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함께 떠나는 유럽 여행 5.
발자크가 안내하는 프랑스 소뮈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가 그의 작품 <<외제니 그랑데(Eugénie Grandet)>>를 위해 선택한 지리 좌표는 루아르 강 옆은 작은 도시 소뮈르(Saumur)입니다. 앙제에서 동쪽으로 70킬로미터, 투르에서 서쪽으로 80킬로미터를 걷다보면 이 오래된 도시를 만나게 됩니다. 인구 3만 명, 소뮈르성과 스파클링 포도주 그리고 기병학교가 유명하지만 강가 산책과 정결한 호텔 서비스도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어느 지방의 몇몇 도시에는 겉모습에서 아주 음침한 수도원이나 지독히 쓸쓸한 황야, 아니면 말할 수 없이 서글픈 폐허가 연상되는 그런 우울함이 느껴지는 집들이 있다. 그런 집은 틀림없이 수도원의 침묵과 황야의 쓸쓸함 그리고 해골이 나뒹구는 폐허의 분위기를 풍길 것이다. 그곳에선 삶의 움직임이 하도 고요해서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에게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쯤 수도사처럼 생긴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이방인의 낯선 발자국 소리에 십자형 창의 문지방 너머로 고개를 돌릴 때, 그 냉정하면서도 창백한 시선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기 전에는.
바로 그런 우울함의 원리가 소뮈르 읍내 위쪽으로 난, 성으로 가는 오르막길의 맨 끝에 자리 잡은 어떤 집의 외관에 나타나 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며, 군데군데 외진 곳이 있어 지금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그 오르막길은 늘 깨끗하고 건조한 좁은 자갈길의 돌 부딪치는 소리, 꼬불꼬불한 길의 비좁음, 구시가지에 속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집들의 고요함 등으로 명성이 나 있다. 지은 지 3세기가 지난 집들은 목조 건물임에도 아직 튼튼하며, 그 각양각색의 모양은 고고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소뮈르 지방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끝 부분에 괴상한 문양이 새겨진 채 집 아래층의 거의 전부를 검은색의 얕은 부조처럼 덮고 있는 어마어마한 서까래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쪽에서 보면 석판으로 덮여 있는 가로목이 보이고, 건물의 약한 벽 위에 푸르스름한 금이 그어져 있다. 지붕에 들어 있는 기둥은 세월의 무게에 휘어지고, 썩은 지붕널은 번갈아 나타나는 햇빛과 비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뒤틀려 있다. 저쪽으로는 거무스름하게 닳아서 섬세한 조각을 거의 알아볼 수조차 없는 창문의 받침틀이 보인다. 그것은 너무 약해서 어느 가난한 여성 노동자가 카네이션과 장미가 심어진 갈색 화분을 올려놓는 것도 위태로워 보인다.
좀 더 멀리로는 거대한 장식 못이 박힌 출입문이 보인다. 문 위에는 우리의 영특한 선조들이 남긴, 지금은 도저히 그 뜻을 알아낼 수 없는 여러 가문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어느 때는 신교도가 자신의 신앙심을 새겨놓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가톨릭교도가 앙리 4세를 향한 저주를 적어놓기도 했다. 어떤 부르주아들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읍 관직의 영광을 추억하는 공무원 휘장을 새겨놓기도 했다. 말하자면 거기에 프랑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벽에 회반죽을 발라놓은 흔들거리는 어느 집 바로 옆에 한 귀족의 저택이 우뚝 서 있다. 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문 위에는 1789년 이래로 그 지방을 뒤흔들어 놓은 여러 차례에 걸친 혁명의 와중에 깨져버린 그 가문의 표식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 거리에 있는 상가의 맨 아래층은 상점도, 창고도 아니다. 중세 연구가들이라면 거기서 순진하리만치 소박하게 꾸며진 우리 선조들의 작업장을 고스란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낮은 방은 진열창도, 진열대도, 유리문도 없이 깊고 어둠침침하며, 바깥이든 안이든 아무런 장식도 되어 있지 않다. 투박한 쇠장식이 박힌 출입문은 양편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데, 위쪽은 안으로 접어 올리게 되어 있고, 용수철 장치가 되어 있는 초인종 달린 아래쪽 문은 항상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문 위쪽을 통해서나 아치형 천장과 바닥과 옹벽 사이의 틈새를 통해서 동굴같이 눅눅한 이 공간으로 햇볕과 공기가 스며든다.
옹벽은 아침에는 열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닫은 뒤 쇠로 만든 걸쇠를 걸게 되어 있는 견고한 덧창문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알맞게 패어 있다. 그 벽은 도매상의 상품 진열대로 쓰이기도 한다. 거기에는 어떤 사기 행위도 끼어들지 않는다. 물건의 성격에 따라 진열된 견본품은 대구와 소금을 가득 채워 넣은 두세 개의 통일 수도 있고, 몇 무더기의 포목이나 그물, 천장의 들보에 매달아 놓은 놋쇠줄, 벽을 따라 늘어놓은 통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선반 위에 얹어 놓은 몇 필의 천이 될 수도 있다.
“어서 오세요.” 붉은 팔을 드러낸 채 흰 숄을 걸친 깔끔하고 풋풋한 한 소녀가 뜨개질감을 내려놓고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러오면, 그들은 나와서 자기 성격대로 냉정하거나 혹은 친절한 태도로 값이 2수밖에 안 나가는 물건이든 2만 프랑에 달하는 상품이든 손님이 원하는 대로 판매한다.
여러분은 자기 집 대문 앞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돌리면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통 제조용 판자 상인을 보게 될 것이다. 겉보기에 그는 고작해야 질이 좋지 않은 술통용 판자나 두어 묶음의 얇은 나무판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두에 있는 그의 창고는 앙주 시의 모든 통장수에게 물건을 댈 수 있을 만큼 가득 차 있다. 그는 수확이 좋을 때 판자 하나로 통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쨍한 햇살은 그를 부자로 만들고, 궂은 날씨는 그를 파산하게 만든다. 단 하루아침 사이에 통 값이 11프랑까지 치솟는가 하면 6리브르까지 곤두박질하기도 한다.
투렌 지방에서도 그렇지만 이 고장에서는 기후의 변화가 상인들의 삶을 지배한다. 포도 재배인, 땅 주인, 목재상, 통 제조상, 숙박업자, 뱃사람, 이 모든 이들이 한 줄기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바깥이 꽁꽁 얼어붙어 있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떤다. 그들은 비, 바람, 가뭄을 걱정하면서 물과 더위 그리고 구름을 자기 마음대로 고대한다. 하늘과 땅의 이해관계 사이에는 언제나 모순이 있는 법이다. 청우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대로 그들의 얼굴은 슬프게 변했다가 인상이 펴지기도 하고 또 쾌활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구시가지에 속하는 소뮈르의 큰길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이르기까지 “황금의 날씨야!”라는 말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암호처럼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한 줄기 햇살과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그들은 각자 이웃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돈 비가 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