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신진호·전미경이 옮긴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Della Entrata della Compagnia di Giesu e Christianita nella Cina)>>
중국에는 이미 유럽이 있었다
유럽밖에 몰랐던 유럽에게 중국은 놀라웠다. 엄청나게 컸고 무척이나 높았으며 현명하고 성실했다. 16세기에 중국은 이미 유럽을 안고 있었다.
나는 우리 예수회와 초기 기독교도들이 중국에 들어갈 당시의 각종 원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길을 개척하고 이 숲 속에 들어가느라고 우리 예수회가 얼마나 고생했으며 아름다운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노력으로 맞바꾼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마테오 리치 지음, 신진호·전미경 옮김, 3~5쪽.
마테오 리치가 누구인가?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다. 31세 때인 1583년에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마카오를 거점으로 남부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1601년부터 1610년 사망할 때까지 북경에서 지냈다.
예수회는 어떤 단체인가?
대격변기이자 종교개혁의 시대였던 1534년에 로욜라가 창립하고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공식 인가한 교단이다. 몰락해 가는 로마 가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가톨릭 내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며 기독교를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왜 중국으로 갔나?
1578년부터 4년간 인도의 고아(Goa)에 머물며 학문에 매진했다. 그때 예수회는 선교 영역을 중국으로 확대하려고 했다. 그에게 중국 선교라는 중책이 떨어졌다.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나?
리치는 크게 놀란다. “큰 나라들이 네다섯 개 모여 이루어진 국가”이고 “유럽에 있는 것들은 중국에 모두 있다”며 규모에 놀란다.
문화와 제도,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선교 대상이었던 중국을 문화 교류의 주체로 바라보게 된다.
리치의 선교 전략은 무엇이었나?
조화다. 유교 사상과 천주교 교리를 결합해 포교의 사상적 바탕으로 삼았다.
천주교의 중국화를 꾀한 것인가?
그렇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인들의 관습을 익히고 존중했다.
중국인의 마음을 얻은 방법은 무엇인가?
인품과 학식, 그리고 서방의 선진 과학기술을 활용했다. 상류층 인사와 유학자들과 광범하게 교제했다.
유교를 존중했나?
관리들은 유학 가치관이 투철했다. 그들의 마음을 사려면 유교를 멀리할 수 없었다. 그들의 지적 수준이나 과학적 사고에도 매료되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였는가?
마귀의 속임수이고 미신이라며 배척했다. 잘못된 관념으로 큰 해악을 미쳐 민중의 신용을 잃었다 봤다.
유교 지식인들은 천주교를 어떻게 보았나?
학문의 실질적 효용을 중시하고 과학 지식에 눈을 뜬 학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광계다.
서광계는 리치와 어떤 관계였는가?
1604년 한림원 서길사가 되어 북경에 거주하면서 리치에게 서양 학문과 기술을 배웠다. 유클리드의 ≪기하원본≫ 등 많은 서양 서적을 함께 번역했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포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양 문물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은?
리치가 소개한 자명종과 프리즘, 세계지도를 갖고 싶어 했다. 황제인 만력제도 그가 그린 <곤여만국전도>를 보고 여섯 폭 병풍에 그려 달라고 할 정도였다. 태자와 황궁 안 친척들에게 한 폭씩 보내기 위해서였다.
리치의 전략은 성공했나?
천주교는 안정 기반을 확보했다. 그의 사후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도 중국 선교에 나선다. 배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선교는 반발을 부른다.
많은 선교사 가운데 유독 리치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교사 역할뿐만 아니라 동서 문명 교류의 가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지도를 제작하는 데 기여했으며 ≪천주실의≫를 포함해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중국에 묻힌 첫번째 서양 선교사라는 말이 사실인가?
중국에서 죽은 선교사들은 모두 마카오에 묻혔다. 리치는 북경에서 사망했다. 시신을 마카오까지 옮기기는 어려웠다. 신부들이 북경에 리치를 묻을 땅을 달라고 진정하고 중국 고위 관리들이 도움을 주어 황제에게 묘지를 하사받았다. 본토에 묻힌 것은 그가 처음이다.
당신들은 이 책을 왜 번역했나?
동서양 문명 교류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논리에만 익숙하다. 이 책은 400년 전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한 마테오 리치의 생생한 기록이다.
어떻게 옮겼나?
중역본을 저본으로 번역하고 영역본을 대조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함께 번역한 신진호와 전미경이다. 신진호가 중역본을 옮기고 전미경이 영역본을 대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