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크게 이론을 다룬 제1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의 발전’과 정책을 다룬 제2부 ‘사회민주적 농촌 정책’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는 사실상 마르크스 ≪자본≫에서 제시한 지대 이론과 농민층의 해체, 인구 이동에 관한 이론을 다시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2부는 그 이론적인 고찰을 토대로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이 취해야 할 농촌 정책들을 제안하는 부분이다.
제1부는 주로 농업경제학 이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카우츠키는 이 부분의 논리 전개 때문에 이른바 생산력을 중시한 것으로 주로 알려진다. 농업 기계 사용의 효율성, 활용하기 곤란한 자투리땅의 절약 등 몇 가지 예를 드는 데서 볼 수 있듯이, 규모의 경제에 의한 비용 절약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아주 간단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여러 나라에서 장기간에 걸친 통계 자료를 검토하고, 서로 보완적 구조를 이루고 있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소농과 대농의 양적 비율이 사회적 생산력의 변화로 인해 조금씩 변해 가는 현상을 주목한다. 소농은 가정과 농사가 일체화되어 있고, 가정을 통해서 노동력을 재생산해 주는 기능이 있다. 이는 대형 농장에는 없는 측면이다. 농촌에서 대농은 소농에게 부업을 제공해 부족한 소득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대농과 소농, 그리고 농촌의 농공업과 소농은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통계적 사실에서 출발해 귀납적으로 설명하고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정치경제학 이론가로서 범하기 쉬운 교조주의적인 논리 전개를 벗어나 역사적·통계적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적 접근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제2부에서 제시하고 검토한 농촌 정책들 대부분은 이미 20세기 현대 국가들에서 시행한 내용들이다. 특히 농촌의 어린이들이 농사일에 혹사당해서는 안 되며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국가가 나서서 힘써야 할 농촌 보건 문제 같은 것은 지금 관점에서는 진부한 문제 제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아니라 농촌 공업에서 물질 재활용의 문제, 삼림과 하천의 국유화, 주택 문제, 국가 보험 문제와 같은 정책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을 드러내 준다.
카우츠키에게 농촌과 농업이 중요했던 것은, 물(物)의 세계를 역사의 중심축으로 둔 역사관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이 무대가 자연과 인간의 노동이 직접 만나는 문화와 문명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농촌과 농업은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입장에서는 원료와 노동력의 공급지이고, 식량과 그 밖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산업이 되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도시보다도 더 고도의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의 근간인 토지와 가정에 관련된 사회의 각종 제도가 발달하며, 국가권력의 실체를 볼 수 있는 현장이다. 이 책에서 그러한 거시적인 시각을 배울 수 있다.
200자평
농촌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한 카우츠키의 저서를 한국어로 처음 번역 출간한다. 농업 생산이나 농촌 경제의 뼈대만을 다루지 않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기본적인 문제 구도 안에서 농촌을 무대로 한 재산, 생산과 소비, 인구와 문화의 제반 문제를 풍부하고 예리하게 고찰했다.
농촌 해체와 도시화로 인한 정신적 상처, 그리고 국토 환경의 상처로 고통 받는 한국 사회에 농촌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지은이
카를 카우츠키는 1854년 프라하에서 체코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20세에 빈 대학 철학부에 입학했고, 21세에 사회민주당 당원이 되었다. 1880년에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해 베른슈타인을 만나고 1881년 런던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직접 만나면서 유물사관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1883년에 ≪노이에 차이트≫를 창간해 1917년까지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정부의 전쟁공채 발행안에 사회민주당이 취해야 할 입장으로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정부가 방어 목적으로만 전쟁을 수행하고, 이 전쟁을 합병이나 배상금 요구나 점령 정책 없이 신속히 종식시키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는 조건에서 찬성해야 한다고 다분히 이론적인 주장을 펼쳐 소수 의견으로 몰렸다. 결국 1917년에는 ≪노이에 차이트≫의 편집인 자리에서 해촉되었다. 더구나 그해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했을 때 볼셰비키가 여러 사회주의 당파와 협력하지 않고, 권력을 독점하고 비공산주의 세력에 대해 공포정치를 펼치자 이에 반대하며 이론 투쟁을 벌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사회민주당 다수파와 독립파 간에 다시 협력이 이루어지고, 카우츠키는 외교부 장관 보좌역을 맡게 되었으나 독립파가 다수파와 협력할 수 없다고 내각을 떠남에 따라 업무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1924년 빈으로 이주해 1938년까지 거주하면서 ≪유물론적 역사관≫(1927)이라는 방대한 역사 이론서를 집필한 것을 비롯해 문필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반전사상가로서 ≪전쟁과 민주주의≫(1932), ≪사회주의자들과 전쟁≫(1937) 같은 저서를 통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을 규명하는 데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 때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네덜란드로 망명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드리하위스(Driehuis)의 베스터벨트 공동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이승무는 서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세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경제사상사, 경제학에서 확률적 방법론의 발달, 사회보험 등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LG환경연구원 등에서 환경 분야 정책 연구를 했으며, 폐기물과 자원 순환 정책 연구, 그리고 순환형 경제, 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순환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다.
자원순환 거버넌스포럼, 생명평화 연구교육 협동조합, 협동조합 사회자본연구원,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순환경제의 미시경제적 조건으로서의 협동조합적 기업 형태, 농촌을 중심으로 한 물질 순환 경제 모델, 사회적 신용과 사회적 자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탈핵 추구에 의한 지역 공동체 형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가 믿는 세상≫(2003, 에른스트 슈마허, 문예출판사), ≪그리스도교의 기원≫(2011, 카를 카우츠키, 동연), ≪일본의 순환형사회 만들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2012, 구마모토 가즈키, 순환경제연구소) 등이 있으며, ≪순환경제로 가는 길≫(2010, 순환경제연구소)을 썼다.
차례
머리말
제1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 발전
제1장 서론
제2장 농민과 공업
제3장 봉건시대의 농업
a) 삼포식 경작
b) 지주의 대경영에 의한 삼포식 경작의 축소
c) 농민은 극빈층이 된다
d) 삼포식 경작 체계는 농업의 견딜 수 없는 질곡이 된다
제4장 현대 농업
a) 육류 소비와 육류 생산
b) 윤작경제. 분업
c) 농업에서 사용되는 기계
d) 거름, 박테리아
e) 농업, 하나의 과학
제5장 현대 농업의 자본주의적 성격
a) 가치
b) 잉여가치와 이윤
c) 차액지대
d) 절대 지대
e) 토지 가격
제6장 대경영과 소경영
a) 대경영의 기술적 우위
b) 소농가의 과잉노동과 과소소비
c) 협동조합 제도
제7장 자본주의적 농업의 한계들
a) 통계 데이터
b) 공업에서 소기업의 몰락
c) 토지의 제한성
d) 대기업이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니다
e) 라티푼디움
f) 노동력의 부족
제8장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
a) 토지의 소분할 경향
b) 농민 부업의 여러 형태
제9장 상품 생산 농업의 증대하는 어려움
a) 지대
b) 상속권
c) 신탁유증과 일자상속법
d) 도시의 농촌 착취
e) 농촌 들녘의 인구 감소
제10장 국제 식량 경쟁과 농업의 공업화
a) 수출 공업
b) 철도 체제
c) 식량 분야의 경쟁
d) 곡물 생산의 후퇴
e) 공업과 농업의 통일
f) 공업의 농업 축출
제11장 미래 전망
a) 발전의 추진 동력
b) 사회주의적 농업의 요소들
제2부 사회민주적 농촌 정책
제1장 사회민주주의에는 농촌 강령이 필요한가?
a) 농촌으로!
b) 농민과 프롤레타리아
c) 계급투쟁과 사회 발전
d) 토지 국유화
e) 삼림과 하천의 국유화
f) 촌락공산주의
제2장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호
a) 공업 및 농업 사회 정책
b) 단결권, 고용자 조례
c) 어린이 보호
d) 학교
e) 여성노동
f) 이주노동
g) 정상 노동일과 시간, 일요일 휴무
h) 주거 문제
i) 소작료
제3장 농업의 보호
a) 기업가 이해관계의 대변자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b) 봉건적 특권. 수렵권
c) 산재 농지
d) 토지 개량
e) 전염병 극복 노력
f) 국가보험
g) 협동조합, 농업 교육제도
제4장 농촌 인구의 보호
a) 경찰국가의 문화국가 전환
b) 자치행정
c) 군사주의
d) 학비, 구빈세, 통행세 등의 국유화
e) 무료 소송
f) 현대 문화국가의 비용
g) 부르주아적 조세 정책과 프롤레타리아적 조세 정책
h) 농민 계층의 중립화
제5장 사회혁명과 토지 소유자의 수탈
a) 사회주의와 소농
b) 자기 집의 미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400마르크의 화폐소득이 있는 소농을 생각해 보자. 그는 집세를 내지 않고 식량의 상당 부분을 직접 생산한다. 그는 필시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불행히 프롤레타리아트로 내던져질 수 있다. 그는 도시로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 연소득 800마르크를 받는 일자리를 구한다. 소득은 두 배가 되었는데도 그의 형편은 악화될 수 있다. 그는 이제 집세를 내야 하고, 필시 일터에 출퇴근하는 철도 요금도 내야 한다. 예전에는 아무런 돈도 들지 않았던 우유, 계란, 채소, 돼지고기를 이제는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자식들은 더 이상 맨발로 뛰어다닐 수 없고, 더 나빠진 위생 조건은 의사와 약사에게 더 많은 지출을 요구한다. 그러나 소득 통계자에게는 그 사람이 지금 예전보다 두 배로 좋은 형편에 있으며, 주민의 복지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증거가 반박할 수 없이 제출된 것이다.
-246쪽
확실한 것은 농촌 위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중단되지 않으리란 것,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정 재고에 속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유럽의 농업을 짓누르던 자본주의의 부담이 이제는 합중국, 러시아 등 경쟁자들도 짓누르기 시작한다면, 이것이 입증하는 것은 서유럽에서 농촌 위기가 끝나 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된다는 것이다.
-4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