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
국내 최초 출간 홍콩 소설. <<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
홍콩의 맛과 냄새 그리고 기억
홍콩 문화를 전달하는 데 음식처럼 좋은 것은 없다. 매일 접나고, 구체적이며 맛과 색이 있고, 먹는 시간이 있으며,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기억하게 한다.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입맛을 따라가고 그 입맛은 또 음식을 따라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먹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먹지만 하루 세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메타포로서 음식이 갖는 경쟁력이다. 옮긴이 김혜준에게 예쓰와 홍콩의 포스트식민 시대를 묻는다.
어떤 작품인가?
포스트식민의 눈으로,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홍콩 반환 이후의 삶을 그려 내는 소설이다. 묘사의 구체성과 입체성이 돋보인다.
홍콩의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가?
쇼핑과 음식의 천국, 유흥과 환락의 거리, 세계적인 금융 도시이자 무역항, 영국의 식민지이자 중국의 특별행정구는 껍데기다. 그 내부의 맨털리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예쓰는 누구인가?
홍콩의 동향과 성취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왔나?
1948년 중국 광둥성(廣東省) 신후이(新會)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홍콩으로 이주하여 성장하고 교육받은 지식인이다. 한동안 언론사에서 근무했는데 이때 홍콩의 이론과 실재의 괴리 때문에 고민한다. 비교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간 이유도 다른 나라와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홍콩을 알기 위해서였다. 홍콩대학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고 지금은 링난대학(嶺南大學) 교수다.
문학계의 위치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68년부터 홍콩의 각종 간행물에 짧은 칼럼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시·소설·수필·평론·번역·이론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과 간행물의 편집까지 맡았다. 홍콩 문단의 만능인이다.
소설 ≪프라하의 그림엽서≫, 시집 ≪도중에서―룡빙콴 시선≫으로 홍콩행정부의 중문문학격년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으로 홍콩중문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홍콩의 정체성은?
하층민의 삶의 방식에서부터 일반 소시민의 일상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편린을 통해 복잡한 홍콩의 정체성을 보여 주려한다.
풍자와 부조리의 문제는?
홍콩 사회의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거나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나 부조리를 드러내는 목적은 비판에 있지 않다. 복잡하고 혼종된 상태 자체를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플롯이 다소 산만하고 단편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왜 정체성이 문제인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영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경계선에 있었다. 이러한 혼종성 속에 있던 홍콩인들이 스스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를 제공하게 된 사회적 사건이 1984년 12월 19일에 발표된 ‘중영공동성명’이었다. 예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나?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로서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홍콩인들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 반환된다는 사건은 당연히 홍콩인의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었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예쓰의 포스트식민에 대한 인식은?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 하이드파크 부근 같은 이름의 음식점에서 먹었던 생강즙과 망고를 섞은 그런 아시아적인 맛은 어디 갔지? 그때 먹어 봤던 음식은 프랑스와 태국 음식을 혼합한 요리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들여와서는 그 맛을 되찾지 못하는 거야? 서로 다른 동서양 문화를 혼합한 그런 메뉴에는 프랑스적인 풍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태국적인 독특한 매운 맛과 품위를 가지고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내 입안에서 맴도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그게 진짜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상상해 낸 포스트식민 음식에 불과한 것일까?”
표현 장치는?
주제나 소재, 체재, 언어에서 혼종의 특징이 나타난다. 소설뿐만 아니라 산문이나 시에서도 장르 파괴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는 음식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포착한다.
소설이 낯선 이유는?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한 리얼리즘 기법이 아니다. 모더니즘 기법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을 활용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소와 영화의 몽타주 수법도 쓴다. 1인칭과 3인칭 화자가 혼용되어 나타난다. 회상과 독백 그리고 다른 인물과의 대화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가 들쑥날쑥 나타난다. 낯선 것이 당연하다.
음식은 뭔가?
우리가 늘 접하는 것이고, 구체적이며 맛과 빛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과 기억을 이어 주고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따라서 음식을 활용하면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홍콩과 홍콩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처음에는 시에서 음식을 활용했고 후일 이 아이디어를 소설에까지 응용한다. 그 결과 홍콩 사회를 표현하는 데 대단히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왜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나?
우리는 홍콩 문학에 무관심했다. 이 도시를 상하이나 베이징처럼 중국 대륙에 속한 한 지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소설이 비교적 최근작이기 때문에 작품의 높은 성취에 비해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번역의 주안점은?
작가 자신의 독창성이자 홍콩의 특수성인 홍콩과 홍콩인 삶의 ‘혼종성’을 어떻게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번역해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기술적으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활용한 온갖 음식 이름과 표준어와 광둥어, 다시 말해 홍콩식 표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번역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홍콩 소설의 시사점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다.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 독자는 홍콩의 포스트식민 시대의 특징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책은 송주란과 함께 옮겼다. 나는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혜준이다.
<<포스트식민 음식과 사랑>>의 한 대목
나는 하릴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양쪽을 둘러보니 흐뭇하게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한 탁자에 둘러앉아 한창 신이 나서 이야기하면서, 술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즐겁게 마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우리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되었고, 또 어떤 친구들은 새로 들어왔다.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다. 때때로 세상일이란 썩 순조롭지는 않다. 세상일에 대해 우린 늘 각자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고, 서로 언쟁이 그치지 않으며, 때로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서로에 대해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처지가 모두들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미 밤이 깊었다. 밖을 내다보니 황량하고 고즈넉한 거리 풍경만 보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쨌든 이곳에 앉아 불빛과 사람 소리 속에 머무르며 떠나고 싶지 않았다. 따스함과 웃음이 넘치는 이 순간의 환상 속에 깊이 취한 채.(본문 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