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북스닷컴의 혁신
1.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업모델
2.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3. 다품종 소량생산의 테크놀로지
1.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업모델
2014년 10월 컴북스닷컴의 엄진섭 상무가 작은 매체와 인터뷰합니다. 그런데 이 인터뷰가 하루 만에 페이스북 공유 3230회를 넘어서더니(2015년 7월 현재는 8.25k) <오늘의 유머>
베스트오브베스트에까지 입성합니다.
“정말 멋진 출판사”, “미래를 내다보는 혁신 기업”, “좋은 철학”이란 찬사가 있는가 하면, “우웩”,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지옥 같은 출판사”란 비판도 있습니다. 무엇이 이렇듯 기묘한 반응을 불러왔을까요?
궁금하시다면, “돈 벌 생각이 없는 이상한 출판사 컴북스 이야기”를 만나 보시죠. 솔직한 컴북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미디어토핑에 실린
라즈베리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돈 벌 생각이 없는 이상한 출판사 컴북스 이야기 인터뷰 전문>
인터뷰어 라즈베리, 인터뷰이 엄진섭
컴북스의 책을 볼 때마다 이 회사는 도대체 돈 벌 생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딱 봐도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주구장창 내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하던 참에 마침 컴북스의 엄진섭 상무를 만나 묵은 궁금증을 풀 기회가 생겼다. 놀랄 준비들 하시라. 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다음은 엄 상무와 일문일답.
도대체 1년에 몇 권이나 책을 내는 건가.
컴북스가 1998년부터 올해 8월까지 낸 책이 모두 2646종이다. 자매 브랜드로 지식을만드는지식이 있는데 여기에서 2008년부터 올해 8월까지 1527종, 그리고 지식공작소와 박영률출판사, 학이시습이 각각 122종과 23종, 158종씩이다. 다 더하면 4292종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1년 동안 567종을 낸 셈이다.
직원이 몇 명인데, 한 사람이 몇 종씩 만드는 건가.
지금은 46명이다. 편집부가 25명 정도다. 보통 다른 출판사들은 한 사람이 1년에 4~5종을 내는데 우리는 1년 평균 20종에서 많게는 30종을 만든다. 애초에 생산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년에는 기획물 3종(한국희곡선집 100종,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100종, 외국인을위한한국어읽기 100종)이 있어 특별히 더 많았다.
한 편집자가 한 달에 두어 종을 만든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일단 불필요한 공정을 최소화한다. 보통 다른 출판사들은 쿽이나 인디자인을 많이 쓰는데 아래아한글을 쓰면 저자와 편집자, 디자이너가 같은 파일로 작업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전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준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맥으로 작업을 하면 통째로 출력을 해서 퀵으로 쏘고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교정을 하면 교정지를 다시 받아서 누군가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그걸 또 다시 제대로 입력했는지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도구를 한글로 통일하면 그냥 파일로 주고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디자인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책의 본질적인 역할과 내용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콘텐츠의 힘을 믿고 최대한 심플하게 간다. 일하는 방식도 개선한다. 8시 출근해서 1시에 점심을 먹는데. 오전에는 회의를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8시부터 1시까지 집중적으로 몰아서 일을 한다. 이게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안 팔릴 것 같은 책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이유가 뭔가.
우리는 책을 낼 때 세 가지를 본다. 콘텐츠의 전문성과 독창성, 소통성. 세 가지가 되면 출판을 한다. 시장성은 안 본다. 요즘은 초판을 1000부만 찍는 데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초판을 최소 60부만 찍을 때도 있었다. 주문형 출판(POD, Print on Demand)이 가능하기 때문에 팔릴 만큼만 찍는다. 적은 부수라도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 물론 가치만큼 가격을 매긴다.
정말 돈 벌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는 돈 버는 데 관심 많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이익보다는 더 많은 책을 만드는 게 목표다. 베스트셀러 하나 만들어서 1억 원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니라 100만 원짜리 100개, 1000개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희곡선집 100종짜리도 만들고 한국동화작가선집 100종짜리도 만든다. 아즈텍 문명의 두루마리 책을 번역하고, 스와힐리어 구전 문학이나 베트남, 태국의 고전도 만든다. 보통 출판사들은 최소 3000부 정도 팔릴 책을 만들지만 우리는 200부 팔릴 것 같은 책도 만들고 100부 팔릴 것 같은 책도 만든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 한 사람이 1년에 네 권을 만든다고 치면 이미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대 이익도 높게 잡을 수밖에 없다. 인건비라도 뽑으려면 3000부는 팔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에 기대 이익이 높지 않다.
싸게 만드니까 많이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이해해도 되나.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고 우리가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한국 출판 시장이 안 팔리는 책은 낼 수가 없는 구조다. 특히 인문학이나 학술도서의 경우 기껏 열심히 책을 써도 돈을 벌기는커녕 인세 대신에 몇 백 권씩 저자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꼭 내야 하는 좋은 책들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고민 끝에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시스템이다. 우리는 편집과 제작, 유통 모든 과정에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비용을 절감한다. 빡빡하게 방법을 찾아서 수입과 지출을 맞추면서 모든 이익을 새로운 타이틀 출간에 쏟아 붓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익이 나면 그 이익을 다시 투자한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익이 나본 적이 없다. 번만큼 지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시장 상황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는데 그 예측만큼 지출을 하고 매출에 맞춰서 쓰기 때문에 이익이 거의 안 났다. 주식회사가 아니라 사장 개인 회사고 사장도 월급만 받고 배당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이런 구조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롱테일 출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익 분기점을 넘는 책이 비율로 따지면 얼마나 되나.
계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 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는 애초에 접근 방법이 다른 게, 앞으로 100년을 팔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이 많다. 당장 별로 안 팔려도 꾸준히 팔면 언젠가는 손익 분기점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올해 안 팔면 내년에 팔고 후년에 팔고 10년 뒤에도 팔 수 있다. 그게 전문서와 고전의 매력 아닌가. 베트남 고전 같은 것, 찾는 사람들이 적지만 꾸준히 있다. 수익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지만 사실 손해 보는 책도 거의 없다.
발행 종수가 많으니 관리하는 것도 일이겠다.
큰 일이다. 우리는 초기부터 모든 작업 파일을 PDF 파일로 만들었다. 재고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꺼내서 제작해서 배송하기도 한다. 다른 출판사들보다 배송에 시간이 좀더 걸리긴 하지만 독자들도 양해해 주는 것 같다.
직원들 성과 평가는 어떻게 하나. 잘 팔리는 책 기준도 아닐 거고.
종수로 판단한다. 많은 종을 내는 직원이 그만큼 일도 잘 한다고 본다. 아무 책이나 막 내는 거 아니냐고? 편집회의를 통과한 책만 출간이 되기 때문에 일단 출간이 되는 책은 어느 정도 기획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편집회의에서 아웃되는 경우가 50~70%까지 된다.
출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뭔가.
‘돈이 될 것 같다’도 아니고 ‘손해 안 날 것 같다’도 아니고. 이를 테면 위험관리를 주제로 한 기획이 들어왔다고 치자. 전문 영역은 기존 체계나 범주가 있다. 우리에게 초급 이론서는 있는데 사례집이 없다, 그러면 고급 이론서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보완해서 사례집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한다. 저자에게 사례를 50%에서 70%까지 늘려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한다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이런 게 나왔으니 한 단계 올려서 전문서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편집자들도 전공자고, 계속 트레이닝을 시킨다. 그래서 일반 출판사보다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덜 까다롭고 빠르다.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동기 부여를 하나.
거창하게 문화운동을 한다, 뭐 이런 건 아니고. 우리는 보통 출판사라고 했을 때 드는 나이브하고 자유로운 느낌보다는 좀 더 프로패셔널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엄격하게 령(令)이 살아 있고, 다른 출판사에 다니다 온 경력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출판사는 파벌도 없고 일하는 것 말고 다른 건 할 시간도 없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고들 한다. 일단 윗선부터 바빠서 파벌 같은 걸 만들 여유가 없다. 직위가 높을수록 일이 많고 힘들다.
여하튼 독특한 형태의 사업모델이다. 외국에도 이런 출판사 모델이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한국 출판시장이 너무 비좁다고 하지만 우리는 출판사들 밀어내기식 관행과 한탕주의식 기획에 의존하는 문화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생존 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적어도 우리는 굶어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2.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좋은 책은 독자에게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독자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독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는 독자의 수만큼 많은 기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출판 기준의 상대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또는 이런 사고방식은 실제로는 출판 기준에 대한 불가지론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어떤 책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독자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대답은 틀리지 않은 답입니다. 정답입니다. 그래서 우리 출판사는 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독자에게는 도움이 되는데 다른 독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아!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당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출판의 기준에 대한 논란과 논의는 항상 이 지점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왜 한 권의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가?” 질문 같지도 않은 이 질문이 지난 백 년 동안 출판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먹구름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큰 의미는 없는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말입니다. 가장 심각한 오류는 이런 질문이 정당하게 들리는 때에 발생됩니다. 곧, “왜 이 출판사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 따위 내용을 책이라고 출판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참으로 참담한 질문입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출판사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 책을 절실히 원하는 다른 분을 위한 책입니다.”
그러니 이 따위, 저 따위 하는 표현은 삼가시길.
출판사의 이런 대답에 대해 비난자가 자신의 주장을 계속 강화하려면 이런 질문을 날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들은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책을 만드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출판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세상에는 함께 살아가야 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답니다. 당신 빼고도요.”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를 커뮤니케이션 전문 출판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출판사는 그동안 신문방송학 전문 출판사라는 오해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언론학 전문출판사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를 커뮤니케이션 전문 출판사라고 불렀습니다. 언론학이나 커뮤니케이션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공부 더 하시라고 대답할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두 단어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이 출판사는 최소한 오십 년 앞을 내다보고 자신들의 출판 주제를 결정했다. 이 출판사는 앞으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의 책을 출간할 것이다.”
3. 다품종 소량생산의 테크놀로지
1998년 강력한 경쟁 출판사를 상대하기 위해 컴북스가 취한 전략은 다품종 소량생산입니다. 2000년 창립 2년 만에 100종을 출간했고, 7년 뒤에 1000번째 책을 발간합니다. 2015년 현재 컴북스의 공식 출간종수는 4896종(전자책, 큰글씨책, 오디오북 포함 9182종)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비밀은 없습니다. 컴북스가 실행으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피오디 출판을 연구하고 개발했습니다. 절판 없이, 더 많은 책을, 더 빠르게 출판하기 위해 피오디를 도입했습니다. 2012년 박영률 사장이 ≪출판연구≫ 봄호에 실은 글, <피오디 출판의 현실과 가능성>을 통해 출판제작 유연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만나 보시죠.
<피오디 출판의 현실과 가능성>
출판은 변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출판은 물질에서 정보로 자리를 크게 바꿨다. 변화의 출발점은 편집과 디자인이었다. 나는 1988년에 매킨토시 컴퓨터와 쿽 익스프레스 편집 도구를 이용해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에 매킨토시용 필름 출력기가 없을 때였다. 필름을 출력할 수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반투명 용지를 프린터에 넣어 출력한 뒤 제판 작업을 통해 인쇄용 필름을 제작하곤 했다. 몇 해 뒤 필름 출력기가 가동되고부터는 요즘처럼 인쇄용 필름의 제작이 쉬워졌다. 그 뒤로는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자들도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썼다. 한동안 디스켓을 받아 편집을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피시 통신을 이용해 원고 파일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뒤를 강력한 인터넷이 이었다. 지금은 구름 같은 저장고에 원고를 보관한 채 필자와 편집자가 동시에 글을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한다. 많이 변했다.
변화는 출판 유통에서 더욱 크게 일어났다. 1995년에 미국에서 아마존닷컴이 문을 열었다. 인터넷을 이용해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어린 서점은 미국에서 가장 큰 서점이 되었다. 책의 수와 판매량에서 이 서점을 따라잡을 경쟁자는 당분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서점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할인 경쟁을 통해 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이 원하는 책을 확인하고 주문하고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을 알아챈 고객들은 동네 책방을 멀리하고 피시 앞에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에서 매출 규모가 꾸준히 커진 서점은 인터넷 서점뿐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또는 동네 어귀 목 좋은 곳에서 다소곳이 독서가의 방문을 기다리던 재래 서점의 정겨운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참으로 큰 변화다.
이제 더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책의 존재 상태 자체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2011년 미국 출판 시장에서 전년 대비 매출 신장은 오로지 두 분야에서만 확인된다. 전자책과 내려받는 오디오북 분야다. 성인출판물부터 아동출판물까지 전통이 깊은 모든 출판 분야는 매출이 감소되었다. 문제는 신장과 감소에만 있지 않다. 그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전자책 분야가 100퍼센트가 넘는 매출 신장을 기록한 반면 전통 출판 분야는 거의 10퍼센트 이상의 감소를 기록했다. 이런 숫자는 흔히 말하는 역치점, 곧 티핑포인트를 상기시킨다. 출판 산업은 이제 과거의 문을 닫고 미래의 문을 여는 전환점에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존재 상태의 변화는 인쇄종이로부터 전기시현으로 진행된다. 전자책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출판사가 독자에게 제공하던 상품 요인, 곧 종이와 인쇄는 이제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전자정보를 재현할 수 있는 전기 장치를 고객인 독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출판은 종이와 인쇄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독자가 충분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출판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나 종이에 인쇄된 책을 원하는 독자의 수는 전자책을 원하는 독자보다 아직도 훨씬 많다. 전자책의 시장 확장 속도가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시장에서도 전체의 20퍼센트를 넘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아직 5퍼센트가 되지 못한다. 오랫동안 독자들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선택의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랫동안 독자들은 종이책을 구입해 독서의 욕망을 달랠 것이다. 종이와 인쇄는 문자를 보존 전달하는 데 아주 적합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상태의 안정성과 사용의 독립성은 종이책의 수명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유지시켜 줄 것이다. 문제는 종이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공급하는 출판사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출판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종이책으로 출판 사업의 수익을 실현하는 데 새로운 과제가 속속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종이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자원의 비용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반면 종이책의 시장 크기는 작아진다. 급속히 작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원가의 상승과 시장의 축소는 수익을 위협한다. 우리 출판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수요량인쇄’, 곧 피오디(POD, Print On Demand)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상황 인식에 기인한 바 크다. 출판사의 종이책 생산에서 원가의 상승은 시장 수요의 위축과 맞물리면서 단순한 원가 상승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수요의 양과 질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경쟁 미디어의 확산에 의해서 책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더 많은 품종, 더 적은 물량”을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변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개념이 ‘긴 꼬리론(long tail)’이다.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지식 문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는 점점 더 다양해진다. 그에 대응하는 상품 마케팅 전략은 다품종 소량 판매로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은 검색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서점이나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출판에서도 이런 현상은 더 많은 타이틀을 보다 적게 판매하면서 수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과제로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서 원가와 수익에 대한 출판사의 시각에도 큰 변화가 요구되었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이전에 출판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책 권당 원가와 총 판매 부수였다. 원가는 낮을수록 좋았고 책은 많이 팔수록 좋았다. 자본 회전율은 총자본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주요 요인이므로 많은 종류의 책을 오래 파는 것보다는 적은 종류의 책을 빨리 파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장의 흐름이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고객은 점점 더 다양한 타이틀을 찾고 있으며 타이틀당 판매 부수는 경향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고객의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고객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거나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허사다. 공급자가 수요자의 욕구에 부응하지 않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급자는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쉽지 않다. 많은 품종과 적은 판매 부수는 원가를 상승시키고 수입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오디가 대안으로 등장한다.
결국은 손실을 초래할 것이 아닌가?
책 한 권에 대한 단가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타이틀당 총 생산비용으로 원가 개념을 바꿀 수만 있다면 생산 단가가 높은 이 새로운 인쇄 제작 방식이 출판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판매 부수의 경향적 감소는 가격의 경향적 인상으로 대처한다. 정리하자면 책 한 권당 단가는 올리되 총 생산비용은 낮추는 방향으로, 타이틀 판매 부수는 떨어지더라도 총 수익은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책의 원가를 일시 제작에 발생하는 총비용으로 계산하지 않고 주문에 대응해 제작되는 한 부 한 부의 단가로 계산하면 출판 이익 계산 방식에서 큰 변화가 발생한다. 종래의 대량 일시 제작은 원가의 보전이 언제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주문에 대응하는 ‘수요대응제작’ 방식에서는 언제 얼마의 수익이 발생되어 권당 이익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가 명료해진다. 제작 방식의 변화가 출판사 이익 관리의 기초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극적인 전환에서 피오디는 지렛점으로 작용한다.
피오디는 타이틀당 제작 부수의 유연성이 뛰어나다. 출판사가 사용해 온 종래의 인쇄 방식과 비교할 때 이 새로운 방식의 제작 부수 유연성은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 부를 제작할 때의 원가와 만 부를 제작할 때의 권당 단가가 동일하다면 출판사는 제작 부수 결정에 신중해진다. 이러한 신중함은 백 부 단위나 천 부 단위의 판단에서 벗어나 열 부 단위 또는 한 부 단위의 판단을 가능케 한다. 출판사가 제작 부수의 양을 결정하는 데 신중해진다는 것이 출판사의 비용을 절감시키고 이익을 향상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도 원가는 종래보다 비싸지고 책은 덜 팔리게 되어 있는데 결국은 손실을 초래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생산 총비용일까, 아니면 권당 단가일까? 둘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다른 말일 수도 있다. 만든 책을 모두 팔 수 있는 상황이라면 둘은 같은 말이다. 그러나 만든 책이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이는 상황이라면 둘은 다른 말이다. 현재 우리 출판이 처한 상황은 아무래도 재고가 쌓여가는 쪽이 아닐까? 그렇다면 단가는 높지만 원가 총액은 낮은 쪽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피오디 방식을 채택하는 출판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현금 유동성의 유리함이다. 종래의 인쇄 제작 방식은 대개 1000부 이상을 한 번에 만드는 대량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단가가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총액은 높게 마련이다. 피오디는 한 부 단위의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100부 이하로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일회 생산 시 비용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출판사의 현금 보유량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래의 대량 생산 방식은 대부분의 현금이 종이 인쇄 제본 비용으로 전환된다. 현금은 창고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러나 피오디 방식을 사용하면 잠자는 현금을 깨울 수 있다. 제작 즉시 바로 팔아서 현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현금만 제작 비용에 투입된다. 나머지 자금은 새로운 출판을 위해 보유할 수 있다.
출판사가 책을 현물로 가지고 있는 경우와 새로운 출판을 위한 기획 편집 예산으로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현물 책이 빠른 속도로 판매되어 모두 현금으로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출판사는 새로운 출판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더구나 최근의 시장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품종의 책을 개발해야 하는 사정이라면 그 어려움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거의 모든 출판사가 느끼는 시장 변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판매 예측의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판매량을 예측하기 쉽다고 생각했던 교재성 타이틀마저 예측 불투명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종합적 결과는 ‘교재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교수와 수강생이 확정된 교재가 이 정도라면 독자의 수를 확정하기 힘든 다른 분야에서 판매량을 예측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의 문제가 된다. 출판 시장의 흐름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된다면 실물 자산보다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현금의 유연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물의 고물로의 전락을 막기 위해서 더욱 그렇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출판사가 다품종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타이틀을 많이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타이틀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다품종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 새로운 책을 많이 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실의 절반에 불과하다. 다품종이란 결국 출판사가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이건 오래된 것이건 관계없이 현재 판매할 수 있는 타이틀이 몇 종인가에 의해 다품종과 소품종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때 다품종이라는 말이 소량 생산이라는 말과 짝을 이뤄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말로 쓰인 적이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 출판이 처한 상황에서는 이 단어를 좀더 유연하고 다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말보다 더 현실적인 표현은 다품종소량판매라는 말이 아닐까? 비슷한 말 같지만 생산이라는 단어를 신간 타이틀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많은 타이틀이 품절 또는 절판이라는 상태로 나타나겠는가?
피오디는 절판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출판사가 1년에 100부 이하의 판매 실적을 나타내는 타이틀을 절판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고가 없는 책을 절판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쇄를 제작해야 하는데 기본 제작 양이 1000부를 상회하는 종래의 제작 방식으로는 투입된 제작 비용을 회수하는 데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작에 투입되는 일시 비용뿐만 아니라 재고 유지비용과 자금의 이자 비용을 모두 고려한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손해가 뻔한 소량 판매 타이틀은 절판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피오디를 이용한다면 제작 후 한 달 정도면 적정 이윤이 포함된 수익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주문 양에 따라 제작을 해 출고하고 수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매되는 타이틀의 종당 판매 부수가 많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수가 적지 않은 출판사라면 책의 가격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충분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출판사가 절판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점점 더 중요한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출판사의 수익원이 종이 인쇄 책에 한정되지 않고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물론이고 각종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필요한 콘텐츠의 수요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수요는 책의 물질 요인이 아니라 내용 요인을 원한다. 그리고 내용 요인의 존재 부존재의 판단은 출판사의 운영 타이틀에 의해 결정된다.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책을 절판시켜 버리면 콘텐츠 수요자는 타이틀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출판사의 다양한 수익원은 사장되어 버리고 출판사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절판의 문제는 출판사의 수익성에 의해서만 판단할 일이 아니다. 출판사의 사회적 기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식의 다양성을 지키고 확대해야 하는 출판사 고유의 사회적 기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출판사가 피오디 방식을 이용하는 데 적지 않은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첫 번째 어려움은 가격 정책에 대한 출판사의 경직성이다. 대량 생산 방식에 비해 소량 생산 방식은 권당 단가가 높게 마련이다. 원가가 높아지면 가격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출판사들이 생산 방식을 바꾸면서 가격을 바꾸는 데 인색하다. 특히 출간되고 긴 시간이 흐른 타이틀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오래된 타이틀인데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더 올린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오래된 지식이 새로운 지식보다 더 싸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식이 아니라 정보에 대해서 그 가치를 평가할 때 정보의 신선도와 확산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은 정보와 다른 상품이다. 정보가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효용을 가지고 있다면 지식은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효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보 가치 평가에 적용되는 기준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입장이 너무 공급자 중심의 생산 가격 중심 사고라고 생각한다면 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해 특정 지식의 효용에 대한 대체재의 효용의 사회적 가격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지식의 가치가 시간의 지속 기간에 따라 결정될 이유는 없다. 신간이 구간에 비해 더 비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구간이 신간에 비해 더 싸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출판에 피오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아직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출판은 여전히 종래의 기술적인 환경에 의해 진행된다. 인쇄의 품질이나 판형의 선택, 제작 시간의 지연, 제본과 재단의 문제, 그리고 표지 제작에서 흔히 사용되는 특가공의 한계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피오디 기술이 아직 시장 도입기의 기초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오프셋 인쇄를 통해 가능한 모든 조건을 피오디가 같은 시간에 소화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직 아니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특수 용지를 사용해 제작되는 호화 장정의 특별한 책이 아니라면 책이 전달해야 할 대부분의 시각적인 요인을 재현하고 전달하는 데 피오디가 크게 문제될 점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할 수 있는 글꼴,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의 정세도, 원색의 재현 능력, 소프트커버 제본의 내구성 등은 일반적인 책을 제작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오디의 기술적인 한계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이 있다. 우리 출판이 생산하는 책 가운데 피오디로 만들 수 없는 책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히 불가능한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종래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런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글자와 그림을 평면상에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의 문제는 출판사의 경영 관리의 관습과 피오디 출판 관리 방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우리 출판사의 경험을 살펴보면 피오디 방식을 채택한 이후 제작 건수가 몇 배로 늘었다. 1000부 이상 제작하여 창고에 쌓아두고 주문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는 일회 생산량의 재고 소진 기간은 대개 6개월 정도로 계산된다. 그러나 피오디 방식을 채택하면 현금 유동성을 높이고 현물 재고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재고의 소진 기간은 극적으로 짧아진다. 그것은 1주일 또는 1개월을 목표로 하게 마련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 보아도 제작의 건수는 최대 24배에서 최소 6배로 많아진다. 제작 담당자만 바빠지는 것이 아니다. 재고를 운영하는 관리부와 품절을 관리하는 영업부, 제작 대금을 결재해야 하는 경리부가 모두 일이 많아진다. 일의 횟수가 증가하면 관련 조직부서 간의 관계 횟수도 늘어나게 마련인데 횟수의 증가는 커뮤니케이션 오류의 발생 가능성도 높이게 마련이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되고 조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해결책이 있다. 종래의 생산 방식에 적합하게 설계된 경영 관리 방식의 개선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혁신이 출판사의 경영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위기는 기회다.
시장은 더욱 다양한 지식을 원한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우리 출판은 시장 불투명성의 단계에 봉착해 있다. 팔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바뀌고 있고 팔 수 있는 책의 물량이 변하고 있다. 시장은 더욱 다양한 지식을 원한다. 그리고 각 타이틀에 대한 시장의 수요 총량은 경향적으로 줄어든다. 종래의 눈으로 보면 타이틀의 생명력이 짧아졌다고 볼 수 있다. 지식과 문화 시장에서 책이 차지하는 영향력도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추세다. 디지털 미디어의 급속한 출현과 확산으로 책의 경쟁자는 더욱더 강력한 지배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희망적인 요인도 동시에 발생된다.
적은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수요대응인쇄기술이 실용 단계에 접어들었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장은 더 많은 콘텐츠를 요구하는데 책은 이들이 생각하는 일차 콘텐츠 공급원이다. 새로운 시장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인터넷 서점의 성장에 힘입어 책의 유통 기간이 현저히 짧아졌다. 현금 회전력이 높아졌다는 뜻이고 재고의 파악이 용이해졌다는 뜻이며 시장의 반응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출판 시장의 사정은 나빠진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분명한 것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다.
종이책이 전자책을 만든다. 이 둘은 공존한다. 전자책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 그러나 종이책 시장이 아직은 훨씬 더 크다. 출판사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종이책을 종래의 방식으로 반복 생산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불안전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는 전자책뿐만 아니라 종이책 환경 전반에도 삼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발흥의 시기에 피오디는 출판사가 패러다임 전환의 강물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믿을 만한 교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고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이 새로운 기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문제는 많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해답을 이미 그 안에 가지고 나타나곤 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