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강소천은 1931년부터 동요·동시를 써 오다 1939년 ≪동아일보≫에 동화 <돌멩이>를 발표한 이후 본격적인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동화와 아동소설 장르 전반에 걸쳐 꿈의 기법을 도입하며 자신의 동화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꿈을 찍는 사진관>, <꿈을 파는 집>, <꼬마들의 꿈>, <인형의 꿈>, <8월의 꿈>, <노랑나비의 꿈> 등 작품 제목으로도 쉽게 간취될 만큼, 강소천은 인간의 심리적 현상인 꿈을 작품 자체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구성 원리로 원용했다. 그것은 ‘동화문학은 꿈을 추구하는 문학’이라는 자신의 동화관을 일관되게 관철한 일이기도 했다.
강소천 동화문학의 중요한 유형적 특징 중 하나는 ‘상실과 찾음’이란 구성 원리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이때 강소천 동화문학에 나타난 꿈은 구성상 단순한 복선이나 인물과 플롯의 인과적 계기로 활용되어 동화의 의미를 조성해 가는 주제적 문제보다 문학작품에 고착적인 꿈의 속성들을 다양하게 배치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성을 유발해 내는 기법상의 문제에 관여되어 있다. 6·25동란으로 고향인 함경남도 고원을 떠나 단신으로 월남해 타계할 때까지 실향민으로 살았던 그의 전기적 측면을 고려하면, 그의 꿈 모티프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또 다른 삶의 문제로 떠올린 창작 원리이기도 했다.
강소천의 초기 동화는 외부의 모든 대상들이 등장인물과 교감하면서 시적 이미지망으로 구축되어 화자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서정적 과정으로 이야기화된다. 곧 일관성 있게 ‘상실과 찾음’이란 구성 원리를 기저로 대상성에 깊이 파고들어 그 대상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내면화된 현실을 표층으로 드러낸 것이 꿈 모티프다.
강소천은 동화에 꿈 모티프를 서간체나 독백체 등 다양한 서술 기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동화세계를 심화·확장해 갔다. 이때 꿈 모티프는 암시적·비유적·상징적 기능을 조성하여 서정적 분위기를 강화하며 동화적 의미를 구현하는 작용을 한다. <민들레>, <꽃신>, <꽃신을 짓는 사람> 등에서 이러한 구성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강소천은 자기 스스로 상실에 대한 아픈 경험을 통해 동화작가로서의 정당한 창작 원리를 설정했으며, 그 극복의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용기와 의지를 심어 주는 ‘찾음’이라는 경험의 모형을 상징적인 꿈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곧 그의 꿈의 기법은 안으로는 ‘상실’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에 순응하면서, 밖으로는 ‘찾음’이라는 새로운 자기 발견을 감내하는 원리이자 통로였다. 그에게 분단이 고착화될수록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증폭되었고, 그의 동화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꿈으로 실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결국 강소천의 동화문학에 풍부하게 발현된 꿈은 인간의 욕망 충족적 삶의 측면에 관여하면서 더 나아가 인간의 궁극적 존재에 대한 물음이자 삶의 문제로 제기된 서사적·서정적 장치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강소천은 동화에 적극적으로 꿈의 기법을 도입해 한국 창작동화의 서정성을 높이고 다양한 서술구조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동화작가였다.
200자평
강소천은 동화에 적극적으로 꿈의 기법을 도입해 한국 창작동화의 서정성을 높이고 다양한 서술구조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동화작가였다. 그의 초기 동화는 ‘상실과 찾음’이란 구성 원리를 기저로 대상성에 깊이 파고들어 그 대상을 내면화한다. 이 책에는 <꿈을 찍는 사진관> 외 13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지은이
강소천은 1915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용률(龍律)이다. 고원공립보통학교와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 고향 미둔리에서 결혼했으며, 1945년부터 6·25가 일어나기 전까지 고원중학교, 청진여자고급중학교, 청진제일고급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1933년 동요 <울엄마젓>이 ≪어린이≫ 5월호에 입선되고, <까치야>가 ≪아이생활≫ 5월호에 윤석중의 고선으로 뽑혀 발표되고부터 정식 작가로 인정받았다. 1936년 ≪童話(동화)≫에 동요 <제비>, <따리아>, 동시 <국화와 채송화> 등을, 1937년 ≪소년≫ 창간호에 대표작 <닭>을 발표했으며, 1937년부터는 동요·동시와 함께 동화와 소년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강소천은 고향에서 6·25를 당하고, 1951년 1·4후퇴 때 고향에 부모와 처자를 남겨 둔 채, 흥남에서 군부대를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다. 이때 그는 남한 땅을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는 일시적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한시적 삶의 공간으로 생각했으나 6·25 전쟁은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으로 종결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결국 남한 땅은 그에게 삶의 터전으로 새롭게 일구어 내야 하는 공허한 삶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월남 후 그는 주로 아동잡지 편집과 교육 활동에 종사하며 1963년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 ≪새벗≫ 주간, ≪아동문학≫ 편집위원,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분과위원장,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문인협회 이사, 한국보육대학 강사,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강사, 국정교과서 국어과 심의 의원, 서울 중앙방송국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요시집 ≪호박꽃초롱≫(박문서관, 1941), 동화집과 소년소설집으로 ≪조그만 사진첩≫(다이제스트사, 1952), ≪꽃신≫(한국교육문화협회, 1953), ≪진달래와 철쭉≫(다이제스트사, 1953), ≪꿈을 찍는 사진관≫(홍익사, 1954), ≪달 돋는 나라≫(대한기독교서회, 1955), ≪바다여 말해다오≫(대한기독교서회, 1955), ≪종소리≫(대한기독교서회, 1956), ≪무지개≫(대한기독교서회, 1957), ≪인형의 꿈≫(새글집, 1958), ≪꾸러기와 몽당연필≫(새글집, 1959), ≪대답 없는 메아리≫(대한기독교서회, 1960), ≪강소천 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1), ≪한국아동문학전집?강소천편≫(민중서관, 1962), ≪어머니의 초상화≫(배영사, 1963), ≪강소천 아동문학전집≫ 전 6권(배영사, 1964), ≪강소천문학전집≫ 전 15권(문음사, 1981), ≪강소천 아동문학전집≫(교학사, 2006) 등이 있다.
엮은이
김용희는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다 .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아동문학평론≫지에 아동문학평론이 천료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으며, ≪쪽배≫ 동인으로 동시조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동문학평론집 ≪동심의 숲에서 길 찾기≫, ≪디지털 시대의 아동문학≫,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엮음), 동시조집 ≪실눈을 살짝 뜨고≫, 동시 이야기집 ≪짧은 동시 긴 생각 1≫ 등이 있으며, 제9회 방정환문학상, 제18회 경희문학상, 제21회 한국아동문학상, 제1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부센터장,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 계간 ≪아동문학평론≫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돌맹이 I
돌맹이 II
전등불의 이야기
조그만 사진첩
박 송아지
꽃신
빨강 눈 파랑 눈이 내리는 동산
꿈을 찍는 사진관
민들레
꽃신을 짓는 사람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영식이의 영식이
꾸러기와 몽당연필
어머니의 초상화
해설
강소천은
김용희는
책속으로
1.
인젠 영식이는 제 이름 석 자를 척척 쓸 수 있게 되었읍니다.
‘박영식’
이렇게 거침없이 쓸 수 있게 된 영식이의 기쁨이란 말할 수 없이 컸읍니다.
교과서 첫 장에 커다랗게 ‘박영식’이라고 써 봅니다. 마지막 장에도 써 놓읍니다.
참말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같이만 생각되었읍니다.
‘박영식’
이렇게 써 놓으면, 제가 쓴 것을 보고 누구나 ‘박영식’이라고 읽어 주는 게 글쎄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말입니다.
영식이에겐 여기저기에 제 이름을 써 놓는 게 무척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되어 버렸읍니다.
(중략)
어느 날 첫 시간이었읍니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읍니다.
“강남향, 김길수….”
이렇게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제각기 “예”, “예” 하고 대답합니다. 한 사람 이름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함께 “예”를 하는 법은 없읍니다. 누가 제 이름도 아닌데 “예” 하고 대답하겠어요. 유치원에서도 안 그러는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읍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예요.
글쎄 선생님이
“박영식?”
하고 부르자 한꺼번에 여럿이 “예” 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중략)
모른 척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다 다시 한 번,
“박영식.”
하고 불러 봤읍니다. 그러나 아까처럼 출석부의 이름을 보며 부르신 건 아닙니다. 출석부에서 눈을 떼어 장독이며 연통 토막을 바라보며 불렀읍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 하고 대답하는 건 역시 연통 토막과 장독들이었읍니다.
-<영식이의 영식이> 중에서
2.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방에서부터 나오는 한 줄기 빛이 있읍니다. 그 빛은 바로 사진기가 놓여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읍니다. 그래서 당신이 꿈을 꾸기만 하면 그 꿈은 곧 사진기 렌즈에 비추게 됩니다. 꿈이 비추기만 하면 사진기는 저절로 ‘쩔꺼덕’ 하고 사진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필림에 사진이 찍히면 곧 현상하여 손님의 요구대로 크게 또는 작게 인화지(사진종이)에 옮깁니다.
그런데, 문제 되는 것은 꿈을 꾸는 일입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꿈을 꿀 수 있으며, 또 꿈을 꾼다 해도 그게 정말 자기가 사진에 옮기고 싶은 꿈을 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가 사진관 주인에게서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사진 한 장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그것은 순이와 나의 나이 차이였읍니다. 실지 나이로는 순이와 나는 동갑입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여덜 해나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까?
순이의 나이는 열두 살 그냥 그대로인데, 나는 지금의 나이 스므 살이니깐요. 그동안 나만 여덜 해 나이를 더 먹은 것입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