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유치환 시선
한국 문학 신간 소개, <<초판본 유치환 시선>>
왜 순간에 영원이 있을까?
그의 시집을 대한 동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훌륭한 시인 가운데서도 인생 시(人生詩)와 자연 시(自然詩)와 애국 시(愛國詩)를 완전히 동일한 바탕(목청)으로써 각각 성립시킨 사람은 그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그의 생경하고 소박한 ‘무기교(無技巧)의 기교’에 유래한 것이다.” 유치환은 어떻게 기술을 부리지 않고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초판본 유치환 시선>>을 엮고 해설한 배호남에게 묻는다.
어떤 인물인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4·19와 5·16을 거쳐 1960년대 후반까지 시를 썼다. 일제강점기에는 생명파로 불렸고 해방 후에는 사회·역사적 문제에 관심이 깊었다.
왜 생명파였을까?
첫 시집 ≪청마시초≫와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에서 비롯됐다. 초기 시의 주제는 ‘일체 생명’이었다. 자신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했다. 삶과 자연과 생명에 시적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실을 바랐다.
형이상학자인가?
보기 드물게 남성적 풍모를 지닌 시인이었다. 형이상학적 영원성, 정신주의를 꾸준히 지향했기 때문이다.
시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나?
널리 알려진 <기(旗)빨>을 보자. 시인은 바다 쪽으로 나부끼는 깃발처럼 영원성을 갈망한다. 그러나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될 뿐이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有限性)’ 때문에 영원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가능의 결과는?
그러나 낭만적 애상(哀想)에 빠지지 않는다. 그에게 애련(哀憐)에 빠지는 것은 치욕이다.
치욕이 아니라면?
치욕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연한 의지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영원성과 대결하는 방식은 자기 수련이다. 생명의 원형, 곧 “원시의 본연한 자태”, 다시 말해 삶의 비애나 죽음의 고통에 연연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반대로 건강하고 강인한 정신을 배우려 한다.
의지가 형이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결연한 의지는 시에 형이상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시에서 이육사와 더불어 정신주의 시의 한 봉우리를 이룩한 유치환의 초기 시들은, 가혹할 만큼의 자기 수련과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해 영원성과 대결하려는 강인한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드문 일이 아닌가?
일제강점기 시인 대부분이 여성적 어조와 한탄, 퇴폐적 낭만주의에 밀렸다. 유치환은 이육사와 함께 한국 현대 시사에서 보기 드물게 남성적인 웅건한 목소리를 지닌 시인이라 할 수 있다.
현실과의 관계는?
영원성과 대결하는 강인한 의지를 추구하는 정신주의 시에 천착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시 쓰기 역시 버리지 않았다. <나는 믿어 좋으랴>와 같은 시는 잃어버린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광야에 와서>와 같은 시에서는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며, <수선화>나 <산> 연작시에서는 다시 찾아올 해방의 날을 상징적으로 예견하기도 했다.
현실과의 거리는?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북만주로 이주했다. 흔히 ‘만주 탈출’이라고 하나 탈출, 도주, 자유 이주, 강제 이주 가운데 어느 것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가열돼 가는 일제의 전쟁 의욕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으로, “오직 나의 인생을 한 번 다시 재건해 보자”는 결의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에는 손수 ‘문인구국대’를 조직해 종군했다. 일제강점기, 북만주 체험, 해방기, 한국전쟁을 겪는 와중에 잃어버린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며, 해방의 날을 예견하는 마음으로 당대의 현실에 관심을 가졌다.
참여시의 배경인가?
아픈 현실과 전장에서의 죽음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 등으로 나름의 깊은 시적 성취를 보여 주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유치환의 후기 시에서 현실 참여의 시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했으며 그런 생생한 체험이 현실 참여시를 쓰는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는 생명파에서 보여 주었던 시인의 굴하지 않는 강렬한 의지도 큰 역할을 했다.
역사 감각은 어떤가?
진보에 대한 믿음을 지닌 서구적 역사관과는 거리가 있다. 조지훈은 4·19 혁명을 경험하고 기존의 청록파적 시 세계를 버리고 현실 인식을 회복한다. 유치환은 위정자 계층의 억압과 위선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전통적인 지사적 면모를 일관되게 나타낸다. 그는 서구의 선형적 역사관이 아니라 유교적 전통의 우국충정에 닿아 있다.
남성적인 힘이 감수성의 떨림을 무디게 만들지 않았을까?
형이상학적 정신주의 시와 현실 참여시뿐 아니라 <청령일기> 이후 쓴 연시들은 그의 시 세계에서 큰 축을 담당한다. 연시는 영원성과 대결하며 자신의 삶에서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던 강인한 의지의 시와는 정반대로 애잔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그의 본질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
의지와 감성의 두 흐름이다. 의지의 흐름은 애련을 거부하는 비정의 철학이고 남성적 목소리를 갖춘 우람한 수사학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예언자적 고발과 저항으로 돌출된다. 감성의 흐름은 애련에 휩싸이는 연정의 노래이고 여성적 섬세함을 보이는 애상적 하소연이며 때로 그것은 주체할 길 없는 마음을 담은 연서로 나타난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었는가?
남성적 의지가 정신주의 시와 현실 참여의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그의 여성적 감성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시선에서는 어떤 시를 골랐나?
지금까지의 유치환 시선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시들, 흔히 생명파라고 불리던 시기에 쓰인 시들이 중심이 되어 왔다. 그러나 유치환 시의 핵심은 오히려 해방 후의 사회적 참여 시와, <청령일기> 이후 유치환 시의 한 축이 된 연시(戀詩)에 놓여 있다. 이번 <<초판본 유치환 시선>>에 실을 시를 선별하면서 지금까지 그의 시 세계의 중심에 놓이지 못했던 시에 눈길을 돌렸다.
언제 그를 알게 되었는가?
고등학교 1학년, 우연히 읽게 된 <<청마 유치환 시선>>에 마음을 빼앗겼다. 석사 학위논문으로 <유치환의 문학관 연구>를 쓸 만큼 유치환은 지금까지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다.
오늘 유치환은?
그의 시는 통시적이면서 동시에 공시적이다. 유한한 인간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나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개인의 울분은 인류의 오랜 미래가 아닌가?
幸福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초판본 유치환 시선>>, <행복>, 유치환 지음, 배호남 엮음, 86~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