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슈타인
드디어 국내 출간, 독일 문학의 기념비적 걸작 ≪발렌슈타인≫
영웅의 조건
발렌슈타인의 출세와 권력, 백전불패의 신화와 권력에 대한 무한한 야망, 빈 궁정의 음모와 권력 다툼이 펼쳐진다. 근대 유럽의 판도를 결정한 30년 종교전쟁은 영웅의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대가답게 실러는 전쟁의 희생자인 무고한 농민과 민간인들에 대한 시각도 잊지 않았다. 독일 문학의 기초를 세운 불후의 대작, 11시간 공연용 희곡을 만나 보자.
이 작품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졌던 30년 종교전쟁에서 활약했던 발렌슈타인의 출세와 몰락을 다룬 3부작 희곡이다.
그가 누구인가?
그 전쟁의 가톨릭 측 총사령관이었다.
모반자였는가?
실러는 <30년 종교전쟁의 역사>에서 말했다. “그러므로 발렌슈타인은 모반자이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했기 때문에 모반자가 되었다. 산 사람에게는 승전한 편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불행이요, 죽은 사람에게는 적이 살아남아서 그의 역사를 썼다는 것이 불행이다.”
실러는 누구인가?
괴테와 함께 독일의 국민 작가다. 지금은 ‘괴테와 실러’라고 하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실러와 괴테’라고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실러는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할 수 있게 독려했고, 괴테는 자신이 쓰려던 <빌헬름 텔>을 실러에게 양도했다. 실러가 일찍 죽자 괴테는 “나는 이제 친구를 잃었으며 이로써 내 존재의 반쪽을 잃었다”고 말했다.
실러는 어떻게 이 작품을 쓰게 됐나?
실러는 역사학자로서 한때 예나 대학에서 역사학 강의를 했다. 역사 논문 <30년 종교전쟁의 역사> 집필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전쟁이 갖는 세계사적인 의미와 시의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떤 점에 끌렸을까?
전쟁이라는 암흑기에 오히려 위대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황제군의 총사령관 발렌슈타인 장군, 그의 적수인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 등 뛰어난 지도자들의 인물상에 매료되었다.
희곡의 창작 시기는?
이미 그때 희곡을 쓰려는 계획을 세웠다.
창작 과정은?
사료를 토대로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 발렌슈타인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했다. 발렌슈타인의 막강한 권력과 급격한 몰락을 가시화할 수 있는 군대를 어떻게 극작품에 통합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난제였다.
해결의 방법은?
결국 산문으로 시작했던 초안을 운문으로 바꾸고 <발렌슈타인의 진영>을 따로 떼어 냄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실러는 병약했나?
≪발렌슈타인≫의 집필은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유연성이 없는” 소재와의 싸움이었으며 또한 지병과의 싸움이었다. 방대한 3부작의 완성은 작가적 승리일 뿐만 아니라 병마를 이겨 낸 인간 승리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은 소설 ≪어려운 시간≫에서 병약한 실러가 추운 11월 밤에 자정이 넘도록 잠을 못 자고 혼자서 고뇌하는 모습을 잘 그려 내고 있다.
괴테의 역할은?
이 작품의 완성에는 괴테의 구체적인 도움이 많았다. 집필 계획 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1796년 3월 16일 괴테의 권유로 실제 작업이 시작되었다. 집필 막바지에 <발렌슈타인의 진영> 제8장에서 ‘카푸친 교단 수도승의 설교’를 삽입한 것, 점성술 모티브를 도입하고 강화한 것은 모두 괴테의 조언 덕이었다.
3부작이다. 공연이 쉽지 않았을 텐데?
사흘 또는 이틀에 걸쳐서 공연되었다. 처음에는 3부작을 3일에 걸쳐서 공연하다가 그 후엔 <발렌슈타인의 진영>과 <피콜로미니>를 첫날 공연하고 둘째 날엔 <발렌슈타인의 죽음>을 공연하는 방식이 시도되기도 했다. 함부르크 공연을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생략해서 1회용 대본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어떤가?
2007년 5월에 원로 연출가 페터 슈타인이 베를린에서 11시간짜리 무삭제 마라톤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12월 연출가 토마스 랑호프는 빈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원본을 과감하게 삭제해 4시간짜리 공연을 했다.
연극에서 그런 공연이 가능한가?
오랜 연극 문화의 전통이 있고 이런 연극적 실험을 향유할 만한 관객층이 있는 독일과 독일어권에서 가능한 일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도 배경이 30년 종교전쟁이다. 두 작품의 차이는?
실러는 지배 계층을, 브레히트는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뤘다. 같은 배경이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왜 이 작품을 선택했나?
≪발렌슈타인≫은 독문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번역에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독일 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어림잡아서 20여 종 이상의 번역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도전이 쉽지 않다.
외국의 사정은?
서구에서는 나폴레옹보다도 발렌슈타인에 대한 저술이 더 많다.
출간에 대한 기대는?
이 번역본을 통해 실러의 3부작 ≪발렌슈타인≫과 함께 역사적 인물 발렌슈타인에 대한 논의도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번역의 특징은?
워낙 방대한 작품이라 오랫동안 작업하다 보니 어조나 용어 또는 문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원문의 시행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근접하려 시도했다. 무기나 병과를 나타내는 용어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 많은데 이런 것은 “나오는 사람들 해설”에 모아서 설명했다.
독법은?
3부작 ≪발렌슈타인≫의 분량을 겁내지 마시길.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돌파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긴장감을 주는 읽을거리다. 실러가 <발렌슈타인의 진영> 서곡에서 말했듯이, ≪발렌슈타인≫이 독자들을 잠시 좁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높은 경지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장이다.
독자에게 작품의 한 구절을 들려주시길.
이 장면을 꼽겠다.
이제 저들은 계획 없이 일어난 일을,
멀리 보면서 계획한 것으로 짜 맞출 것입니다.
마음이 흘러넘쳐서, 분노나 즐거운 기분이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한 것을,
인공적인 직물로 짜 맞춰서,
그것으로 가공할 만한 고발장을 만들면,
나는 이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발렌슈타인의 죽음>, 1막 4장, 발렌슈타인의 독백 중에서(본문 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