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규 시선 초판본
코스모스 抒情
엷은 물모래 위에
가을이 앉으면
나르시스의 비인 뜨락마다
웃음에 떠들며 모두 피었다.
정열도 없는 꽃이
수다한 女人처럼 얼굴을 들면
사랑 잃은 버릇이
코스모스 怨을 놓는다.
피어도 산란한 슬픔에 느끼며
귀없는 이야기에 엷어진 花瓣이
오늘은 선바람 떠도는 저녁에
제마다 말없는 몸을 바쳤고나
꽃무덤 위에 떨어진
나비의 주검을 보는 아침
코스모스 밭머리에 한 아름
깨어진 내일을 울었다.
≪초판본 고석규 시선≫, 고석규 지음, 하상일 엮음, 60~61쪽
월남, 이산, 전쟁, 입대, 그리고 유폐된 1950년대. 스물여섯 시인의 심장은 그 황폐하고 절망적인 시절을 더는 버텨내지 못했다. 오늘, 그가 태어난 날, 피어서 슬픈 코스모스가 산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