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시선 초판본
지만지 초판본 한국근현대시 100선 박세영 시선
백하,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까?
1902년생인 박세영은 1922년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으로 떠난다. 상해와 남경, 천진과 만주 지역을 주유하고 1924년에 귀국한다. 조선프로예맹에 가담하고 <<카프 시인집>>을 간행한다. 해방되자 <<횃불>>을 내고 1946년 제1차 월북파로 삼팔선을 넘는다. 1947년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하고 이후 김일성 우상화 공로를 인정받아 조국평화통일위원, 북한최고인민회의대의원, 문예총중앙위원 등 북한 문예 조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 시단의 구심으로 활약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래 붙이는 시 <나에게 대답하라>는 병자년 여름에 쓰였다. 1936년이니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무엇을 물었던 것일까?
나에게 對答하라
너와 나, 또 수많은 동무들이,
삶의 뜻을 알려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지도 여러 해,
하늘같이 높던 그 理想은 다 꺼지고 말었다.
너와 나, 또 왼 세상의 靑春들이
한 번씩은 다 가져 보는 그 마음,
그 마음은 높게 하늘로 떠올르는 사람들이 되여
검은 구름에 앞을 못 보고,
헤매이다 떨어저 버리는구나.
생각하면 날개도 없이 뛰어올라 간 蠻勇을,
내 어찌 恨하지 않으리.
오— 너는 나에게 對答하라,
하늘에 닫든 너의 理想을 아서 앗어 갔나 對答하라,
그러면 일즉이, 너는 너의 모든 誠意와 奮鬪를 감춰 버리고
偶然과 自信을 내세운 일이 없는가 對答하라.
그러나 너는 언제나 偶然과 自信을 너의 앞잡이같이 내새워,
너의 모든 일을 가리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구도 너의 몸이 가장 높이 올르리라 믿었느니라,
怜悧한 너는 가장 어리석은 者였고,
너의 聖스럽던 良心을 빼 가도 모르는 者였느니라.
삶의 뜻을 알려 했던 너의 어린 시절, 또 너의 理想을,
이렇듯 휘정거린 것이 너의 半生이라면 모든 哲人이여! 對答하라 이것이 삶의 뜻인가 對答하라.
人類를 사랑하자던 마음은
나만 알자로 되여 버리고,
社會를 위하여 이 몸을 바치자던 생각은 나의 享樂만을 꾀하게 되여
너는 妖術師와 같이 한 가닥 남은 良心조차 속이었다,
그리하여 너의 남어지 한 가닥 希望까지도 없애고 말었다.
너는 맨몸둥이로 태어나서 맨몸둥이로 돌아가려는
불상한 사람이 되려는구나
그 理想을 다 버리고
이제는 남어지 목숨을 이랴고, 너의 良心까지 팔어먹었으니, 불상하구나
그것이 알몸둥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니.
그러나 너는 오직 偶然과 自信을 송드리째 빼 버려라,
너의 삶의 뜻을 여기에서 찾으라,
天文學的 數字 같은 모든 哲學에서 헤매지 말고 여기에서 찾으라.
삶의 뜻을 永永이 안개 속으로 던저 버리려는,
아즉도 앞이 시퍼런 靑春 너는
어둠의 桎梏에서 勇敢히 뛰어나오라,
실낱같은 誘惑에서 빼쳐 나오라.
恥辱의 十 年이 떳떳한 하루만 못하고,
享樂의 百 年이 眞理의 하루만 무에 낫겠니, 아하 너는 對答하라.
그래도 어둠의 골로만 永永이 가려나 對答하라.
<<박세영 시선>> <나에게 對答하라>, 24~26쪽, 박세영 지음, 이성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