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제목 그대로 명동 20년의 문단 일화를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허구라는 성격과 동시에 사실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이 소설을 읽는 행위는 재미있는 과거의 사건을 간접 체험하는 일이다. 명동에 드나들던 문인, 기자, 배우, 화가 등 특히 작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것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과 전쟁을 거치는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엿보는 것이 된다. 이러한 개인과 역사 사이에서 소설은 나름대로 일정한 긴장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러한 긴장력이 이 작품을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소설에서 먼저 살펴볼 것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다. 소설 전체가 일화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소재를 아우르는 일종의 톤이라고 할 만한 것을 작품 첫 부분에 두어야 할 것은 당연지사다. 이봉구도 이 소설을 지을 때 이 부분을 많이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1940∼1960년대에 명동을 드나들던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서 문학예술인의 분위기는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먼저 시와 술, 그리고 다방을 주요 요소로 제시한다. 정치, 근대화, 도시화 등이 합리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면, 이봉구가 주목한 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과 욕망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이봉구는 도시화·근대화가 되어 가는 서울의 한복판 명동에서 현대 도시가 억압하는 인간의 욕망, 본능, 충동, 광기 등을 민감하게 바라본다.
소설은 1940~1960년대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펼친다. 따라서 먼저 해방 정국 때 이야기가 나온다. 해방 정국은 남북 분단을 예고하는 시기였다. 이런 때에 당시에 나온 김기림의 시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는 매우 진지하게 당대 현실에서 수용되었다. 시가 실생활에서 작용하는 장면을 잘 기록한 것이다.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깃발 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자 맹세하던/ 오―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라는 구절을 담은 이 시에 대해서 당대 예술인은 “그렇다. 그날의 감격, 그 팔월로 돌아가자. 삼팔선은 무엇이며 미소공위(美蘇共委)란 무엇이냐?”로 화답한다. 동시에 이봉구는 “사실 날이 갈수록 팔·일오 감격은 사라지고 통일은 아득한 채 정치적 혼돈 속에 희망보다 절망이 가슴을 누르던 시기”라고 그 당시를 해석한다. 시대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 주는 문장이다.
200자평
1940∼1960년대, 서울 명동은 대한민국의 문화촌이었다. 지금은 그저 번화가이지만, 당시엔 여러 신문사·잡지사 등이 이곳에 있었고, 문인들이 쉴 만한 조촐한 다방과 값싼 막걸리집이 많았다. 예술가들의 별별 행동이 적힌 기록, 한 시대 예술계의 측면사다.
지은이
이봉구(李鳳九)는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고, 1932년에 중동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1934년 단편 <출발>을 ≪중앙≫에 발표하면서다. 이후 신문과 잡지에 시와 소설을 다수 게재했다. 1936년에 단편 <광풍객(狂風客)>을 ≪조선문학≫에 발표했고, ‘시인부락’, ‘풍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부터는 명동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았고, ‘단층’ 동인인 김이석과 ‘삼사문학’ 동인인 신백수, 이시우, 장서언, 그리고 ‘무기’를 경영하던 이상과 친분이 있었다. 1941년에는 문예 전문 서점을 경영하기도 했고, 1943년에는 매일신보사에 근무했다.
해방이 되자 소설 <도정>을 비롯해서 <속·도정>과 <명동 엘레지>, <언덕>, <부라운과 시계>, <보리와 대포>, <우수>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태양신문사 문화부장, 한성일보사 편집부국장 대우, 사회부장 겸 문화부장, 경기신문사 문화부장 대우 등을 역임했다.
그는 소설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을 비롯해서 ≪명동≫, ≪명동 비 내리다≫ 등 명동의 다방과 술집을 배경으로 실제 시인, 소설가, 기자, 화가, 배우가 사는 이야기를 일화 형식으로 썼다. 이러한 작품 경향으로 인해서 그는 ‘명동시장’으로 불렸다. 명동에서 거의 평생을 지낸 그는 1983년에 사망했다.
옮긴이
강정구(姜正求)는 1970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88년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경희대 국문과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1992∼1995년에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 과정을, 그리고 1995∼2003년에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주로 시인론에 주력했다. 한 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통해서 문학의 맛과 멋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지하의 서정시 연구>를 석사학위 논문으로, <신경림 시의 서사성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차례
序文
다방 ‘봉선화’
病든 서울
오랑캐꽃과 南宮蓮
黑人의 친구 裵仁哲
靑春茂盛
樂浪·휘가로·味樂 부근
명동장 시절
一九五О년 봄
廢墟의 달
南城館 마담
雜草
‘모나리자’의 失踪
포엠
‘夜來香’
‘東邦 싸롱’ 時代
세월이 가면―朴寅煥
달도 하나 해도 하나
金仁洙와 姜菖園
금 간 사람들
술잔 속의 樹州 先生
밤의 ‘은성’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알핀-봐이오렡’―田惠麟
휘나레
故園斷章
明洞 에레지
續·明洞 에레지
책을 내면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효민의 밤’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를 한번 봐주자는 데서 열린 모양인데, 술에 취해 늦게 온 정지용(鄭芝溶)이 들이닥치자마자 그 특유의 입담이 홍효민의 비위를 거슬르고야 말았다.
“효민의 밤은 뭐고, ≪인조반정≫은 다 뭐냐. 뭐, 역사소설을 쓴다구. 그 얼굴, 그 수염, 참 가관이다. 효민의 밤을 열어 준 당신네들도 참…”
이건 축사가 아니고 노골적인 무시요, 비방이었다. 매섭고도 재치 있는 정지용의 방담(放談)이 아니고, 의식적으로 까기 위해 술을 마시고 온 것이 틀림없다는 데서 수모 당한 홍효민보다 참석한 사람들이 더 참을 수 없다고 일어났다.
“문학동맹이면 문학동맹이지, 여기까지 와서 이 무슨 행패요.”
젊은 유동준이 정지용을 밖으로 끌어냈다. 이래서 ‘플라워’ 문밖 거리에선 싸움이 벌어지고 ‘효민의 밤’은 어색한 밤이 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