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취헌 문집
홍순석이 엮고 옮긴 박은의 ≪읍취헌 문집(挹翠軒文集)≫
바람은 저 홀로 슬퍼하고
먹구름 낮게 깔리자 새소리 더욱 소란하다. 바람이 몸을 던져도 늙은 나무는 대답이 없다. 한바탕 천둥 치고 비 내리면 나무는 나무, 새들은 새들, 바람은 저 홀로 슬프고.
복령사
가람은 본시 신라의 옛 절로
천불은 모두 서축에서 모셔 왔네
신인이 대외에서 길 잃었네만
지금의 복지 천태산 같아라.
봄날은 흐려 비 올 듯 새들 지저귀며
늙은 나무는 무정한데 바람 절로 슬퍼하네.
만사는 한번 웃음거리도 못 되나니
세월 흘러간 청산에 뜬 먼지뿐일레.
福靈寺
伽藍却是新羅舊
千佛皆從西竺來
終古神人迷大隗
至今福地似天台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
萬事不堪供一笑
靑山閱世只浮埃
≪읍취헌 문집≫, 박은 지음, 홍순석 옮김, 142쪽
조선의 문장가들이 이구동성 칭송한 그 작품인가?
박은의 詩才를 가늠키 충분한 칠언율시다.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는 당대를 놀라게 했다.
朴誾은 누구인가?
연산조의 시인이다. 자는 중열이고 읍취헌은 호다. 서울 남산 기슭에서 살았을 때 지은 堂號에서 땄다. 4세에 독서했고 15세에 문장에 능통했다. 18세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뽑혔다.
세상은 어떻게 살았나?
20세에 유자광과 성준을 탄핵했다 파직된다. 이후 생활이 매우 어려웠고 정계에서 배척받았다. 술과 시로 세월을 보냈다. 아내 신씨가 백일이 안 된 막내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동래로 유배갔다. 26세에 효수되었다.
시는 그의 생을 어떻게 담아내는가?
파직 전 작품에는 연산군의 폭정에서 비롯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보인다. 후기엔 정치적 패배 의식이 야기한 정신적 방황, 현실 초극 노력, 체념, 달관이 나타난다. 아내의 죽음 이후로는 체념과 달관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웃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자조(自嘲), 체념, 달관을 의미한다.
정조가 그의 시를 조선 제일이라고 격찬한 것이 사실인가?
그뿐 아니라 친히 어제본을 증정(增訂), 편차(編次)했고 서문도 지었다. 어제 서문에 “국풍(國風)의 유향(遺響)이 있다”고 평했다.
정말 조선 최고의 시인인가?
이행은 박은의 ‘한 번 읊으면 세 번 감탄이 나온다’고 했다. 허균·신위·김만중·홍만종·이수광도 우리나라 제일의 시인으로 추대했다.
그의 작법은 무엇인가?
중국 성당시대 한시의 정조(情調)를 바탕으로 송시의 격조(格調)를 갖췄다.
그는 당조송격(唐調宋格)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당시의 서정적인 정서와 송시의 이취(理趣)를 겸한 점을 정조는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박은의 시풍은 조선 초기의 송시풍에서 중기의 당시풍으로 변모하는 과도기에 교량 역할을 했다.
중국 강서시파의 영향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해동강서파의 맹주로 불렸다. 조선 초기 문인들이 천편일률로 소식(蘇軾)을 모방할 때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 강서파의 시풍을 수용해 성공했다.
강서시파의 특징은 무엇인가?
환골탈태(換骨脫胎), 점철성금(點鐵成金), 요체(拗體)를 중시했다.
점철성금(點鐵成金)이란 어떤 작법인가?
신선이 무쇠에 손을 대어 금을 만드는 술법을 말한다. 시 창작에서는 남의 글을 조금 다듬어서 훌륭한 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요체는 어떤 기법인가?
한시의 작시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요구(拗句)와 요율(拗律)을 사용하는 변칙 작시법이다.
당신은 ≪읍취헌 문집≫을 어떻게 엮었는가?
1795년 간행된 어제본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에서 여러 형식의 글 66편을 정선해 옮겼다.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는 그의 사망 후 원고를 모은 것인가?
박은이 갑자사화에 희생된 지 3년 뒤인 중종 2년(1507) 때, 친구 이행(李荇)이 여러 친구들에게 흩어져 전해오던 것을 한데 모아 펴냈다.
어째서 자손이 아니라 친구가 유고를 엮게 되었나?
가문이 적몰되어 서찰 하나 남지 않았다. 이행은 박은에게 시를 지으면 일일이 보내 달라고 부탁해 신명(神明)과 같이 귀중하게 여겼다. 심지어 유배지에 가서도 소중히 보관했다. 박은의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은 이행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다.
어제본을 택해 옮긴 까닭은?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간행 당시 수집된 작품 수는 잘 알 수 없으나, 뒤에 간행된 운각본(芸閣本)이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소재의 작품 21수를 포함해서 125수를 수록한 점을 감안하면, 약 100여 수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본은 기존 판본에서 누락된 작품 18수를 보완했다. 현재 전하는 판본 중 가장 널리 알려졌다.
어제본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4권 2책이다. 권 1은 부(賦)·시(詩), 권 2∼3은 시(詩), 권 4는 기(記)·제문(祭文)·행장(行狀) 및 부록을 수록했다.
다른 문집에 비해 분량이 적은 이유는?
≪읍취헌유고≫에 수록된 시는 교우들 사이에 산재해 있던 것을 일일이 수집해 정리한 것이다. 22세 때부터 26세까지 5년간의 작품에 불과하다.
기행시나 화답시가 대부분인 것도 그 때문인가?
화답시가 61수, 기행시 57수, 송별시 10수, 제시 3수, 기타 17수로 화답시, 기행시가 거의 전부다. 여러 교우와 함께 어울리면서 지은 것을 교우들이 보관해 전한 이유도 있겠지만, 23세 때 파직된 박은이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그때마다 흥취를 시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박은은 어떤 사람인가?
조선시대의 대표 시인이요, 연산군의 폭정에서도 절의를 굽히지 않은 지사(志士)다. 기존의 송시풍 일변도에서 벗어나 ‘당조송격’의 새로운 시풍을 모색한 창의정신이 돋보인다.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에서는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진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 시인이다.
당신은 누군가?
홍순석이다. 강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