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디미온: 시적 로맨스
지식을만드는지식 세계 시문학 선집, 영국 시 신간 ≪엔디미온: 시적 로맨스(Endymion: A Poetic Romance)≫
슬픔이여 오라
존 키츠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한다. 양치기 소년 엔디미온을 달의 여신과 인도 여인 사이에 세워 놓는다. 땅으로부터 하늘로, 다시 천상으로부터 지상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무려 4000행의 장시를 완성시킨다. 긴 여정 끝에 주인공이 성취한 것은 영혼의 완성이다. 그리하여 그는 말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달콤한 슬픔이여, 내게 오라.
그러니, 슬픔이여 오라!
가장 달콤한 슬픔이여!
내 아기인 양, 나는 그대를 내 품에 안으리니.
나는 그대를 속이고
그대를 떠날 생각을 했지만,
이제 나는 세상 모든 것 중에서도 그대를 가장 사랑한다네.
≪엔디미온: 시적 로맨스≫, 존 키츠 지음, 윤명옥 옮김, 229∼230쪽
이 시를 고른 이유는?
영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슬픔을 수동적으로 감수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키츠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집은 어떤 작품인가?
1817년에 쓴 4000행이 넘는 서사시다.
엔디미온은 누구인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이다. 달의 여신 킨시아의 사랑을 받는다. 어느 날 그가 잠든 것을 지켜보던 킨시아가 내려와 키스하고 달로 데려간다.
키츠는 왜 그를 주인공으로 택했나?
지상의 존재 엔디미온과 천상의 존재 킨시아의 사랑 이야기다. 인간이 어떻게 영혼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시는 신화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시에서는 엔디미온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타난다. 신화에서는 킨시아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다. 시에서는 연모 대상인 달의 여신을 스스로 찾아다닌다.
주인공의 여정은?
제1권에서 엔디미온은 고뇌에 차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꿈에서 황홀한 달의 여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제2권에서는 꿈속에서 본 여신을 찾아 지하 세계로 간다. 거기서 이상적인 미의 표본으로 보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거처를 지나가게 된다. 제3권에서는 해저 세계에서 글라우코스와 만난다. 제4권에서는 인도 처녀를 만나, 그녀와 함께 천상의 세계로 가게 된다.
천상의 존재를 찾는데 왜 지하 세계에서 시작되나?
하강을 통한 상승, 혹은 육신을 통한 영혼의 성취라는 역설적인 관계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현실의 고통을 통해서만 천상의 존재로 승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에서 무얼 얻게 되는가?
이상적인 미의 한계성을 배우고 현실적인 미의 결함을 겪으면서 조화로운 미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시련을 통해 타인에 대한 동정심도 갖게 된다. 여행의 막바지에 꿈에서 본 킨시아를 포기하고 지상의 연인, 인도 처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받아들인다.
킨시아는 무엇을 상징하나?
천상의 이상미와 초월적인 무아의 경지, 불멸을 뜻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동시에 엔디미온이 갈망하는 이상과 꿈, 그의 영혼적인 측면을 나타낸다.
인도 처녀의 역할은?
지상의 현실미와 인간의 감각, 열정으로 채워진 현실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엔디미온이 속한 현실과 실재, 그의 육신적인 측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갈등은 왜, 어디부터 시작되는가?
엔디미온이 킨시아 여신과 인도 처녀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상적인 미와 사랑을 추구할 것인지, 현실적인 미와 사랑을 추구할 것인지 기로에 서 갈등한다. 이것은 영혼을 중시할 것인지, 육신을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엔디미온 자신의 내적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엔디미온의 선택은?
킨시아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인물인 인도 처녀를 받아들인다.
현실이 이상보다 우월하다는 뜻인가?
현실을 통해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다. 엔디미온이 지상으로 전향하는 순간 인도 처녀와 킨시아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상과 실재, 꿈과 실재의 융합이다.
인도 처녀가 킨시아로 변모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육신을 가진 엔디미온이 영혼을 가진 존재로 변모되었음을 상징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도 처녀와 킨시아는 엔디미온 내부의 양극이라고 할 수 있다.
키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상과 꿈을 추구하되, 이와 더불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인간상을 요구한다. 진정한 내적 고통을 통해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과 봉사심, 그리고 더 풍부한 삶을 발견할 것을 촉구한다.
문학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낭만주의 시대에 고대의 신화에서 제재를 가져다가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형상화했다. ≪엔디미온≫은 옛 신화를 변형해 그 신화 속에 인간적인 의미의 가능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키츠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나?
키츠 시의 창세기적 대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를 ‘시도하는 시’라고 명명했는데, 그 말 그대로 다양한 시적 장치를 시도했다. 그 뒤에 쓰인 주옥같은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지상과 천상, 육신과 영혼, 인간과 신 등 많은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유는?
4000행이 넘는 장시인데다가, 방대한 신화적, 문학적 각주가 필요한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키츠의 시를 심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키츠가 시적 야망을 펼쳐 보고자 자신의 모든 사고와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집필했다.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신화와 로맨스의 결합에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순수미를 즐겨라. 동시에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양극의 의미, 인간이 겪는 고통과 노력 속에 담긴 긍정적인 의미를 숙고해 보라. 읽는 동안 순수와 실재, 감각과 사고, 이상과 현실, 고대와 현대를 동시적이자 통시적으로 맛보면 좋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명옥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시를 쓴다. 허난설헌 번역문학상, 세계우수시인상, 세계계관시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