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당집림 천줄읽기
여기 토( )는 ‘토(土)’ 자다. <우정(盂鼎)>에서 “백성을 받고 강토를 받았다(受民受疆土)”라고 할 때의 ‘토(土)’를 토( )로 적었다. 하지만, 복사는 칼로 새기기 때문에 두툼한 획을 만들 수 없어 속을 비워서 토( )로 적었던 것이다. 이는 ‘천( )’을 ‘천( )’으로, ‘정( )’을 ‘정( )’으로 적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왕궈웨이(王國維)가 갑골문을 해석해 흙토의 기원을 밝힌 글의 일부다. 그가 스스로 쓰고 묶은 <<관당집림(觀堂集林)>>을 하영삼이 골라 옮겨 한국어 초역본이 출판되었다. 중국의 근대에 활동한 이 학자는 철학, 문학, 고문자학, 중국 고대사, 박물학, 역사지리, 몽골 역사에서 62종의 저술을 남겼는데, 모두 탁월했다. 현대 중국의 중국학 연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