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편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함께 떠나는 유럽 여행 4.
스위스 발리스로 릴케의 집을 찾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자신의 집을 만듭니다. 인간의 정신이 사물을 문화로 전환시켜내는 과정이 선연히 드러납니다. 아름다운 그의 집을 찾아 떠나봅니다.
나는 아주 큰 이별만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생각으로 발리스로 갔습니다. 더 이상 스위스답지 않은 이 웅장한 칸톤 지역은 내가 1년 전에 찾아낸 곳으로 처음으로 내게 그 잃어버렸던 열린 세계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거대하면서도 너무나 우아한 풍경은 프로방스를 연상시켰고, 스페인의 어떤 풍경을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아주 묘한 우연으로 수세기 동안 거의 비어 있던 저택을 한 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튼튼하고 오래된 탑을 상대로 오랜 투쟁을 해 왔는데, 결국 얼마 전 투쟁은 나의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내가 실제로 그 탑 안에서 나 자신을 지켜 내고 겨울을 나기 위해 둥지를 튼 것입니다! 뮈조트를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스위스 친구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 정복 과정 전체가 극복할 수 없는 여러 난관에 막혀 좌절되었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나의 거처는(물론 나는 가정부 한 명만 두고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지만) 부인의 집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 사진은 틀림없이 1900년 이전에 찍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집주인이 바뀌었고, 그 낡은 저택은 근본적인 보수를 받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많이 변하지는 않았고, 헐어 버린 부분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의 퇴락만 막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정원을 새로 만들었는데 담을 따라 나무와 꽃들을 아기자기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나는 집 안에서 그 지방 고유의 방식으로 1656년에 제작된 활석(滑石) 난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발코니 지붕, 그리고 솜씨 좋게 제작되어 오랫동안 잘 보존된 책상들하며, 궤짝들과 의자들도 모두 목각 예술로 유명한 17세기에 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세월을 견뎌 내고 전해진 오래된 물건들을 내면에 품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 물건들은 대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널찍한 로네 계곡의 주변 환경 때문에 지나친 사치가 되고 맙니다. 이 계곡에는 언덕이 있고, 산이 있고, 고성(古城)들과 예배당이 있으며, 딱 어울리는 자리에 간격을 두고 마치 감탄부호처럼 곧게 서 있는 백양나무들과 비단 띠처럼 굽이치는 포도밭 주변의 우아한 도로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본 사진 속, 그 넓고 펼쳐진 세상에 감동해서 꼭 가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던 그런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