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송영 소설은 그의 정치사상을 아울러 고찰할 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송영 문학 연구는 소설보다는 희곡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소설들이 대부분 계급 사상을 형상화해 문학적인 완성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 전체를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계급주의 경향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당대의 현실과 연결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은 계급 해방뿐 아니라 민족해방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계급문학은 민족 문학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느러가는(늘어가는) 무리>에서 주인공 이승오는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찢어진 바지에 계절에 맞지 않는 남루한 차림을 한 채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전전한다. 승오는 동경으로 건너온 뒤 3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으려 애쓰지만, 식민지 피지배인이라는 것과 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것, 그리고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다. 일자리를 찾아 노동판에 들어온 승오의 모습은 무작정 동경으로 건너와 노동판을 전전했던 송영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가 일자리를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밥을 벌어먹으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왜소한 체구로 인해 노동판에서도 여러 번 거절을 당한 뒤에 일가 형의 추천으로 한국인 시다오야가다(소두목)를 찾아가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서툰 솜씨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게 된 그는 성적인 본능을 해결하려는 다른 노동자의 손길을 느끼고 밖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노동자들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된 것을 깨닫게 된다.
<석공 조합대표>의 박창호는 평양에 있는 석공들의 대표로 선출되어 내일이면 서울에서 열리는 노동자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창호는 이 대회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있는 자신을 그려보면서 승리의 희열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양돼지 같은 주인 영감’은 창호의 서울행을 극구 만류한다. 주인은 창호가 출근을 하지 않고 서울에 가게 되면, 그의 아내와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고 굶어 죽을 것이라고 위협을 한다. 그의 서울행을 방해하는 것은 주인 영감의 위협보다 아버지의 눈물 어린 만류다. 아버지는 주인 영감이 소유한 과수원을 경작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만약 창호가 서울에 가게 되면, 주인 영감이 과수원 경작권을 빼앗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호는 아버지의 애소에 마음이 흔들리다가 석공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마음을 돌이켜 마침내 서울로 떠나고, 그의 가족들은 주인 영감의 폭압 아래 놓이게 된다. 창호가 서울로 간 지 닷새 후에, 주인 영감은 낯선 사람을 대동하여 과수원 경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창호에 대한 분노를 아버지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이로 인해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창호의 처는 시아버지가 학대와 모욕을 받는 것을 보고 주인 영감에게 달려들어 싸운다. 이때 서울에서는 대회를 원만히 마쳤다는 만세 소리가 나고, 그중 창호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진다.
<군중정류>는 소작인이 지주의 횡포에 맞서서 싸우는 과정을 위트 넘치는 서사로 그리고 있다. 동네에 도둑을 막기 위해 순을 돌던 순진한 농사꾼인 순호는 빚을 제때에 갚지 못해 빚 문서를 훔치는 도둑이 된다. 소설의 서두와 말미가 서로 대조되면서 순진한 농사꾼이 도둑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순호는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인 이유가 이 동네의 지주인 ‘쉰둥개’ 김 농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호는 곗날이 돌아와 김 농감에게 터무니없이 이자가 붙은 빚을 독촉받다가 결국은 저당 잡힌 집문서를 넘길 것을 종용받는다. 순호는 소작인 조합의 동무가 소작인들이 단결하면 근심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던 말을 생각하고, 김 농감이 가지고 있던 빚 문서들을 가지고 달아나 불살라 버린다.
<아버지>는 아들이 써놓은 미발표 원고를 찾아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서 주사의 이야기다. 서 주사의 아들 만식이는 압수 잘 되는 소설을 쓰다가 감옥에 간 상태이고, 가족들은 며느리가 삯바느질해서 버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서 주사는 아들의 원고를 찾다가 아들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삶을 그려놓은 글을 읽게 된다. 아들은 어린 시절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주색잡기에 놀아나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고, 언제나 아들에게 엄하고 무섭게 대하면서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 깊은 원망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양 소설들에 깊이 빠져들어 소설가가 되었던 것이다. 서 주사는 아들의 글을 읽고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화산같이 폭발’하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시선을 통해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낯설게하기에 성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들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검열되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굴하지 않는 지식인의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은 KAPF의 해체 이후에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송영의 내면 풍경일 것이다. 이런 내면 풍경은 <‘솜틀거리’에서 나온 소식>에서도 드러난다. 이 소설은 야학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떠난 선생님에게 쓴 편지다. 선생님이 떠난 뒤에 야학은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생계를 위해서 공장에 취직하거나 남의 집 식모가 되거나 기생이 되는 과정을 밟게 됐다. 또 폐병쟁이 순이는 돈 오백 원에 만주로 팔려가 아버지에게 장작 가게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작품이 애상적이거나 패배적이지 않은 것은 야학을 그만두고 떠났던 선생님이 삼 개월 후에는 돌아오기 때문이다. 야학 선생님은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시골로 내려갔다거나 장사를 하러 떠났다고 하지만, 실상은 사상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는 이곳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솜틀’ 같은 작은 집에서 고통받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여전히 희망과 미래를 꿈꾸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200자평
계급주의적 정치사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인 송영의 5편의 작품이 실렸다. 계급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도식성에서 벗어나 소설적 진실성을 담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송영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은이
송영(宋影)의 본명은 송무현(宋武鉉)이고, 필명은 송영 외에 송동양, 앵봉산인, 앵봉생 등이 있다. 1903년 5월 24일 서울에서 출생했고, 어린 시절에는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문학을 가까이 하게 됐다. 15세(1917)에 배재중학에 입학하면서 박세영과 함께 ‘소년문예구락부’를 조직했고, ≪새누리≫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습작 소설을 게재했다.
1919년에 3·1운동에 가담하여 동창생들과 ≪자유신정보≫라는 비밀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3년 동안 운송부 잡역으로 일한다. 이 시기 동안 크누트 함순,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고골, 체호프, 몰리에르 등의 외국 문학과 레닌과 마르크스의 이념 서적을 접하게 된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간 송영은 동경에서 낮에는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예술 강의를 들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반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감하고, 1922년 말 고국으로 돌아온 송영은 ‘새누리’라는 문학 단체를 조직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새누리의 재건을 위한 결실로 1923년에 염군사가 발족하였다. 새누리의 멤버였던 박세영, 이적효, 이호 등이 중심으로 이뤘지만, 염군사는 ‘무산계급 해방 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고 조직 강령을 정한 사상 단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강한 정치성으로 인해 파스큘라와의 연합을 거절당했다.
송영은 <느러가는 무리>가 ≪개벽≫(1925. 7)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그는 1925년 8월 24일에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하지 못하고, 고양군으로 내려가 아동교육에 힘쓴다. 그곳에서 박세영과 함께 아동문화 예술 단체인 ‘앵봉회’를 조직하고, 아동잡지 ≪별나라≫를 편집했다. 이런 경험들이 소설 <야학 선생>(1932), <그 뒤의 박승호>(1932), 희곡 <월파 선생>(1936)에 나타나 있다.
송영은 KAPF의 1차 방향 전환 이후 KAPF 내의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1차 방향 전환 이후 프로문학은 현실에 대한 계급적 이해라는 막연한 접근에서 벗어나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반영해 나가는 것으로 전환한다. 그런 과정에서 KAPF는 예술가 조직이 아닌 대중 조직으로 변모한다. 송영은 1차 KAPF 검거에서 불구속 처분을, 2차 KAPF 검거에서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다. 1935년 KAPF 해산 후에 송영은 <월파 선생>과 <황금산>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다가, 프로 극단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자, ‘동양극단’의 전속 작가로 활동한다. 당시 비평계에서는 상업 작가가 됐다고 그를 비판했지만, 송영은 “오히려 좋은 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1938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에 참가하여 ‘전조선전향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의사 전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1940년 이후에는 국민 연극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이기영, 한효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예맹)’을 조직했으나, 1946년 임화의 주도로 예맹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자, 1946년 월북하게 된다. 월북 후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이다가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참전하고, 1959년 9월 8일 북한에서 가장 영예로운 칭호인 인민상 계관인(桂冠人)이 된다. 1978년 정신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엮은이
김학균은 1970년에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는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화자의 성격 연구>(1999), <염상섭 소설의 추리소설적 성격 연구>(2008) 외에, <‘사랑과 죄’에 나타난 연애의 성립 과정> 등 염상섭의 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느러가는 무리
석공 조합대표(石工組合代表)
군중정류(群衆停留)
아버지
‘솜틀거리’에서 나온 소식(消息)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성미 급한 개나리는 벌거버슨 몸으로 노란 웃음을 웃고 있습니다.
파리는 주춧돌 아래에서 앵앵거리고 강아지는 아모나 보고도 깡충깡충 뛰어올늠니다.
천하는 웃읍니다. 노래함니다.
지긋지긋하든 겨울을 쫓아버린 남어지에 눈물까지 냄니다.
인제는 선생님도 치웁지만은 않으실 터이지요.
하여간 봄이라 봄기운에 싸혀만은 게시겠지요.
무엇보다도 건강입니다. 승리입니다. 겨울에게 지시지 않으신 거룩한 선생님의 마음은 종달새와 꾀꼬리와 왼 봄을 노래하는 만물의 마음과 같이 어울녀지시여서 게시겟지요. 그보다도 더 더 확실하게 깃버하시고 더 명낭한 자신을 가지고 게시겟지요.
-<‘솜틀거리’에서 나온 소식(消息)>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