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축적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의 축적≫
이제 진짜 로자를 만날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본의 축적≫을 출간한 것이 1913년이다. 황선길은 100년 만에 한국어판을 완성했다. 그동안 우리가 그녀를 얼마나 심하게 오해했는지, 부끄럽다.
자본주의는 선동 능력을 가진 첫째 경제 형태다. 자본주의는 전 지구 차원으로 확산되고, 모든 다른 경제 형태를 몰아내며, 자신 말고는 다른 경제 형태를 허용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는 주변 여건이나 모체로 기능하는 다른 경제 형태 없이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모든 세계에 보편적으로 퍼진 형태가 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생산의 보편적 형태가 될 수 없는 내재적인 무능력에 부딪혀 부서진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생생한 역사적 모순이며, 자본의 축적 운동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동시에 심화시킨다. 일정한 발전 수준에 도달하면, 이 자본의 모순은 사회주의 원칙을 적용해 해결하는 방식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축적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전 지구 차원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노동하는 인류 자신의 삶의 욕구 충족을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세계 차원의 경제 형태다.
≪자본의 축적≫ 2권, 766~767쪽.
≪자본의 축적≫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본 축적의 내재적 법칙을 체계화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재생산에 대한 몰이해와 마르크스 재생산 공식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의 전 지구적 확대를 사실에 근거해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로자는 마르크스를 어떻게 공략하나?
563쪽에 잘 드러난다. “마르크스의 확대 재생산 공식은 축적이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되며 역사적으로 관철되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바로 공식의 전제 조건들 그 자체 때문이다. 이 공식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사회적 소비의 유일한 대리인이라는 가정에서 축적 과정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 재생산 공식이란?
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체제인데, 이는 투입된 자본의 양보다 더 많은 가치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확대 재생산이라고 했다. 확대 재생산이 노동자와 자본가만 존재하는 순수하고 폐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본론≫에서 공식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자본론≫은 무엇을 잘못했나?
로자는 순수하고 폐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확대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주의 축적은 비자본주의 지역으로 팽창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획득된 상품 형태의 잉여가치를 화폐로 전환해 다시 재생산 과정으로 투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자본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해결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자본의 축적’에 관한 로자의 키 포인트는 무엇인가?
자본의 축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생산된 상품 형태의 잉여가치가 화폐로 실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일국이나 한정된 지역에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본은 축적의 영역을 계속 확대해야 하며, 전 지구 차원으로 축적의 범위를 팽창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썼다. “축적이 실제로 완성되려면, 새로운 자본에 의해 생산된 추가 상품을 시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자리를 획득하는 것이 무조건 필요하다.”
이 책의 의도가 재생산 공식의 비판인가?
재생산 공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공식을 둘러싼 논쟁과 이론사적 배경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2권에 수록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은 ≪자본의 축적≫ 초판에는 없다. 어떻게 보완되었나?
초판 출간 뒤 사회민주당 내에서 그녀에게 가한 비판에 대응한 글이다. 1915년에 발표했다. 그녀가 책에서 지적한 마르크스 재생산 공식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비판가들의 비판 내용을 적절하게 반박하면서 논증한다.
로자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독일 사민당의 기관지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간행되던 신문에서도 비판을 가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레닌과 오토 바우어, 그리고 구스타프 에크슈타인 등이 있다. 마르크스의 재생산 공식이 일정한 지역 내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을 논증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본의 지구화 과정과 자본에 대한 국적 부여는 로자의 모순 아닌가?
그녀의 이론이 현재의 지구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매우 유효하지만, 팽창하는 자본에 국적을 부여해 영국 자본, 프랑스 자본, 독일 자본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현대 자본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녀는 어떤 인간인가?
열성적인 혁명가였다. 교조적이지 않고 냉철한 분석을 통해 경제학, 정치학 등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한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하다. 1871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1898년 독일 사민당에 가입해 당내 좌파 노선의 주요 인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독일 노동자의 총파업 문제를 놓고 지도부와 갈등했다. 이에 개량주의적이고 관료적인 독일 사민당을 비판하며 급진 좌파 세력을 이끌었고 이어 결성된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지도부에 들어갔다. 1919년 1월에는 동맹이 주도한 독일 혁명에 참여했다. 1월 15일 밤 이른바 의용군에게 체포된 뒤 심한 욕설과 함께 개머리판으로 가격당해 살해되었고, 시체는 운하 속에 던져져 5월 31일까지 잠겨 있었다. 베를린 운하에서 주검이 발견된 뒤 독일은 큰 혼란에 빠졌다. 레닌을 비롯한 그녀의 정적들까지도 애도를 표했으며, 프란츠 메링은 충격을 받아 2주 후 세상을 떴다.
한국 지식인의 로자 이해는 정확한가?
조직 이론에서 ‘자발성’과 ‘대중 파업론’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과소 소비론’으로 폄하되며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을 주장한 것으로 왜곡되어 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상식으로 통했던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에 대한 오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자동 붕괴론이란 자본주의가 내재적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붕괴되고 사회주의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따르면 재생산과 축적의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생기고, 그 모순이 심화할수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정책이 강화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황선길이다. 사회과학 아카데미 대표다.
그녀를 언제 만났는가?
대학 시절에는 여성 혁명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1990년대 초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에서 룩셈부르크의 경제학 이론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깊이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이 ≪자본론≫을 보완할 수 있는가?
정치경제학적으로 ≪자본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현대 자본주의 세계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론’이나 하비의 ‘자본주의 지정학’에도 그 기초를 제공하고 있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무거운 책을 번역 출간하게 된 소감이 궁금한데?
독일에서 처음 책이 나온 때가 1913년이다. 한국에서 100년 만에 처음 출간되는 셈이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