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단편집
지만지 세계 소설 문학 선집 신간 <<카프카 단편집>>
생각했다, 꿈이 아니었다.
오래된 작가이지만 포스트모던 작가라고 해도 이견이 없는 그는 벌레도 되고 사자도 되고 집도 되고 성도 된다. 변신의 달인이었으면 좋으련만 의식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본다. 변하는 세상에서, 불안한 세계에서 항상 눈뜨고 있는 의식의 지속이 만나게 되는 것은 부조리다. 겨울 독서가의 애독서, 오늘은 변신하는 불변의 의식 카프카를 만나 보시라.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드니 활 모양의 여러 각질로 나뉘어 있는 배가 갈색으로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둥그스름한 배 위에 이불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듯 가까스로 걸쳐져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다리들이 무력하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카프카 단편집≫,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29쪽
카프카의 매력은 뭔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서술이 혁신적이고 내용을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작가의 현대성과 매력이 여기 있다.
다층성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그의 작품은 정신분석학, 철학, 사회학, 전기, 종교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의미 추출이 가능하다.
아도르노의 이야기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 보라고 하지만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난해하지만 매력 있다.
난해는 어디서 출발하나?
묘사는 지극히 평범하고 구체적이다. 그러나 내용은 일상적이지 않고 경험적이지도 않아 현실이 아닌 듯하다. 서술 태도와 서술 내용의 간극이 크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간극인가?
<변신>에서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신한다는 초자연적이고도 환상적인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갑충으로서 겪는 주인공의 운명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를 뭐라고 보았나?
20세기 중반 사르트르와 카뮈는 그를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지목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까지 공감대가 넓어졌을까?
여전히 충격이다. 모든 몽환과 위협의 분위기, 악몽과 부조리를 표현하는 형용사로 ‘카프카적’이라는 신조어가 있을 정도다. 아직도 독특한 세계다.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봐도 될까?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이 그의 텍스트를 재발견, 재해석한다.
아직도 매력인 이유는?
현대의 소외와 고립을 정확하고 예리하고 파격적 형태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카프카에게 소외와 고립이란?
이방인으로서 지니는 ‘상처’에서 비롯된다.
어떤 상처인가?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아이덴티티 문제인가?
독일어를 사용했으나 유대인계 소수였으므로 기독교 세계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독일어 사용자 그룹이어서 프라하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 체코인에 속하지도 않았다. 보헤미아 지방 태생이었으므로 중심부인 오스트리아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 실존을 깊이 체험했다.
콤플렉스는 없었을까?
잡화 행상에서 시작해 직물 도매상으로 자수성가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아래서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형상은 그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아버지 콤플렉스는 작품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가장 인상적인 인물 유형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가정 내 아버지의 존재에서부터 사회 속 여러 권위의 대리자들, 법정의 세계 그리고 익명의 관료 체제로 확대되어 형상화된다.
어떤 작품에 반영되었나?
‘부자 갈등’은 <선고>에서부터 마지막 장편소설 ≪성≫에 이르기까지 전 작품을 관류한다.
<선고>는 어떤 작품인가?
카프카의 문학 역정에서 ‘돌파구’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카프카의 돌파구란?
<선고>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아직 독창적인 글쓰기 방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선고>와 더불어 주제와 글쓰기 방식은 구체성과 구상성을 획득한다.
무엇을 선고받는가?
사업에서 성공하고 약혼을 앞둔 주인공에게 자기 아버지가 익사형을 선고한다.
죽었나?
강물에 몸을 던진다.
무슨 말인가?
시민사회에서 성공한 자아와 본래적 자아의 갈등, 또는 시민적 삶과 예술가의 삶의 대립이다.
카프카의 경험인가?
1912년에 펠리체 바우어와 교제한다. 결혼을 통해 시민적 삶으로 본격 진입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민적인 삶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펠리체 바우어와도 약혼과 파혼을 거듭하는 등 시민적인 삶에 대한 희망은 결국 성취되지 못한다.
왜 시민적 삶의 진입을 주저했나?
시민적인 삶이 작가·예술가로서 실존을 위협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결혼 때문에 예술가적 자아가 침해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작가의 은밀한 걱정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변신>에도 카프카의 소망이 투영되었나?
그렇다. 시민사회와 글쓰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실존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쓴 소설이다.
갈등과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펠리체 바우어와 교제하면서 자기 일과 문학 창작 활동으로 구분된 독신자의 삶, 특히 자신에게 소중한 창작 활동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다. 또 바로 아래 여동생의 남편과 공동으로 석면 공장의 운영을 맡는 데 새로운 부담을 느꼈다.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주인공이 갑충으로 변신한 것을 계기로 사회와 직장, 그리고 가족에게 소외돼 결국 죽는다는 이야기다.
갑충이 뭔가?
글쓰기를 소망했던 카프카는 당연히 ‘내가 방구석에 처박혀 글쓰기만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자문해 보았을 것이다. 기생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소망은 역겨움과 혐오감을 자아내는 갑충의 형태로 응축되었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이 실렸나?
대표작 <변신>과 <선고>, <시골 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 이렇게 다섯 작품이다.
카프카 번역의 소회는?
많은 작품이 이미 번역되었다. 작가는 상대적으로 명료한 독일어를 사용한다. 읽거나 번역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텍스트는 어휘 하나하나에 의미가 집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냉정한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감정적이 되거나 과도한 문학적 수사를 사용하면 의미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전체 의미를 잘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말 호흡에 맞게 옮기려 노력했다.
카프카 전공인가?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변신>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카프카라는 작가가 주는 매력에 더욱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작가를 연구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권혁준이다.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