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애 동화선집
김옥애가 짓고 이동순이 해설한 ≪김옥애 동화선집≫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만물의 핵심은 공이다. 비었거나 그래서 없다. 그곳으로부터 유, 세상의 만물이 비롯된다. 연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반드시 그러했으므로 그리된다는 말이다. 착하게 살자.
현아는 왠지 이 요강이 마음에 들었다. 옷을 입은 채 요강 위에 앉아 놀기도 하고, 의자처럼 깔고 앉아서 색종이 접기도 했다. 요강 속에 양말이나 손수건 같은 물건도 넣어 뒀다. 한번은 밤에 요강에다 진짜 오줌까지 눈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현아는 어느 때처럼 요강 위에 앉아 과일을 먹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방으로 들어와 야단을 쳤다.
“요강이 장난감이야? 좋게 앉아서 먹어.”
“치. 엄마는 왜 그래?”
현아는 ‘엄마가 할머니의 진짜 딸일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내가 저걸 당장 없애 버려야지.”
엄마는 요강 때문에 심술이 가득 났다. 현아까지 요강을 좋아하게 되자 요강이 더욱 보기 싫어졌다.
≪김옥애 동화선집≫, <할머니의 요강>, 김옥애 지음, 이동순 해설, 118쪽
할머니와 요강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
시골 살던 현아의 할머니는 요강을 서울로 가져간다. 현아의 놀잇감이 되지만 현아 엄마는 그것을 싫어해 요강을 몰래 버린다. 그러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에게 요강은 무엇인가?
“밤이면 내 새끼들 오줌똥 받아 주던 소중한 살림살이”다. 자식들의 흔적이고 시집올 때 함께 온 추억이다.
요강 때문에 사람이 죽는가?
전통문화의 소멸이다. 할머니와 엄마의 갈등은 세대 단절과 소통 부재의 현장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새것, 새것 하는데 새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할머니가 말한다. 이것이 내 말이다.
평론가 이동순은 ‘복원의 꿈’이라고 해석했는데, 동의하는가?
그는 “잊혀 가는 우리의 정신문화 혹은 생활문화의 복원을 꿈꾼다”고 말했다. 또 “그 속에 담긴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가슴 따뜻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하나씩 풀어 놓는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밀려난 것, 사라진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당신의 작품과 소재는 또 무엇이 있는가?
<까치밥>의 ‘까치밥’, <이상한 안경>의 ‘고추장 담그기’, <꽃이불>의 ‘목화솜’이 생각난다.
<까치밥>은 어떤 이야기인가?
영훈이는 까치밥을 먹으러 오는 ‘삔추’(직박구리의 방언)를 위해 장독대에 홍시를 놓아둔다. 홍시가 동나자 새도 오지 않는다. 겨울이 다 지나간다. 기억도 흐릿해진 봄날이었다. 무사히 살아 돌아온 새가 “삐이이− 삐이−” 지저귄다.
평론가는 당신을 상리공생과 전통문화 계승 작가로 꼽았다. 그런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부족함을 채울 때 함께하는 세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글 쓸 때는 전통문화가 어린이 마음에 닿도록 과거와 미래를 분주히 드나든다.
당신이 동화를 쓰는 마음은 마치 어떤 것인가?
가우도 출렁다리가 보이는 집필실 꽃밭에서 꽃을 옮겨 심었다. 꽃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을 심는 기분이 들었다. 꽃은 아이들처럼 신비스럽고 앙증맞았다.
어떤 꽃을 쓰고 싶은가?
제비꽃이나 흰민들레다. 소박하고 사랑받는 동화를 쓰고 싶다.
당신의 가운데 ≪반야심경≫이 있다는 말은 사실인가?
핵심은 ‘공(空)’이다. 그런데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는 까닭은 연기(緣起) 때문이다.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야심경≫을 통해 선한 업(業)과 악한 업을 나누는 지혜를 얻었다.
원고지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이 정말인가?
초등 교사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집안의 반대가 너무 심했다. 그가 결별의 선물로 내 이름을 인쇄한 원고지 3만 장을 선물했다. 선물에 감동받아 고향에서 타지 학교로 전출했다. 그해 말 결혼식을 올렸다.
그 원고지가 작가를 만들었나?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는데 딸 둘을 낳은 후 협심증에 시달렸다. 숨이 컥컥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심전도 검사를 수시로 했으나 신경성으로만 진단이 나왔다. 셋째 아들을 낳은 후에야 할 일을 다했다 싶었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결혼 전 남편이 선물한 원고지가 떠올랐다. 잠든 갓난아이를 옆에 두고 글을 썼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
도시락을 일곱 개씩 싸면서 일을 했다. 낮에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밤엔 약속된 원고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지가 많이 나온 날엔 밤을 새워야 했다. 주변에선 당시 나를 ‘철인’이라 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광주교육대학 야간 과정에 입학했다. 4년제 대학을 가지 못했던 한풀이라도 하듯 졸업 후엔 일반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옥애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