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학 논고 천줄읽기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2. <<군사학 논고>>
서양 군사학의 고전 중의 고전
로마 이후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는 유럽의 군사지도자들에게 바이블이었다. 샤를마뉴는 휘하 사령관들에게도 반드시 이책을 휴대하라고 지시했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도 전장에 나갈 때마다 이 책과 함께 했다. 그의 아버지 헨리 2세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군의 원수였던 리뉴 공은 “베게티우스는 로마군단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으나 내가 볼 때 베게티우스야말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썼다.
이 책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 영어, 프랑스어,불가리아어로 번역되었고 수백가지의 복사본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인쇄본은 1473년 위트레흐트에서 발간됐고 쾰른, 파리, 로마가 뒤를 따랐다. 번역자 정토웅에게 이 중요한 책이 왜 이제야 한국에서 출간되었는지 물었다.
왜 이제야 나왔는가?
우리나라에서는 군사고전연구가 활발치 못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읽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 깊은 연구의 필요를 절감하지 못했다.
군사고전 연구가 활발치 못한 이유는?
보통 학문은 상아탑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민간대학교는 군사사나 전쟁사 강의를 개설한 곳이 드물다.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군사고전 연구에 관심이 소홀했다. 연구의 동기부여가 약했다고 봐야한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요즘은 많은 대학교에 군사학과가 창설되었다. 안보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군사고전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외국의 재미있는 전쟁사 서적, <<로마인이야기>> 등의 전쟁 관련서가 출판되면서 군사고전에 호기심을 갖는 일반인도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책을 옮겼는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너무도 유명한 군사명언이다. 그 말의 출처인 고전 원본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군사학 논고>>는 총 5권이다. 1,2,3권은 군대의 편성, 훈련, 군기, 인사, 작전 등에서 군사학의 기본 원리를 논의한다. 훈련과 군기의 중요성, 지휘관의 임무, 예비대의 운용, 지형의 활용 등에 관한 핵심 원리는 오늘날에도 빛을 발한다. 4, 5권은 성곽 공격과 방어 그리고 해군 작전을 다룬다. 군사학 저술이지만, 대(大)카토, 코르넬리우스 켈수스, 파테르누스, 프론티누스의 저작들과 아우구스투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등의 법규와 법령 등을 종합해 삶에서 곱씹어 볼 만한 금언들이 가득하다. 이 책의 한 장을 직접 읽어보자.
전투 작전 계획의 동기
군사학 요약집인 이 책의 독자들은 어쩌면 전반적인 전투에 관한 교훈을 찾기 위해서 매우 조급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투란 통상 두세 시간 내에 결판나고, 박살난 군대는 그 후에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마지막 극한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실행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책을 충분히 고려하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훌륭한 장교들은 지나치게 열세인 상황에서는 전면적인 전투를 피하며, 가능한 한 세밀한 부분까지 적을 격파할 수 있는 책략과 전략을 쓰는 것을 선호하고, 아군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적에게 위협을 가한다.
이 주제에 관해 필요한 교훈들은 고대 로마인들한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장군은 여러 군단에서 가장 경험 많고 신중한 장교들을 자주 소집하여 아군과 적군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장군의 중요한 직무다.
모든 과신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므로 반드시 고려 단계에서 제거해야 한다. 어느 쪽이 수적으로 우세하고 잘 무장되어 있는지, 어느 쪽 상황이 좋고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또 돌발 상황에서 더 단호한지 등에 대하여 반드시 검토해야한다.
양쪽 군대의 기병 상황을 검토할 뿐만 아니라 보병 상황에 대하여 더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병은 어느 쪽의 궁수병과 창기병, 중무장 기병, 그리고 말들이 우세한가를 파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장을 고려하고 지형이 아군과 적군 어느 쪽에 유리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만일 기병이 막강하면 평지와 개활지를 선택해야 한다. 보병이 우세하면 울타리, 도랑, 늪,삼림 등이 빽빽한 상황 그리고 때로는 산악지역의 상황을 선택해야 한다. 양쪽 군대의 식량은 풍족한지 부족한지도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흔한 속담에 의하면 기아는 칼 보다도 더 재앙을 초래하는 내부의 적이다.
심각한 상황을 시간을 끌며 넘어갈지 아니면 빠른 작전으로 결판을 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적은 흔히 원정은 곧 끝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만일 상당 기간 질질 끌면 원정군은 보급난을 겪거나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향수병에 빠지거나 야전에서 아무것도 달성한 것이 없어 실망감으로 흐트러지기 쉽다. 따라서 많은 병사들이 피로에 지치고 복무에 염증을 느껴 탈영을 하는가 하면 변절자가 생기고 적에게 항복하기도 한다. 역경에서 사기가 떨어진 부대는 충성심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에 전장을 점령한 많은 숫자는 모르는 가운데점차 줄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적의 성격과 특히 주요 장교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성미가 급한지 신중한지, 대담한지, 겁이 많은지, 원칙대로 싸우는지 되는대로 싸우는지, 그들민족들이 용감한지 비겁한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군사학 논고>>,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 지음, 정토웅 옮김, 135~137쪽.
상단 그림은 본문 104쪽에 인용된 테스투도: 병사들이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거북 등 모양의 공성 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