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화소설로서의 <서동지전>
변동기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흥미로운 요소를 여럿 지니고 있어서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인물과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한 인물의 극단적 대립, 이들의 날카로운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지와 송사, 그리고 관권의 개입에 이르기까지 매우 자극적인 설정과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관권에 의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었던 부자와 빈자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 분해로 치달았던 변동기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본의 세 가지 계열
‘양식 다툼’과 ‘송사’는 이 작품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데, 인물 간의 ‘양식 다툼’은 갈등의 ‘계기’로, 관권에 의한 ‘송사’는 갈등의 ‘해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과 해결 양상이 이본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나 있으므로 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본에 따라 송사의 실상이 다양한데, 다람쥐의 ‘소지’가 ‘무고’로 밝혀지는가 하면 반대로 다람쥐의 억울함을 밝혀내지 못해 ‘관권의 무능’이 폭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차가 생기게 된 원인은 작품이 문제 삼았던 대상이 어느 한쪽으로 단정할 수 없는 민감한 것인데다가 우화소설이라는 작품의 특성이 겹쳐지면서 독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서동지전>의 이본은 내용의 유사성과 전승·유통의 유사성을 고려해 한글 필사본(약 7종), 한문본(약 3종), 활자본(약 2종) 등 세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서동지전>은 이본이 그리 많지 않은 데 비해 작품의 내용에 편차가 크고 주제도 엇갈리는 편이어서 좀 더 정확하고 바람직한 감상을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고소설은 필사(筆寫)라는 방식을 통해 전승·유통되었는데, 필사는 일회적 독서나 단순 향유가 아닌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향유 방식이다. 왜냐하면 필사 과정에 향유자의 입장이나 의식이 개입되기 마련이어서 글자나 표현 차원의 단순한 개작은 물론이고 인물 묘사나 내용의 변개, 특히 결말 개작을 통한 주제의 변개 등 심각하고 전면적인 개작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동지전>이 이본 계열 사이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유통 방식과 연관이 깊다.
200자평
쥐와 다람쥐 사이에 일어난 ‘양식 다툼’을 ‘송사’로써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부요한 서대쥐를 찾아가 양식을 얻었던 다람쥐는 이듬해에 또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게 되고, 이에 앙심을 품고 ‘송사’를 일으킴으로써 두 인물의 갈등은 증폭되어 결국 판관 앞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은이
모름.
옮긴이
최진형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동안 주로 판소리와 고소설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 단독으로 쓴 책으로는 ≪판소리의 미학과 장르 실현≫(2002), ≪서사 문학과 문화 담론≫(2008)이 있다. 최근에는 고소설이나 판소리가 출판물로 유통되고 향유되었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심청전의 전승 양상>, <흥부전의 전승 양상>, <출판문화와 토끼전의 전승>, <판소리 서사체의 주제에 대한 일 고찰> 등의 논문을 썼다.
차례
서대쥐가 자손들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당 천자의 교지를 받아 동지(同知)가 되다
서대쥐를 축하하기 위해 당상 잔치를 열다
다람쥐가 서대쥐를 찾아가 양식을 얻다
빌린 양식을 다 먹은 다람쥐가 다시 한 번 서대쥐를 찾아가다
거절당한 다람쥐가 홧김에 송사를 준비하다
백호산군을 찾아간 다람쥐가 소지를 올리다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쥐를 잡으러 가다
서대쥐가 백호산군에게 무죄를 주장하다
백호산군이 판결을 내리다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다람쥐는 본래 성품이 표독하고 마음이 불순한지라. 서대쥐 허락하지 아니함을 보고 독한 안모(顔貌)에 노기(怒氣) 돌돌(突突)하여 몸을 떨치고 일어나며 가로되,
“분재(憤哉)며 통재(痛哉)라. 빈자소인이요 빈무성명(貧無姓名)이라더니 나를 두고 이름이라. 집이 가난하면 군자도 욕을 받고 몸이 곤궁하면 남의 천대를 받으며, 귀하여야 집안 개도 보고 공경한다 하나 시호시호(時乎時乎)여 부재래(不再來)라. 부귀도 매양이 아니라. 오호라 한나라 양기는 일문(一門) 내에 제후가 칠 인이요 황후는 삼 인이요 귀인은 육 인이요 대장은 이 인이요 공주는 삼 인이요 삼공육경(三公六卿)은 오십칠 인으로 부귀영총(富貴榮寵)이 여차하되 일조일석에 처자형제와 노비 계견이 일제 사망하였나니 부귀는 끈이 있어 매양 차고 있을 것이 아니고, 빈천은 씨가 있어 매양 빈천만 낳을 바 아니며, 옛날 북해상에서 십구 년 고생하던 소무도 돌아올 때 있었으니, 내 비록 빈천하나 귀불귀(貴不貴)를 어찌 의논하리오. 속담에 일렀으되 가빈당보세개의(家貧當報世皆疑)요 부주심산유원친(富住深山有遠親)이라. 가히 분(忿)하고 가히 통석(痛惜)하도다.”
인하여 노기발발하여 가거늘 서동지 도리어 웃고 가로되,
“옛말이 옳도다. 배은망덕이요 은반위수라 함은 어차가위(於此可謂)로다. 연이나 영피부아(寧彼負我)이언정 아불부피(我不負彼) 하리니 후일 다시 저의 함원(含怨) 풀어 주리라.”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