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의 감상
똑똑히 모르는 걸문인보국회 소속 젊은 작가 현. 전세가 점점 심각해지자 스스로를 소개한다. 라디오는커녕 신문도 며칠씩 늦는 산골, 그러나 당국과 주재소의 협력 채근은 여전하다. 어느 날 ‘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8월 16일, 버스를 타고서야 종전 소식을 듣지만 승객들은 무심하다. 똑똑히 모르는 걸 어찌 입을 놀리냐는 한 영감의 말에 현은 슬프기만 하다.
<해방 전후>, ≪이태준 단편집≫, 이태준 지음, 문흥술 엮음
늦으면 안 된다고요마을 뒷산 버려진 오두막, 어느 날부터 연기가 솟아오른다. 동네 아이들은 탐험을 나서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꼬부랑 할머니를 만난다. ‘사랑허는 폰돌 씨, 얼릉 결혼허제니께요. 얼릉 얼릉 오라니께요. 늦으면 안 된다고요. 얼릉요. 나는 나는 잡혀 가기 싫다니께요. 순사한테 잡혀 가기 싫다니께요.’ 죽기 전날, 사연을 풀어놓는 할머니….
<고장 난 시계>, ≪장문식 동화선집≫, 장문식 지음, 이훈 해설
김옥균을 암살하고러시아 공사 웨벨의 처형 손탁이 경영하는 정동의 손탁호텔, ≪독립신문≫ 3000부 발행 기념 축하연이 열린다. 서재필의 연설이 환호리에 끝나는 순간, 홍종우가 등장한다. 김옥균을 암살하고 서재필을 방해하는 인물, 미국 사람이 왜 조선에서 말썽을 일으키느냐며 소리를 높이자 손탁호텔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져든다.
<손탁호텔>, ≪손탁호텔≫, 차범석 지음
新報雜誌狂신문과 잡지에 미친 사람, 최남선은 스스로를 이렇게 일컬었다. 1908년 ≪소년≫ 창간, 1920년대 중반까지 7종의 잡지를 발간했다. 그에게 잡지는 청소년과 국민을 깨우치고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앙양하고 문화를 천명 보급하여 자주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무기였다.
≪한국 잡지 역사≫, 정진석 지음
조선영화의 민족 정체성단성사와 조선극장은 초유의 매진 행렬, <춘향전>(1923)과 <장화홍련전>(1924) 때문이었다. 우리 것에 굶주린 식민지 대중에게 ‘조선영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제국주의와 외래의 문물 앞에서도 전통은 숨 쉬고 있었다.
≪초기 한국영화와 전통의 문제≫, 김대중 지음
정신의 해방을 기다리며제1공화국의 미디어는 반공과 일민주의를, 한국전쟁 때는 극단의 반공과 북진 통일을 소리질렀다. 분단의 극복과 통일은 금기가 되었고 흑백논리는 기세가 등등했다. 나라는 해방됐지만, 정신의 해방에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전쟁기 미디어와 사회≫, 김영희 지음
2717호 | 2015년 8월 14일 발행
해방 전후의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