이 발견한 것을 망설이지 않고 발표한다. 일단 이해하면 망각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개념을 해석하고 창조한다. 리만기하학을 확립한 베른하르트 리만이 예다.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없는가?
푸앵카레는 인간이 누구나 둘 다 지니고 있다고 했다. 다만 직관을 해석을 중시하는 순수 수리 직관과 기하를 중시하는 감각 가능 직관으로 구분하고, 성향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 성향은 변하기도 하나?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다른가?
고대의 연구들을 보면 그때의 연구자들은 다들 직관파인 것 같다. 반면 현대에는 논리가 발달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런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고대의 사고 흐름에 몸을 맡기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많은 기하학자들이 실은 해석파의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유클리드의 업적도 동시대인들이 결함을 찾을 수 없는 논리파의 것이다.
오늘날과 옛날의 견해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물을 보는 아이디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엄밀성과 확실성을 추구하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고, 직관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이런 진화가 현대 수학의 엄밀성을 만들었다.
푸앵카레는 누구인가?
20세기 초 최고의 수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수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밀레니엄 문제인 ‘푸앵카레 추측’이 그의 것이다. 논리보다는 직관으로 이론을 전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
‘과학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의 답은 무엇인가?
과학의 가치는 과학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과학 자체에 과학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과학은 유용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에 유용하다는 뜻이다. 예술처럼 미학적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과학 활동 자체에서 가치를 찾는다.
과학자가 순수한 흥미로 연구를 한다는 말인가?
과학자는 별자리들의 거대한 이동 경로를 즐겁게 추적한다. 현미경으로 거대하고도 경이로운 미시세계를 탐구한다. 아득하고 매혹적인 과거의 자취를 찾아 지질시대를 탐구한다. 그것들이 모두 아름답기 때문이다.
과학이 그 자체로 진리인 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도움이 되나?
천문학을 예로 들겠다. 아무 의미 없이 정부 예산을 낭비하는 값비싼 과학으로 보이겠지만, 천문학의 발달이 과학혁명을 불러왔고 인류는 무지로부터 지성으로 나아갔다. 결국 과학이 인류를 진보시킨 것이다.
과학이 악용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나?
그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세계대전 전까지의 평화와 번영의 시기, 즉 벨 에포크를 살았기 때문에 생겨난 낙관주의 과학관이다. 오늘날 과학의 올바른 목적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정훈이다. 화학과 과학사를 전공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2793호 | 2015년 11월 11일 발행
과학자는 왜 과학하는가?
이정훈이 옮긴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의 ≪과학의 가치(La Valeur de la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