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밑의 욕망
사월의 나무 이야기 4.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
이형식이 옮긴 유진 오닐(Eugene G. O’Neill)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아들
엄마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을 미워한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다. 엄마와 아내가 옆에 있다. 나는 둘로 갈라지고 둘은 하나가 된다. 우리가 된다.
애비: (생략) 태양은 강하고 뜨겁지 않아? 땅속을 파고들듯이 불타고 있잖아. 바로 자연의 힘이야. 사물을 자라게 하지. 점점 더 크게, 네 속에서 자라며, 뭔가 다른 것으로 자라고 싶게 만들며, 그래서 마침내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게 네 것이 되지. 하지만 그것이 너를 소유해서 점점 더 크게 자라게 해. 나무처럼. 저 느릅나무처럼.
≪느릅나무 밑의 욕망≫,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64∼65쪽
뭔가 불온한 느낌인데, 어떤 장면인가?
애비가 의붓아들 이븐을 유혹하고 있다.
어미가 자식을 유혹하는가?
애비는 캐벗의 세 번째 부인이다. 서른다섯 살가량 된 그녀는 편안한 생활을 위해 일흔여섯 살이나 된 캐벗과 결혼했다. 그의 집에 들어온 날 그녀는 열 살쯤 어린 이븐에게 육체적 매력을 느꼈다.
이븐도 그런가?
그도 애비에게 육체적으로 끌렸지만 애써 외면한다.
애비와 이븐은 어떻게 되는가?
애비는 아들을 낳아 캐벗의 농장을 유산으로 차지하기 위해서, 이븐은 캐벗에게 혹사당하다 죽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 서로에게 접근한다.
상호 접근의 결과는?
사랑하게 되고 아들을 낳는다. 이제 이븐은 자신의 아들을 동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했는가?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캐벗이 그에게 농장은 애비가 차지하게 되었으니 “길 위의 먼지”나 가지라고 비아냥거리자, 분노한다. 자신이 이용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 앞에서 아이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는 죽는가?
애비가 죽인다. 이븐의 사랑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사랑은 돌아오는가?
그렇다. 이븐은 애비를 고발하기 위해 보안관에게 다녀오는 길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행복은 시작되는가?
비극이 이미 시작되었다.
행복인가, 불행인가?
애비는 이븐의 고백만으로도 처벌이나 운명을 받아들일 만큼 희열감을 느낀다. 둘은 영아 살해죄에 대한 처벌을 앞두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비극적 승화에 도달한 것이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에서 유진 오닐이 말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은 무엇인가?
그는 왜 그것을 묻는가?
우리는 신앙과 전통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산다. 여기 사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를 밝혀내려 했다.
어떻게 그것을 밝히는가?
대립되는 요소를 부각한다. 우주가 대립 요소로 구성되었고 인간은 그 갈등 가운데 매달려 있다고 오닐은 생각한 것이다.
무엇이 무엇과 대립하는가?
느릅나무와 캐벗이다. 느릅나무는 욕망과 감성, 사랑, 열정, 생에 대한 환희를, 캐벗은 뉴잉글랜드의 엄격한 청교도주의, 탐욕, 계율, 억압을 상징한다.
이 느릅나무는 어떻게 생긴 나무인가?
줄기는 집의 양끝까지 퍼지고 가지는 지붕을 감쌌다. 오닐은 이렇게 말한다. “집을 보호하는 동시에 압도하는 듯한 모습이다. 상대를 으스러뜨릴 듯이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사악한 모성이 보인다. 그러나 이 집 주인의 삶과 친밀한 접촉을 하면서 엄청난 자비로움을 갖게 되었다.”
느릅나무에 대한 캐벗의 태도는 무엇인가?
그는 느릅나무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집 안 곳곳에 스며 있는 ‘무엇’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외양간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편히 잔다.
이븐과 애비는 어느 쪽에 자리하나?
느티나무와 캐벗의 요소를 모두 가졌다. 이븐은 형들에게는 아버지처럼 탐욕적인 인물인 동시에 아버지에게는 이븐의 어머니처럼 나약한 인간이다. 애비는 탐욕 때문에 캐벗과 결혼하지만 마음속에는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
오닐의 작품 세계에서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
표현주의, 가면, 내적 독백, 그리스극 등 다양한 실험을 했던 2기에 자리한다. 그리스극의 원형을 미국적 콘텍스트에 도입한 대표 작품이다.
그가 차용한 그리스극의 원형은 무엇인가?
메데이아와 파이도라 이야기다. 메데이아 이야기는 애비가 이븐을 향한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 갓난아이를 질식시켜 죽이는 것으로 변형했다. 파이도라와 히폴리투스는 계모와 의붓아들이라는 관계의 모델이 되었다.
오닐의 작품 세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세 시기로 나눈다. 1기는 해양극 중심의 시기다. 바다에서 했던 경험을 사실주의 극으로 옮겼다. 2기는 실험이다. 3기에서 사실주의 극으로 되돌아온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도 그의 자전인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자신이 태어날 때 인색한 아버지가 돌팔이 의사를 부르는 바람에 어머니가 모르핀 중독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완고함과 편협함, 인색함에 맞섰다.
아버지는 이 작품에서 어떤 모습인가?
이븐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혹사해 죽게 만들었고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챘으며 이복형들과 자신을 부려먹기만 하는 존재다.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이 이븐이 하는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영아 살해 모티브의 자전 요소는?
오닐은 스물한 살에 캐슬린 젱킨스와 결혼해 유진 오닐 2세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들에 대한 미묘한 감정 때문에 이혼하고 말았다. “당장 죽었으면 좋겠어”, “내 아들이란 말이야” 같은 이븐의 대사에 오닐이 느꼈을 법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유진 오닐은 누구인가?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다. 1936년에 미국 극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사후 발표된 <밤으로의 긴 여로>를 포함해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았다.
그는 어떻게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가 되었나?
기존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유럽에서 개발된 사조나 극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끊임없이 실험했다. 후배 극작가들에게 영원한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이 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형식이다.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