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천줄읽기
박문현이 뽑아 옮긴 ≪묵자 천줄읽기≫
사랑만으론 안 돼
유가에서는 사람에 따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묵가는 달랐다. 누구나 사랑하라고 부추긴다. 사랑만이 아니다. 이익도 나누라고 가르친다. 더불어 사랑하고 이익을 서로 나누는 사회가 그들의 유토피아다. 물론 현실은 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을 죽이면 사회는 그 행위를 반드시 불의라 말해 사형의 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논리로 유추한다면 열 사람을 죽이면 불의가 열 배가 되고 반드시 열 사람에 대한 죽을죄를 짓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큰 불의에 해당하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르다고 비난할 줄 모른다. 오히려 침략을 칭송하고 의로운 일이라고 미화한다. 이것은 진실로 침략 전쟁이 불의인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묵자 천줄읽기≫, 묵자 지음, 박문현 옮김, 83~84쪽
묵자는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비공(非攻)> 편이다. ≪묵자≫의 10개 주요 주장인 ‘10론’ 가운데 하나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으며 의롭지도 못하다는 경제적, 도덕적 이유를 들어 침략 전쟁을 획책하는 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한다.
전쟁이 난무하던 세상의 시대 의식인가?
묵자가 묵가를 창시해 활동한 시기는 BC 450년경부터 BC 390년경까지로 춘추 말에서 전국 초에 해당하는 시기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제후들이 서로 다투어 천하가 요동치던 불안한 시대였다. 따라서 묵자는 분쟁을 제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자기의 주요 임무로 삼았다.
그의 평화주의는 비폭력주의와 다른 것인가?
그렇다. 평화주의자이지만 정복욕에 불타는 통치자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에 대비해 방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현 가능한 정치학으로서 평화주의를 제시했다는 말인가?
무릇 폭력의 문제는 도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일관된 비폭력은 폭력이 추구하는 야만성에 동참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방어 역량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묵가 집단은 실제로 방어 무기를 직접 제작해 실전에 사용했는가?
그렇다. 묵자의 무장 평화론은 진정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이론임을 알 수 있다. 묵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겸애(兼愛)’ 또한 적극적 평화의 개념이다.
겸애란 무엇인가?
‘더불어 사랑하고 서로 이익을 나누는 것(兼相愛 交相利)’이라고 묵자는 말한다. 남과 나를 차별하지 않고 다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개인 윤리 아닌가, 정치학에서도 가능한가?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생각하고, 남의 집안을 자기 집안처럼 생각하며, 남의 몸을 자기 몸처럼 생각하면 된다.
겸애는 유가의 인(仁)과 무엇이 다른가?
유가의 인은 사람에 따라 사랑한다(尊卑親疎). 묵자는 피지배층인 평민의 입장이다. 귀족들에게 사람의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상현(尙賢)을 주장한 그의 정치 조직론이 계급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묵자는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관리로 등용해야 한다는, 곧 ‘상현’을 강조했다. 귀족들이 세습으로 정권을 독점하는 것을 반대하고 농민이나 기술자일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발탁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 사회를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혁명 사상 아닌가?
귀족 신분제를 개혁하고 출신 성분에 구애됨이 없이 그 재능을 평가하자는 것이 상현론의 핵심이다. 능력 앞에서는 모든 인격이 평등하다는 그의 기본 사상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묵자의 묵(墨)은 어떤 뜻을 가진 말인가?
묵(墨)이라는 성과 관련해 묵형을 받은 전과자라는 설, 그의 군사 사상과 관련해 무사라는 설 그리고 기술자 집단을 이끄는 공장(工匠)이라는 설이 있다. 모두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근거 있는 설명은 무엇인가?
묵자는 무학, 문맹의 농부가 아니다. 사각(史角)의 자손으로부터 학문을 배운 지식인이었다. 일반 서민보다는 높은 계층인 사(士)의 신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묵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이 묵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생애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아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렵다. 사상가이면서도 논리학자이고 군사 전문가였다. ‘성수(城守)’ 제편에서는 묵자의 탁월한 군사적 식견이 표현되어 있다. 뛰어난 과학기술자이기도 했다. 군사 무기를 발명하기도 하고 기하학, 광학, 역학(力學)에 관한 창의적인 이론을 내놓았다.
그가 이끈 묵가는 군사 집단인가?
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용사들이다. 억강부약(抑强扶弱) 해야 할 때 고도의 전투력을 갖춘 의용군이 되어 약소국을 돕는다. 묵문집단(墨門集團)은 종교성을 띤 국제 평화 유지 단체로 생각된다. 강학(講學)을 중시하면서도 기율이 엄격하고 희생정신이 강한 특이한 집단이었다.
제자가 300명이었다는 설은 사실인가?
이 책은 묵자의 제자가 300명이라고 적었다.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제자 중에는 각국에 나가 관리가 되거나 유세를 하고 다닌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는가?
≪여씨춘추≫에 “공자와 묵자의 무리가 매우 많고 제자들이 매우 많아서 천하에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그의 영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묵가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다. 어디로 갔나?
한때 유가와 함께 이대(二大) 학파로 가장 활발한 학술 활동을 전개했다. 진한(秦漢)대에 들어 200여 년의 번영을 마감하고 갑자기 중국 사상사에서 사라졌다. 그 후 2000년이 지난 청대 말에 다시 등장한다. 묵가의 쇠미는 사상사에서 아직도 하나의 미스터리다.
≪묵자≫의 텍스트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정치, 경제, 윤리, 철학, 군사에서 자연과학, 논리학까지 종합 학술 사상을 구성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 목록인 ≪한서(漢書)≫ <예문지>에 ‘묵자 71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53편만 전한다.
≪묵자 천줄읽기≫는 무엇을 중심으로 발췌했는가?
묵가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상현>부터 <비명(非命)>까지의 ‘묵가 10론’과 <비유(非儒)>를 중심으로 발췌, 번역했다. 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경주(耕柱)> 편에서 <공수(公輸)> 편까지의 5편도 발췌했으며, 묵학의 개요라 할 수 있는 <친사(親士)> 편부터 <삼변(三辯)>까지의 7편은 완역했다. 묵가의 병법서인 <비성문(備城門)> 이하 11편은 생략했고, 과학 사상이 담긴 <경(經)> 이하 6편, 즉 ≪묵경≫도 다루지 않았다.
≪묵경≫을 이 책에서 제외한 이유는 무엇인가?
‘묵가 10론’은 묵자의 저술이라고 볼 수 있으나 ≪묵경≫은 후기 묵가의 저술로 본다. 따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비성문> 이하 11편은 묵가의 중심 사상과는 다른 병법서다.
묵자가 지금 독자를 만나면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정의와 평화를 말할 듯하다. 오늘날의 사회는 경제 문화 종교의 차이로 갈등한다. 더불어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화해(和諧)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의’와 ‘평화’의 정신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문현이다. 부산 동의대학교 철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