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제니
송민숙이 옮긴 장 라신(Jean Racine)의 ≪이피제니(Iphigénie)≫
이겼다, 그러나 졌다
아실은 논쟁에서 이긴다. 긴밀한 논리로 상대의 뜻을 꺾는다. 패배자는 모욕을 느낀다. 모욕은 수치심을, 수치침은 앙심을, 앙심은 복수심을, 복수심은 반발과 역습을 부른다. 이겼으나 진 것이다.
아가멤농
그런데 내게 위협조로 말하는 당신은,
지금 대체 당신이 누구에게 질문하는지 잊었나?
아실
내가 사랑하고 당신이 모욕하는 이가 누군지 잊었나?
아가멤농
누가 당신에게 내 가족을 염려하라고 했나?
당신 없이 내 딸을 다루지 못한단 말인가?
내가 아비가 아닌가? 그대가 딸의 남편인가?
그 애가….
장 라신 지음, 송민숙 옮김, ≪이피제니≫, 134쪽
아가멤농과 아실이 다투고 있는가?
그렇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농이 자신의 딸인 이피제니를 희생 제물로 바치려 하기 때문이다. 아실은 아르고스의 유명한 장군이자 이피제니의 연인이다. 자신의 여자가 죽는 것을 막으려 한다.
딸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는 까닭이 무엇인가?
트로이 정벌을 앞두고 바람이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를 띄울 수 없다.
그런데 왜 자신의 딸인가?
엘렌의 핏줄을 이은 소녀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엘렌의 핏줄을 이은 소녀가 이피제니였는가?
그렇다. 엘렌은 이피제니의 어머니인 왕비 클리템네스트르의 동생이다. 이모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그녀가 희생 제물로 지목된 것이다.
결국 딸을 희생시키는가?
대의와 부성애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침내 아내와 딸에게 달아나라고 명한다.
도주는 성공하는가?
실패한다. 에리필이 그들의 도주 계획을 사제 칼카스에게 일러바친다.
에리필은 누구인가?
이피제니 곁에 있는 포로다. 그녀는 아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피제니를 질투하고 밀고한다.
이번에는 죽는가?
죽지 않는다. 사제 칼카스가 신이 원하는 것은 이피제니가 아니라 에리필이라고 공포했기 때문이다.
신이 변심한 것인가?
신의 변심이 아니라 에리필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엘렌의 숨겨진 딸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아실은 어떻게 되는가?
아가멤농은 아실과 언쟁하면서 모욕을 느낀다. 아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생각한 그는 이피제니를 더는 아실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드라마투르기는 무엇인가?
이피제니의 희생을 둘러싸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대립과 갈등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수사학적 관점에서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설득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아실은 이피제니를 살리기 위해 아가멤농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보지만 상대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비극적 아이러니를 초래한다.
무엇이 비극적 아이러니인가?
아가멤농이 이피제니를 살리되 아실과 만날 수 없게 만든다. 그녀에게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 선고된 셈이다.
라신은 누구인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더불어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중 하나다.
이 작품의 히스토리는 무엇인가?
1674년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쓰여졌다. 그리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두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유사하지만 결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이피제니가 희생되기 직전 아르테미스 여신이 암사슴을 이피제니 대신 죽게 한다. 반면 라신의 작품에서는 에리필이 등장한다.
초연되었을 때 프랑스 사회의 반응은 무엇이었나?
1674년 8월 18일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 축제에서 초연되었다.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라신의 성공작이 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송민숙이다. 연극 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