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용향악보≫는 조선 전기 궁중에서 편찬한 향악보(鄕樂譜)다. 구체적인 편찬 시기에 대해 세조∼연산군 사이, 명종∼선조 사이, 성종 시대 등의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여러 정황과 연구 성과를 고려할 때 연산군 10년(1504) 전후에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편찬 주체와 소용처(所用處)는 궁중으로, 수록된 노래들은 궁중 연향에서 불린 것으로 보인다. 소재 작품 가운데 <납씨가>, <유림가>, <풍입송>, <야심사> 같은 노래가 민간에서 유통되기 어렵고 보법(譜法)에서 ≪세조실록 악보≫와 마찬가지로 6대강(六大綱) 16정간보(十六井間譜)를 채택했으며, 매 강(每綱)을 4행으로 구분해 제1행에 5음 약보(五音略譜), 제2행에 장고법(杖鼓法)을, 제3행에 박법(拍法)을, 제4행에 가사를 붙인 점은 궁중 악보 편찬의 경험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66쪽의 비교적 많은 분량을 목활자로 간행한 점도 민간이 주도했다고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이다.
≪시용향악보≫는 악보에 가사를 함께 싣고 있다. 이 가운데 몇 편을 제외하고는 비록 1연이지만 가사는 모두 국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시용향악보≫가 악보 위주 악서임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문 가사를 수록한 점에서는 ≪악학궤범≫에서 마련한 전통을 이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세종 때의 ≪속악보≫를 계승하면서도 16세기 궁중 연향을 위한 ‘시용서(時用書)’로서의 위치에 있었음을 상기할 때, 이 악보는 궁중 악서 분화 현상의 일면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노래들은 모두 26곡으로, 이 가운데 <납씨가>, <유림가>, <사모곡>, <서경별곡>, <정석가>, <청산별곡>, <귀호곡>, <풍입송>, <야심사> 9곡은 다른 문헌에도 보이는 노래들이며 나머지 <횡살문>, <쌍화곡>, <나례가>, <유구곡>, <상저가>, <생가요량>, <성황반>, <내당>, <대왕반>, <잡처용>, <삼성대왕>, <군마대왕>, <대국 1>, <대국 2>, <대국 3>, <구천>, <별대왕> 17곡은 ≪시용향악보≫에서 최초로 출현했다.
이처럼 ≪시용향악보≫는 조선 전기 궁중에서 연향을 고려한 향악보이며, 악서 편찬의 흐름 속에서 ≪악학궤범≫이 가사와 무용 위주 악서인 것과 달리 악보와 가사 위주의 악서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문헌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연향 악곡의 가사를 기록하고 있어 한국 문학과 음악계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재 노래 가운데 고려 시대의 것이 적지 않아 한국문학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자평
우리 선조들은 어떤 음악을 즐겼을까? 왕실 연회에서는 기품 있고 우아한 곡만 연주했을까? 답은 ‘아니오’다.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궁중에서 즐겼던 음악은 중국식 ‘당악(唐樂)’이 아니라 당시 백성들이 즐겼던 우리 음악 ‘향악(鄕樂)’이고, 그 내용도 제사, 굿, 왕덕 칭송, 백성 교화, 연애 등 다양하고도 실제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시용향악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악장가사>, <악학궤범>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 음악서로 손꼽히는 <시용향악보>는 다른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은 악곡이 16수나 실려 있어 고대 가요 및 국어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가사뿐 아니라 악보를 함께 기록했기에 민속악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본서에서는 현대어 번역과 원문을 소개하고, 1장만 실려 있는 작품 중 다른 문헌에 전문이 있는 경우는 그 전문도 함께 실어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부록으로 실린 영인본은 조선 시대의 악보가 어떤 것인지 직접 눈으로 보여 준다.
옮긴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 상지대, 충북대, 상지대 강사, 고려대학교 초빙 교수, 파키스탄 국립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조교수 및 학과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한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 중기 시가와 자연≫(공저, 2002), ≪악장가사 연구≫(2004,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한국 고전시가의 모색≫(2008), ≪중세 동서 문화의 만남≫(공저, 2008), ≪중세 동서 시가의 만남≫(공저, 2009) 등이 있고, 번역·자료서로 ≪악장가사 주해≫(2004), ≪교주 조선가요 집성≫(2008), ≪개정판 고려속요 집성≫(2008), ≪악장가사≫(2011), ≪시용향악보≫(2011,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차례
1. 납씨가(納氏歌) ·················3
2. 유림가(儒林歌) ················6
3. 횡살문(橫殺門) ················10
4. 사모곡(思母曲) ················12
5. 서경별곡(西京別曲) ··············14
6. 쌍화곡(雙花曲) ················17
7. 나례가(儺禮歌) ················20
8. 정석가(鄭石歌) ················22
9. 청산별곡(靑山別曲) ··············25
10. 유구곡(維鳩曲) ················27
11. 귀호곡(歸乎曲) ················28
12. 생가요량(笙歌寥亮) ··············30
13. 상저가(相杵歌) ················31
14. 풍입송(風入松) ················32
15. 야심사(夜深詞) ················37
16. 성황반(城隍飯) ················39
17. 내당(內堂) ·················41
18. 대왕반(大王飯) ················43
19. 잡처용(雜處容) ················45
20. 삼성대왕(三城大王) ··············50
21. 군마대왕(軍馬大王) ··············52
22. 대국 1(大國一) ················54
23. 대국 2(大國二) ················56
24. 대국 3(大國三) ················58
25. 구천(九天) ··················59
26. 별대왕(別大王) ················61
부록 – 이겸로 소장본 ≪시용향악보≫ 영인본 ······················63
해설 ······················231
옮긴이에 대해 ··················236
책속으로
생황(笙簧) 소리 맑고 낭랑하게 궁전 뜰에 들리어,
임금의 수(壽) 만년을 아뢰네, 만만수를.
옥전(玉殿) 금계(金階)에서 연회를 베푸니,
오늘 같은 가을밤에 신선이 내려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