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선 초판본
경상도 사투리는
풀 냄새가 나고 이슬 냄새도 섞였고 황토 흙 타는 냄새도 난다. 고향 떠난 도시 일상이 굴욕과 굶주림과 추위의 나날일 때도 고향 말은 누룽지 냄새처럼 일상을 보듬는다. 그 무뚝뚝한 악센트로 동생이 그를 부르면 시인은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고 한다.
사투리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透明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 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이 마르는
黃土 흙 타는 냄새가 난다.
≪초판본 박목월 시선≫, 노승욱 엮음, 51∼52쪽
“우리 고장”이란 시인의 고향인 경상북도 경주를 말하나?
경주는 박목월 시에서 종종 향수의 공간적 배경으로 나타난다. 목월은 시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절제하면서 사용하는데, 이 시에도 고향 사투리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마음과 서정적 인식이 잘 나타난다.
“사투리”는 향수의 매개물인가?
동시에 향수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시어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표준어인 “오빠”와 고향 사투리인 “오라베”의 대조는 생활의 기반인 대도시 서울과 향수의 원천인 고향 경주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나타낸다. 목월의 시에서 사투리는 고향 산천의 자연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데, 그는 자신이 사랑한 고향의 나무, 하늘, 꽃 등이 바로 고향의 사투리와 같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박목월 시의 특징은?
서정과 전통이다.
서정과 전통의 바탕은?
향수다. 일생 동안 그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작품에 깊은 정서를 제공하는 원천이 되었다. 목월 자신도 “환언하며는, 나는 향수(鄕愁)로 말미아마 詩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이렇게 시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사실이 나로 하여금 평생 <향수>가 나의 정신의 바탕이 되게 하는 동시에 내 작품에 깊은 정서(情緖)가 어리게 되는 원인일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향수로 시를 쓴 시인은 많지 않은가?
목월의 향수는 아주 경쾌한 울림을 띠고 제시된다. 제시 기법도 독특하다. 언어 기교는 향수라는 심적 상태를 표현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다듬어진다. 그는 향수에서 시야를 얻었을 뿐 아니라 방법까지 발견했다.
등단 과정과 연관된 특징인가?
그가 등단한 ≪문장≫지는 전통 지향성이 강했다. 추천한 정지용은 전통 보수적인 동양적 정신세계를 세련되고 진취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향수는 동양 정신과 닿는다. 목월은 시 정신 면에서 ≪문장≫과 정지용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청록파> 시절에 향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일제 치하에서 국권을 빼앗긴 상황 가운데 또 다른 고향을 찾아 나서야 했다.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 향수의 발동이다. 이때 청록파가 지향한 향수는 체념 정서가 아니었다. 적극 탐색과 모색을 동반하는 능동형이었다.
목월이 발견한 새로운 고향은 어디였는가?
초기 시에서는 ‘자연’을 정신적 고향으로 인식한다. 자연, 혹은 전원은 현실에서 상처 입고 좌절한 시인이 그 속에서 위안받고 치유받고자 하는 공간이다. 숭엄하면서도 의연하고 영원한 전원에서 현실적 아픔과 좌절을 위안받고자 하며 전원을 향해 현실적 질곡을 토로함으로써 위난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현실의 치유 공간으로 자연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동시의 영향이다. 그는 중학생 때 이미 동요 시인으로 활동했는데 그 동심의 환상적인 세계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한다. 둘째는 정신적 지향점인 고향 경주의 심상 때문이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경상도나 경주는 보편적 고향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을 상징하는 매개가 된다.
중기에 발표한 시집 ≪난(蘭)·기타(其他)≫나 ≪청담(晴曇)≫에서는 향수가 어떻게 나타나나?
삶의 좌절이 나타나는 서울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공간 경주가 대조된다. 일상의 무게를 세밀히 포착하는 단계다. 똑같은 자연의 소재를 노래하더라도 ≪청록집≫에서 보여 준 것처럼 사회 현실과 결별한 폐쇄적인 자연이 아니라 현실과 직결된 의미로서의 자연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 부정적 의미를 지닌 시어들이 증가한 이유는?
상징어나 관념어로 모호한 효과를 자아내기보다는 직설적인 어투의 시가 현저히 늘어났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에서 직면한 압박과 좌절감을 시적 상상력에 의해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시인은 어떻게 삶의 고통을 극복하나?
생활의 기반인 가정을 통해 고향의 이미지를 복원하려 노력한다. <가정>에서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서 도착한 가정은 시적 화자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시적 화자는 현관에 놓여 있는 가족들의 신발을 보면서 애틋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도시의 생활 메커니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생활 기반인 가정, 혈육을 통해서 고향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추구한다.
후기 시집인 ≪어머니≫나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에는 신앙시가 많은데?
육신의 고향이 어머니 곁에서 자란 경상도 경주라면, 영혼의 고향은 모성적 심상을 내포하는 절대자다.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와 절대자는 생리적 서정성으로서의 향수를 자아내는 공통점을 지닌다. 존재의 근원인 절대자를 무한한 사랑의 근원인 모성적 이미지와 일치시킨 결과다.
결국 향수의 근원은 어머니인가?
목월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단일하고 거대한 메타포다.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신앙의 중개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이미지는 모성으로의 회귀, 즉 근원 회귀의 이미지와 관련됨으로써 존재론적인 자리에까지 나아간다. 결국 어머니의 이미지는 향수의 미학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이면서 근원적인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목월 시의 전작 작품 구조는 근원적 모성에 대한 향수와 탐색, 그리고 일체화 과정으로 요약된다.
≪초판본 박목월 시선≫은 어떻게 엮었나??
초판본을 저본으로 했다. 향수를 중심 주제로 초기의 자연시, 중기의 생활시, 후기의 신앙시로 구분해 작품을 고르게 선정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목월 시의 오라(Aura)에 한발 더 다가서면서 그의 시를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노승욱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대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