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와 더불어 독일 바로크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중세의 신앙과 17세기 말의 새로운 신앙 운동인 경건주의(Pietismus)를 잇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에 낭만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심오한 내면 경험을 조명해 주는 ≪방랑하는 천사(Der Cherubinische Wandersmann)≫(1657)는 알렉산더격(-格, Alexandriner) 시행(詩行)을 사용한, 총 1675편의 경구(警句, Epigramm) 모음집이다.
의사이자 논쟁적인 신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시인의 업적으로 기억되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신비주의 계보 내의 다양한 영적 유산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형상화했다. ≪방랑하는 천사≫는 성서와 성서가 쓰이기 이전의 영적 유산들,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메히트힐트 폰 마그데부르크,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십자가의 성 요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아브라함 폰 프랑켄베르크, 야코프 뵈메, 요한네스 타울러 등 신비주의자들의 기록에서 발견한 생기 있는 ‘진실들’을 짧고 선명한 시구절로 집대성한 작품이다.
철학자와 작가들, 예로 셸링, 하이데거, 릴케, 보르헤스 등도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 ‘서양 신비주의와 동양의 불교’라는 맥락에서 선(禪)불교와 통하는 면모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 왔으니, 그에게로 통하는 길은 여럿이라 하겠다. 그 길들은 모두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놀라운 경험과 이를 비상한 역설로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빛나는 사유의 정수(精髓)를 향한 것이다.
≪방랑하는 천사≫라는 제목은 ‘방랑하고 편력하는 케루빔 천사와도 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케루빔은 일반적으로 천사와 동일한 의미이지만, 가톨릭 신학에서는 천사의 반열에서 세라핌과 더불어 가장 높게 여기는 상급 천사의 하나다. 세라핌은 온전한 사랑을, 케루빔은 최고의 인식을 대변한다. 그래서 ‘방랑하는 천사’는 케루빔처럼 특별한 인식의 힘으로 신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함의를 갖게 된다.
200자평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는 유럽 기독교 신비주의를 집대성한 바로크 시가다. 형식과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초연함과 신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그의 신비주의 신학은 하이데거, 릴케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이 ‘촌철 격언시’들은 시대와 종교를 초월해 크나큰 깨달음을 준다.
지은이
안겔루스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 1624~1677)는 1624년 12월 25일,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세례명 요한네스 셰플러(Johannes Scheffler)]는 오늘날 폴란드에 속하는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다. 신교파와 구교파가 전쟁을 벌이던 30년 전쟁이 발발한 지 6년째 되던 해에 태어난 요한네스 셰플러는 아버지에게서 엄격한 루터파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1639년에 그와 두 어린 여동생은 아버지를 잃고, 2년 뒤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다. 그리고 누구였는지 전해지지 않는 이의 도움을 받아 그는 브로츠와프의 엘리자베스 김나지움에 진학하게 된다. 그때 교사들은 셰플러에게 시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1643년, 열여덟 살이 된 그는 대학에 진학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학을 공부하려 한다. 고향의 대학에 1년간 머무르다 홀란드의 레이던(Leiden)으로 건너간 그는 약초학을 공부하는 한편, 신비주의자 그룹을 접하게 된다. 요한네스 셰플러가 태어난 해에 죽은 슐레지엔 지방 출신의 신비주의자인 야코프 뵈메(Jakob Böhme, 1575∼1624)의 저술을 접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는데, 이는 특별한 내적 사건이 되었다. 1648년, 마침내 30년 전쟁이 끝나 가고 그는 당시 체류하던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융성했던 도시 파두아(Padua)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자격을 취득하는 한편, 그 지방의 반 종교 개혁의 기운이 왕성한 가톨릭 신앙을 접하며 영향을 받게 된다.
1649년, 요한네스 셰플러는 25세의 나이로 브로츠와프의 대공 질비우스 님로트의 궁중의(宮中醫)가 되는데, 대공은 루터파 신앙을 견지하는 인물이었다. 대공의 곁에는 크리스토프 프라이타크라는 궁중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강직한 태도로 루터파 교의가 잘 지켜지는지 관리 감독하는 직무를 수행했다.
1652년, 요한네스 셰플러에게 야코프 뵈메의 저술을 알려 주고 영적으로 이끌어 준 아브라함 폰 프랑켄베르크가 세상을 떠난다. 셰플러가 빛나는 영적 통찰과 직관으로 ≪방랑하는 천사≫를 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시들을 그와 마찬가지로 신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전달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 때문에 요한네스 셰플러는 루터파의 교리를 주관하는 권력, 이를테면 궁정 목사 크리스토프 프라이타크와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아브라함 폰 프랑켄베르크를 위한 추모시>를 발표하고 신비주의 경향의 앤솔로지를 출간하려다 갈등을 빚으며 출판을 금지당한 일이었다.
1652년, 셰플러는 궁중의 자리를 내놓고 궁에서 물러난다.
1653년 6월 12일, 그는 브로츠와프의 성 마티아스 교회에서 로만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로 개명한다. 그의 개종은 큰 주목을 받았는데, 신교 측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게 되자 그는 개종의 변으로 가톨릭의 장점을 제시하며 자신을 옹호했다. 이때부터 그는 슐레지엔 지방의 반종교 개혁 운동의 선봉에 섰고, 마르틴 루터를 악마(Luzifer)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며, 죽을 때까지 반종교 개혁 진영에 서서 55편에 이르는 극도로 논쟁적인 글들을 발표하며 논쟁을 벌인다.
1654년,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명예 궁중의가 되고 로사리오 형제단의 일원이 된다.
1657년, 그의 대표작인 ≪방랑하는 천사≫를 첫 출간한다.
1661년에는 브로츠와프 주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다.
1664년부터 브로츠와프의 후작 주교 제바스티안 폰 로슈토크의 대신(大臣)으로 봉직하다가, 그가 죽자 질레지우스는 공직에서 은퇴한다.
1675년에는 ≪방랑하는 천사≫의 6부를 마저 출간한다.
1677년 병고를 겪다 5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죽기 전까지 성 마티아스 십자수도회에 머물며 신학 논쟁적인 글을 쓰고 프란체스코회원으로서 자선을 베풀며, 마지막까지 기도와 명상에 침잠하다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조원규는 서강대 독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신비주의 문학을 전공했다. 198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해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 ≪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이 있고, ≪유럽의 신비주의≫ 외 다수의 번역서를 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독일 문학과 문예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차례
헌사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천국이 그대 안에 있다
멈추라, 어디로 달려가는가, 천국이 그대 안에 있다!
어느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그대는 신을 영영 놓치고 말리.
그리스도가 천 번이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도
그대에게서 나지 못한다면,
그대는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이라네.
베풀라, 그대가 바라는 대로
사람아, 신께는 온 천국을 바라면서
누군가 빵 한 조각을 달라고 하면
그대의 낯빛 창백해지는구나.
결말
친구여, 이제 충분하다네.
그대가 더 읽고 싶거든
그대 스스로 문자가 되고
그대 스스로 본질이 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