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슨 시선
새보다 더 늦게 여름을 즐기느라
새보다 더 늦게 여름을 즐기느라
풀밭에서 애수에 찬 가냘픈 목소리로
약소민족이
조촐한 미사를 올리네.
성찬식 기도가 완만하게 진행되어
그 의례 절차를 볼 수는 없어도,
해마다 명상적인 관례가 되어
공허함을 더해 준다네.
8월도 다 타들어 가는데
유령의 성가 울려 퍼져
죽음을 예고하는 정오에
존재의 시원이 생각나네.
아름다움도 아직 시들지 않았고,
홍조 띤 얼굴엔 아직 주름도 없지만,
죽음을 예견하는* 계절의 변화가
지금의 자연을 새삼 소중히 여기게 하네.
≪디킨슨 시선≫,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지음, 윤명옥 옮김, 120-121쪽
* 원문은 ‘드루이드교적(Druidic)’이다. 드루이드교는 고대 로마 시대에 갈리아와 브리튼 제도에서 성립된 켈트 족의 종교인데, 성직자 드루이드가 창시한 것으로 영혼 불멸, 윤회, 전생을 설법하며, 죽음의 신이 세계의 주재자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계절의 변화에서 느끼는 죽음과 영원성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죽음을 예견하는’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을 명상하는 시인이 귀뚜라미를 노래한다. 그녀에게 자연으로서 여름은 삶의 상징이었다. 다 타들어 가는 팔월의 정오, 계절의 변화는 죽음을 예고한다. 뜨거웠던 지난여름, 지금이 새삼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