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유정 단편집
이상숙이 엮은 ≪초판본 김유정 단편집≫
이미 매 맞고 버려진 자들
봉건사회의 구습과 식민지의 모순이 공존하는 곳, 1930년대 조선의 농촌이다. 양심은 증발하고 지킬 것도 없는 이들은 자신처럼 남을 버린다. 노예가 노예를 만든다.
그리고 안해는 돌아서서 혼잣말로
“콩밭에서 금을 딴다는 숭맥도 있담” 하고 빗대놓고 비양거린다.
“이년아 뭐.” 남편은 대뜸 달겨들며 그 볼치에다 다시 올찬 황밤을 주엇다. 적으나면 게집이니 위로도 하야주련만 요건 분만 폭폭 질러노려나. 예이 빌어먹을 거 이판새판이다.
“너허구 안 산다. 오늘루 가거라.”
안해를 와락 떠다밀어 논뚝에 제켜놓고 그 허구리를 발길로 퍽 질럿다. 안해는 입을 헉 하고 벌린다.
“네가 허라구 옆구리를 쿡쿡 찌를 제는 은재냐 요 집안 망할 년.”
그리고 다시 퍽 질럿다. 연하야 또 퍽.
<금(金) 따는 콩밧>, ≪초판본 김유정 단편집≫, 김유정 지음, 이상숙 엮음, 50쪽
왜 아내를 때리는가?
영식은 ‘금맥 브로커’ 친구 수재의 말에 넘어가 금맥 탐사를 위한 삽질이 열흘째다. 짜증이 가득하다. 수틀리면 아내도 폭행하고 수재도 폭행한다.
무슨 금맥 탐사인가?
‘황금광 시대’의 해프닝이다. 블랙 유머다. 콩밭에서 금 따겠다는 설정 자체가 얄궂다.
김유정 단편의 분위기는 무엇인가?
비극이다. 향토성으로 제시되는 시대의 비극성이 모든 작품의 이면에 흐른다.
<금 따는 콩밧>의 비극은 무엇인가?
‘인간성 파괴’ 현상이다. 영식은 ‘콩밭에서 금맥이 나오리라’는 망상에 눈이 멀어 초조해진다. 급기야 성격이 변해 손찌검을 되풀이한다. 금맥 탐사 이전엔 없던 버릇이다.
이 책 ≪초판본 김유정 단편집≫에 어떤 작품을 실었나?
<소낙비>, <금 따는 콩밧>, <노다지>, <만무방>, <봄·봄>, <동백꽃>을 실었다.
<소낙비>에서도 남편은 아내를 폭행하는가?
춘호는 지독히 가난한 농군이다. 노름 밑천을 구해 오라고 아내를 때린다. 급기야는 아내가 동네 이 주사에게 몸을 내어 주고 돈을 마련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를 치장시켜 돈을 받으러 보낸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진작 이 주사와 통정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이건 무슨 말인가?
가난과 돈 앞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도덕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 배경마저 비극인가?
자연 현상이 아름답거나 따뜻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안 좋은 사건을 암시하기에 그렇다.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살풍경한 자연 묘사로 가득하다.
살풍경한 자연묘사의 예를 볼 수 있는가?
<소낙비>의 첫 부분을 보자.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눌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이라고 시작된다.
<노다지>의 자연 묘사는 어떤가?
“감떼사나운 큰 바위”, “함정에 들은 듯이 소름이 쭉 돗는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휴업 중인 금광 주변 지형을 묘사한 구절이다.
휴업 중인 금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노다지를 잠채(潛採)하러 간다. 일종의 절도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나타난다.
절도보다 더 큰 문제란?
금을 캐러 다니는 꽁보는 생명의 은인인 더펄이에게 이미 시집가 잘 살고 있는 누이를 빼돌려 바치려 한다. 그러다 눈앞에 노다지가 등장한다. 이를 본 꽁보는 더펄이를 배신하고 그의 죽음을 외면한다. 반인륜적이고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소낙비>의 춘호나 <노다지>의 꽁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그들의 인성은 황폐하다. 그 자신이 이미 매 맞고 버려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행하는 자로부터 당하는 자에게로 유전되는 관습일지도 모른다.
김유정 문학이 해학미·골계미를 가졌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타당치 않다. <봄·봄>, <동백꽃>에 드러난 해학성과 골계미는 김유정 소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마저도 매우 애상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가 농촌을 접한 것이 언제, 어디였는가?
1931년 낙향하여 고향인 실레마을에서 농촌 교육 사업을 펼쳤다. 이때부터 습작을 본격화했다. 당시의 농촌 경험이 소설의 주된 소재가 되었고 농촌을 바라보는 작가 의식을 심화시키는 계기였다.
농촌 교육 사업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접한 농촌은 봉건적 토지 제도와 신분제가 여전하고 식민지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모순까지 겹친 곳이었다. 농촌 교육 사업을 오래 못한 것도 불가역의 모순과 맞닥뜨린 좌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유정 문학의 연구 경향은 어떤가?
창작 기간은 약 5년이지만 후대의 연구 경향은 다양하다. 문체에서 해학성과 골계미를 찾는 연구, 그 이면에 숨은 농촌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형상화를 찾는 연구, 바보 인물형의 의미에 대한 연구가 있다.
‘식민지 근대성 자각’ 관련 연구는 어떤 내용인가?
매춘 제재의 의미 분석 연구가 있다. 연구 경향이 다양한 편이다. 그의 문학이 그만큼 포용성과 유연함을 갖는다는 뜻이다. 김유정 문학의 미래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상숙이다. 가천대학교 글로벌교양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