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부 시선 초판본
신간 시집, <<초판본 김민부 시선>>
여자의 손톱에 빛나는 햇살
순간이지만 뭔가 반짝했다. 곧 사라져 버렸지만 그것은 빛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순간과 기억 사이에서 사실을 찾을 수 있을까? 긴 잠과 다음 잠의 사이를 사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 김민부에게 버리고 싶은 목숨과 살아 있는 나날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공은 얼음보다 찬 햇살이다. 순간이고 영원이며 불안한 불가지의 대상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초판본 김민부 시선>>을 엮고 해설한 김효은이다.
어떤 사람인가?
<<시에>>의 편집장이고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한다.
김민부는 누구인가?
시집 ≪항아리≫·≪나부와 새≫ 등을 통해 60여 편의 시를 남기고 1972년 31세에 요절한 시인이다.
천재라던데?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번뜩이는 시적 재능과 시작을 향한 그 자신의 뿌리 깊은 갈망으로 문학적인 조숙함을 보여 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당당히 등단했다. 그의 동창이자 문우였던 이근배 시인은 “버릇없이 신의 영역을 침범해 시의 천기를 누설했기에 신이 질투해 그를 일찍 데려갔다”라고 할 정도로, 한마디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작사도 했나?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 1절 가사다. 그가 쓴 이 가곡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중등교육 과정의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어 엮은이도 학창 시절에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왜 무명일까?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가 그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보여 준 문학적 천재성에 비해, 사회에 나와서는 오히려 활발한 문단 활동을 보여 주지 못했다. 과작(寡作)에다 요절한 탓이다.
왜 그를 연구하나?
문학적 재질과 기량을 끝까지 펼치지 못하고 요절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서다. 죽음에 대한 섬세한 의식으로 점철된 그의 시 작품들이 문학사적으로 묻혀 버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류 담론으로 조명을 받고 추대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도 의미 있겠으나,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 버린 작품과 시인을 발굴하여 새로이 연구하는 것도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의 분위기는?
죽음에 대한 창백하고 어두운 정조의 시가 대부분이다. 대다수 작품의 시간 배경은 황량한 가을이며, 그것도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거나 어두운 밤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이별과 죽음의 그림자로 온통 점철되어 있으며, 대상과의 화해와 만남 또한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시작법은?
그는 죽음을 거부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일상과도 같은 죽음의 공기 속에서 오히려 단 하나의 ‘기별’ 죽음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버리고 싶은 목숨과/ 살아 있는 나날의/ 이 끓는 진공”(<秋日>)의 틈 속, 그 “균열의 간격”(<나부와 새>)과 간극 사이를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양가감정, 괴로움과 희열을 동시에 혹은 교차적으로 감지하며 ‘목숨’과도 같이 반짝이는 시편들을 썼다.
대표작은?
시집 ≪나부와 새≫에 실린 작품 <서시>다. 이 시는 짧지만, 이 시집 전체를,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조망하게 해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죽음의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다.
“조락한 가랑잎”과 “여자의 손톱에 빛나는 햇살”, “갇혀 있는 새의 눈망울” 등은 자체로 죽음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또한 “조롱 속에 갇혀 있는 새”와 “아파트의 창문에 퍼덕이는 빨래”는 유폐된 자아의 불안한 의식을 잘 보여 준다. 시인이 마주하는 일상과 소재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어둡고 창백하다. 화자에게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죽음”의 이미지는 매우 동적(動的)이고 활유적(蛞蝓的)인 대상으로까지 비친다. 그것은 어디서든 불쑥불쑥 튀어나와 화자의 눈앞을 가로막으며 그의 “영혼에 때를 묻히고 가”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리하여 “때때로 죽음과 조우할 때마다” 시인은 영혼이 점점 피폐해져 갔을 것이며, “조락한 가랑잎”이나 “창문에 퍼덕이는 빨래들”과 같은 서늘한 이미지들을 긁어모아 목숨과 맞바꿀 시 몇 줄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시 세계가 궁금하다.
부산대 교수였고 문학평론가인 김준오는 시 쓰기에 대한 지나친 결백증과 시 쓰기가 구원이 되지 못한 현실 바로 그 지점에 그의 요절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자기의 결백과 지나친 자기 검열 속에, 그의 시 세계도 단단히 유폐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동시대의 시인들과 다른 점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았는데도 그의 작품에서는 특별히 시대를 언급하는 작품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시대 시인들의 경우 역사적인 아픔이나, 민족의 비애, 시대적 우울과 상실에 맞서 표면적으로든 내면적으로든 저항하거나 자유 의식을 표출하는 시편들을 주로 창작했던 것에 반해 김민부의 경우 그들과 의미 표출의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그는 어디를 향했는가?
울분과 슬픔, 외로움과 상실감은 모두 내면을 향한다. 주로 유폐된 자아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한다.
결과는?
그럼으로써 반복되어 나타나는 개인의 우울과 죽음의 충동이 주조를 이루게 되었다.
그의 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죽은 후에/ 이 세상에 남겨질 말씀쯤”(<균열> 중).
균열을 통해,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바라보는 통찰의 시다.
오늘 우리에게 김민부는?
<<나부와 새>>(1968) 후기에서 밝혔던 김민부 시인의 말마따나, 물질주의가 팽배한 요즘 시대에 시를 쓴다는 노릇은 유사종교의 광신도 노릇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겠다. 그래도 그가 추구했던 시에 대한 순수성과 정직성만은 독자로서든 작가로서든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시 한 편을 고른다면?
<서시>다.
序詩
나는 때때로 죽음과 遭遇한다
凋落한 가랑잎
여자의 손톱에 빛나는 햇살
찻집의 鳥籠 속에 갇혀 있는 새의 눈망울
그 눈망울 속에 얽혀 있는 가느디가는 핏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에 퍼덕이는 빨래…
죽음은 그렇게 내게로 온다
어떤 날은 숨 쉴 때마다 괴로웠다
죽음은 내 靈魂에 때를 묻히고 간다
그래서 내 靈魂은 늘 淨潔하지 않다
<<초판본 김민부 시선>>, 김민부 지음, 김효은 엮음,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