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
한국 고전소설, 한국 콘텐츠, 원형 캐릭터 신간 ≪한국 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
2만1844명이 환생하다
우리나라에는 고전소설이 있었다. 김동인, 이광수가 일본서 배운 소설을 쓰기 이전 이야기다. 작품수가 882편, 등장인물이 2만1844명이다. ≪한국 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은 2만7393개의 표제어로 이들을 설명한다. 뭐가 대단하냐고? 우리 문학 등장인물 2만1844명이 대중적 생명을 얻었다.
≪한국 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이 무엇인가?
한국 고전소설을 총 망라해 등장인물의 명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표준을 세운 한국학 기초 사전이다.
등장인물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사전에서 방씨 부인을 찾으면 바로 이렇게 설명한다.
방씨(方氏) 부인(夫人) [해서기문] 방 약장의 딸로 나면서부터 용모가 수려하고 재질이 뛰어나되, 다만 여느 사람보다 볼기가 유난히 크다. 14세 되던 해 봄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배 속이 불편해 방귀 한 자루를 뀌었더니, 그 소리가 천둥 같아 나무 위에 앉았던 까투리 두 마리가 기절해 떨어졌다. 까투리를 집어 집으로 가져가니 부모가 수상히 여겨 채근한다. 사실 이야기를 하나 믿지 않는 부모가 실연을 해 보이라 한다. 허리띠로 부모의 몸을 잡아매고 방귀를 뀌니 부모가 날아가 떨어져 기절한다. 소문이 퍼져 19세가 되도록 출가를 하지 못한다. 어쩌다 물 건너 배풍헌이 외아들을 두고 구혼하여 시집을 가게 된다. 시집가서 여러 달이 되도록 방귀를 참느라 속이 불편하다가 천둥이 심히 치는 날을 틈타 방귀를 터뜨린다. 그 바람에 마당에 자리 깔고 누웠던 시부모는 기절하고, 곁에 있던 남편과 시중들던 계집종이 멀리 날아간다. 이 일로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가던 길에 관가 하인들이 바위 위에 열린 배나무의 배를 따 원님의 병환에 약으로 써야 하나 따는 수가 없다고 걱정하는 것을 본다. 방귀를 뀌어 배를 많이 떨어지게 해 주고 그 상으로 광목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시집으로 돌아가니 시부모도 기꺼이 맞아들인다. 시아버지 배풍헌이 동리 사람과 싸우다 쫓겨 오니 쫓는 자를 방귀로써 물리친다. 소문을 듣고 방귀로 유명한 풍초관이 내기를 청한다. 서로 방아공이와 키를 궁둥이에 끼고 방귀를 뀌니 방아공이와 키가 중간에서 부딪쳐 물속으로 떨어져 방아공이는 숭어가 되고 키는 넙치로 되었다 한다.
고전소설 등장인물 사전에서 표준이란 무엇인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등장인물 이름의 대표 표기를 정하는 것이다.
등장인물 이름이 왜 제각각인가?
이본에 따라 다르다. 한 작품에서도 신분이나 상황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 자(字)나 호(號) 같은 별호가 붙으면서 달라진다. 성에 관직명이나 성별, 연령, 가족 관계 등을 나타내는 호칭이 붙으면서도 달라진다.
표준을 세우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름이 다르면 오해와 오류가 일어난다. 작품이 50책에서 100책이 넘는 대하소설에서는 동일 인물이 여러 가지 이름과 호칭으로 나타난다. 인물 명칭의 표준을 세우면 작품 파악의 어려움이 해소된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명백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표준은 어떻게 세웠나?
<장화홍련전> 신임 부사의 이름을 보자. 신암본에는 “졀라도진안의셔샤난젼동흘이라난사람이잇서되”로 ‘젼등흘’이다. 세창본에는 “졀나도지난거난전동이라난사람이잇서되”로 ‘전동’이다. 그 밖에도 각 이본에 따라 ‘젼동흘’, ‘젼동이’, ‘젼동월’, ‘젼동호’, ‘정동호’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번에 여러 이본을 종합해 ‘전동흘’로 통일하고 각각의 이칭(異稱)은 별도 표시했다. 그래야 이본을 바르게 읽을 수 있고, 이본에 따른 등장인물 표기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이 사전을 만들었나?
첫째 고전문학 연구자들을 위해서다. 둘째 명칭을 통일하기 위해서다. 셋째 고전소설 관여자를 위해서다. 넷째 창조적 인물형을 발굴해 우리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이 사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유형, 구조, 특징에서 체계적 연구 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고전소설 관여자는 누구인가?
고전문학을 새로 읽고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입시에 대비해 많은 고전작품을 읽어야 할 학생들,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필요한 사람들, 작가, 예술가들도 관여자다.
창조적 인물형 발굴이란 무엇을 말하나?
유럽이나 일본, 중국에서는 다양한 고전 등장인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우리는 ‘홍길동’이나 ‘놀부’ 정도다. 그나마 ‘신출귀몰하다’거나, ‘욕심쟁이’ 정도 의미로 생활 속담 수준에서 유통될 뿐 우리 문화 정체성을 대표할 만한 코드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사전이 뭘 할 수 있는가?
우리 정서에 맞고, 세계가 수용하는 문학적 인물을 발굴해 확산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이 사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고전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인물을 발굴할 수 있다. 선인과 악인뿐만 아니라 열녀, 효자, 호색한, 사기꾼, 구두쇠, 의적도 찾을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무수한 인물군을 찾을 수 있고 그들에 대한 새롭고 참신한 정보를 가장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와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지자체에서 고유 캐릭터를 개발할 수 있다. 게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 음악, 미술, 문학 창작자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기대하는가?
고전소설 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가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교사들에게는?
현직 교사들 중 상당수는 고전소설 작품의 구체적인 면모를 파악하지 못한 채 참고서에 의존해 수업한다. 교사들이 고전소설 작품을 모두 읽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사전은 기존 참고서의 소략함을 해결할 대안이 될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학생들은 다양한 작품을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란다. 등장인물을 통해 작품 내용을 습득하면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사전이 갖는 의미는?
고전은 한 사회가 형성하는 문화의 바탕이다.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고전은 고전 서사물, 곧 고전소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이해도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사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은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박제가 된 과거형이 아니라 생명 있는 현재형으로서 고전소설이 될 것이다.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지금까지 이런 사전이 없었나?
≪國語國文學事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고전소설독해사전≫ 등이 있었다. 대부분 어휘, 용례에 한정되어 학계와 문화산업 분야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사전이 분석한 작품 수는?
882 작품이다. 번역·번안 소설이 제외되었다.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번안 작품은 창작에 가깝게 바뀐 것도 있으므로 일부는 포함시켰다. 원전이 행방불명되었거나 원전을 입수할 수 없는 일부 작품들도 제외되었다.
표제어가 2만7393개나 되는가?
두 개 이상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이 있으니 등장인물 수로 하면 2만1844명이다.
내용은 얼마나 되는가?
표제어 사전이 200자 원고지로 2만4347장, 주석집이 4485장이다.
저술 작업에 10년이 더 걸렸다고?
구상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원래 ‘고전소설 연구 총서’의 하나로 기획했다. 1999년 ≪고전소설 이본 목록≫으로 출발했고 2000년 ≪고전소설 작품 연구 총람≫과 ≪고전소설 문헌 정보≫, 계속해 2002년 ≪고전소설 줄거리 집성≫ 2책이 출판되었다. 2006년에 ≪고전소설 연구 보정≫ 2책으로 마무리했다. 고전소설에 대한 당초의 기획은 이 밖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몇 십 년에 걸쳐 메모나 카드 상태로 쌓였을 뿐, 활자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사람과 자금이 필요했다.
사람과 자금을 어떻게 해결했나?
1996년 ‘고전소설론’ 과 ‘고전소설강독’ 시간을 이용해 수강자들에게 각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한 기초 조사를 과제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제 부여는 2006년 1학기까지 지속했다. 물론 학생들이 제출했던 등장인물 조사는 아주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기초 자료로서 상당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직접 원고 작성에 나섰던 시점은?
2000년 2월 1일이다. 이날 내 일기에 “줄거리사전의 등장인물 파일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작업에 착수했다”고 되어 있다.
연구비는 어떻게 해결했나?
2006년 말 모 기관의 연구비 신청 공고를 보고 신청했으나 무참히 깨졌다. 이듬해 5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3년 과제로 신청했던 과제가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기쁨은 왜 오래가지 못했나?
좋은 선물을 받게 되었으므로 꿈꾸던 그리스와 터키 여행을 떠났다. 아크로폴리스를 관람하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데 서울에서 긴급전화가 왔다. 중복 과제라는 이의 신청이 있어서 연구비 선정이 일단 유보되었고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급히 귀국해 성의를 다해 소명서를 제출했다. 성의가 통했는지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6년 11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3년에 걸쳐 집중적인 사전 작업을 진행했다.
사전은 어떻게 구성했나?
표제어 사전 21권, 주석집 3권, 작품별 참고 원전과 등장인물 목록 1권 이렇게 모두 25권이다.
주석집은 뭔가?
본문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 실존 인물, 관직명, 지명 등에 대한 뜻풀이다.
작품별 참고 원전과 등장인물 목록은?
작품의 원전과 실제 작업에 사용한 문헌을 밝혔고, 작품별로 등장인물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어떤 작품이 들어있나?
<쌍천기봉>, <완월회맹연>, <봉래신선록>, <명주보월빙>, <대관재기몽>, <김영철전>, <황릉몽환기>, <취란방기>, <방한림전>이라고 아는가? 우리에게 낯설지만 재미있는 우리 고전 작품이 산처럼 쌓여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희웅이다.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다. 고전소설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계속하고 있다.
후학에게 바란다면?
원본에 의거해 등장인물 모두를 망라하려 했으나 누락된 것이 많을 줄 안다. 원본을 입수하지 못해 빠진 것도 있으며, 원본이 너무 방대해 어쩔 수 없이 줄거리 소개에 의존해 작성했던 작품도 더러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원본에 더해 이본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앞으로 누군가에 의해 이 책에서 빠진 작품들에 대한 후속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