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르놀 루베크는 한때 <부활의 날>이라는 조각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조각가다. 작품의 모델은 이레네라는 여인이었다. 이 작품이 역작이 될 것임을 알아보고 기꺼이 루베크의 작업에 합류한 것이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레네를 모델로만 대하는 루베크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레네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떠나 버린다. 그 후 루베크는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잃고 만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창조적 영감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은 이레네뿐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야와 결혼한 뒤로는 내내 아내와 함께 외국을 전전한다. 시간이 지나자 부부 관계도 점차 시들해지고 만다.
극은 어느 한적한 바닷가 호텔에 머물고 있는 루베크와 마야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대지주이자 곰 사냥꾼인 울프헤임이 나타나고, 마야는 거칠고 야성적인 성향을 가진 이 사내에게 금세 호감을 느낀다. 한편 호텔 투숙객 중에는 수녀를 동반하고 다니는 흰옷 차림의 신비스러운 여인이 있다. 곧 그녀가 이레네임이 밝혀진다. 그녀는 그동안 두 번 결혼을 했으며 정신병원에도 수용된 전력이 있다. 고통스러운 재회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과 영혼을 황폐하게 만든 루베크를 비난한다. 반면 루베크는 이레네에게 자신에게 돌아와 잠들어 있는 창조적 활력을 되찾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두 사람은 결국 산 정상에 올라 그곳에서 서로의 사랑을 이루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상 정상 부근에서 폭풍우가 밀려오고, 이에 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던 두 사람은 산사태에 휩쓸린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 지긋한 예술가, 결혼 생활에서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는 남자, 오랜 외국 생활 끝에 비로소 고향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편히 쉴 수 없는 이방인, 예술의 정점에서 자괴의 고통을 겪는 작가,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노신사, 이상을 좇는 구도자. 작품을 둘러싼 은유와 상징의 베일을 걷어 내고 나면, 우리는 어느새 이 작품을 쓸 당시 입센의 자화상과 만나게 된다. 그의 가장 실험적인 희곡이자 작가 자신의 최종적인 결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200자평
잘나가던 조각가이자 자부심 넘치는 예술가였던 루베크는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잃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마야와 결혼해 지루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지의 한 호텔에서 루베크는 과거 자신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던 한 여인과 재회한다. 입센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은 1828년 3월 20일 노르웨이의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서 남서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작은 항구도시 시엔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집이 파산해 열다섯 살까지 약방에서 도제로 일했다. 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수험 준비를 하는 한편, 신문에 만화와 시를 기고했다. 희곡 <카틸리나>(1848)를 출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그 후 <전사의 무덤>(1850) 상연을 계기로 대학 진학을 단념하고 작가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 1851년 국민극장 상임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초청되었는데, 이때 무대 기교를 연구한 것이 훗날 극작가로 대성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1857년에 노르웨이 극장으로 적을 옮긴 뒤 최초의 현대극 <사랑의 희극>(1866)과 <왕위를 노리는 자>를 발표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목사 브란을 주인공으로 한 대작 <브랑>(1866)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다. 이후 <페르 귄트>(1867), <황제와 갈릴리 사람>(1873) 등에서 사상적 입장을 확고하게 굳혔다. 이어 사회극 <사회의 기둥>(1877), <인형의 집>(1879) 등을 발표했다. 특히 <인형의 집>은 여주인공 노라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과정을 묘사해 여성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00년 뇌출혈로 첫 발작을 일으킨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1906년 78세로 사망했다.
옮긴이
조태준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앙토냉 아르토의 연극이론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객원교수를 거쳐 배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2년 미국 루이지애나 대학교(ULL) 커뮤니케이션학과 방문교수를 지냈다. 연극 이론 및 극작술, 공연 미학 관련한 논문과 칼럼을 여러 편 썼으며, ≪골고다의 딸들≫(한웅출판, 1992), ≪바람의 전쟁≫(열린세상, 1996) 등의 번역 소설과 번역 희곡 ≪유령소나타≫(지만지, 2014)와 ≪바다에서 온 여인≫(지만지, 2015), ≪로칸디에라≫(지만지, 2016)를 펴냈다. 또한 연극 현장에서 극작가 및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 장르를 넘나들며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고 현재 극단 인공낙원 대표, 극단 하땅세 상임연출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희곡 <창밖의 앵두꽃은 몇 번이나 피었는고>, <3cm>, <푸른 개미가 꿈꾸는 곳>이 있으며, 연극 <유령소나타>, <루나사에서 춤을>, <목소리>,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 <애랑연가>, 오페라 <류퉁의 꿈> 등을 연출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루베크 교수: 당신 오는 거지, 이레네?
이레네: 네, 꼭 갈게요. 거기서 날 기다려요.
루베크 교수: (꿈꾸듯이 말을 되뇌며) 고원에서의 여름밤. 당신과 함께. 당신과 함께. (그의 눈이 그녀의 그것과 마주친다.) 오, 이레네…. 어쩌면 그런 게 삶일지도 모르지…. 우린 그걸 잃어버렸어…. 당신과 나.
이레네: 우린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거예요, 그때 비로소…. (말을 확연히 멈춘다.)
루베크 교수: 언제…?
이레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루베크 교수: (슬픔에 잠겨 고개를 저으며) 그때 우린 뭘 보게 될까?
이레네: 우린 결코 살았던 적이 없었다는 걸 보게 되겠죠.
99∼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