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원감국사 충지의 글을 모은 문집이다. 충지의 글은 ≪원감록(圓鑑錄)≫, ≪원감국사어록(圓鑑國師語錄)≫, ≪복암집(宓庵集)≫,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海東曹溪宓庵和尙雜著)≫, ≪원감국사가송(圓鑑國師歌頌)≫ 등에 실려 있는데 이 책은 이 글들을 문체별로 재분류해 편집하면서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이라고 개제(改題)했다.
번역은 ≪원감록(圓鑑錄)≫(아세아문화사 영인본, 1973)과 ≪조계복암화상잡저(曹溪宓庵和尙雜著)≫[≪고려불적집일(高麗佛籍集佚)≫, 동국대출판부, 1985]를 대본으로 삼았고, 원문은 ≪원감록≫, ≪조계복암화상잡저≫, ≪원감국사가송(圓鑑國師歌頌)≫[≪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6책, 동국대출판부, 1984], ≪동문선(東文選)≫ 등과 대교(對校), 수정(修正)해 첨부했다.
≪원감국사집≫은 필자가 1988년 출판한 바 있는데 오류가 많아 재간행이 필요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요청을 받아 작년 여름에 수정을 하고 2011년 3월 간행했다. 그때까지는 2010년 6월 동국대 출판부에서 ≪원감국사집≫이 간행되었다는 정보를 모르고 있었는데, 2쇄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어 이 책을 수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은 2011년 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으로 출간된 ≪원감국사집≫을 대폭 수정 보완한 개정판이다.
충지의 글은 자구마다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고, 속기(俗氣)를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으며, 문장 또한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상태다. 이는 어릴 적에 유문(儒門)에 깊은 소양을 쌓았고, 불문(佛門)에도 깊은 경지에 다다른 결과라고 추측된다. 즉 유·불의 온축(蘊蓄)이 자아낸 보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원감국사집≫은 한 시대를 고민하다가 사라져 간 충지의 얼이 응고된 영롱한 보석일 것이다.
200자평
어려서 출가했으나 효를 다하기 위해 환속했고 모친이 돌아가시자 29세에 다시 출가했다. 세상에서는 소년 장원 급제해 벼슬에 올랐고 출가해서는 국사(國師)에 올랐다. 드높은 문장은 사대부들로부터 존경받았다. 그러나 충지는 울며 탄식한다. “슬프다! 나란 무엇하는 사람인가?” 원의 탄압, 삼별초 항쟁, 일본 정벌 부역으로 고려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몸은 속세를 떠났지만 마음은 백성과 함께했기에 그의 시가 곧 고려사다.
지은이
충지(冲止, 1226∼1293)는 1226년 전라도 장흥(長興)에서 태어났다. 휘(諱)는 법환(法桓)인데 후에 충지로 고쳐 불렀으며, 자호(自號)는 복암(宓庵), 속성명(俗姓名)은 위원개(魏元凱), 탑호(塔號)는 보명(寶明)이고, 원감국사는 그의 시호(諡號)다.
9세에 취학해 경서(經書) 자사(子史)를 암송하고 문장력도 뛰어났다. 일찍이 출가했다가 어머니의 청으로 환속했다.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9세에는 춘위(예부시)에 장원으로 뽑혀 재질의 탁월함이 입증되었다. 영가(永嘉: 지금의 안동)서기(書記)를 거치고, 그 후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국위를 선양했으며, 옥당(玉堂)에서는 문체가 수려해 많은 선비들이 탄복했다. 그는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 29세에 다시 출가했다. 당시 고려는 몽고(蒙古)와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으며 무인 정권의 부패로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그가 다시 승려가 된 것은 고귀한 생명이 무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백성의 고통을 공유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1세에 김해(金海) 감로사(甘露寺) 주지가 되었고, 3년 만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어 이때부터 승려들에게 보통 있게 되는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5세에 정혜사(定慧寺)에 이주했다. 61세에 조계 6세(世)로 임명되었다.
충지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우국의 세월을 보내면서 조계 법맥을 계승하다가 1293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진성규는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 은풍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3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경북 예천의 대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년여 공무원 생활을 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및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문학석·박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및 부산여대(현 신라대)를 거쳐 2012년 현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진각국사 혜심 연구≫, 공저로는 ≪신라의 불교사원≫, ≪인물로 본 한국불교사상사≫, ≪한국사상사 입문≫ 등이 있다. 역서로는 ≪서하집(西河集)≫,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계와문집(溪窩文集)≫, ≪금석문(金石文)≫ 등이 있다.
차례
서언(緖言)
원감국사어록중간서 圓鑑國師語錄重刊序
조계원감국사어록서 曹溪圓鑑國師語錄序
시(詩)
1. 속세를 떠나 한적한 곳에 살다
2. 우연히 씀
3. 병인년 여름 처음 감로사에 들어가서 동포에게 보임
4. 산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에 삼랑루를 지나면서 배 가운데서 짓다
5. 안렴사 박항이 밀성 삼랑루라 제한 시의 운을 따라
6. 한가로운 가운데 스스로 기뻐하면서
7. 지원 9년 임신 3월 초에 정혜사에 들어가 게를 지어 동범에게 보임
8. 자인화상에게 올리는 시
9. 여러 스님들과 같이 고사리를 뜯고 돌아와 동범에게 보임
10.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11. 여름날 규봉 인 선백을 생각하면서
12. 안렴사 박 시랑에게 부침
13. 가을날 일찍 조계산을 출발해 계족산으로 돌아와서 지음
14. 어저께 도자 혜초가 돌아오는 편에
15. 한가한 가운데 시간을 보내면서
16. 감로장로의 운을 따라 삼가 답함
17. 산에 살면서 저물어 가는 봄을 읊음
18. 봄을 아낌
19. 법형 묵 공이 나의 집안이 단정하고 고담하다는 것을 듣고
20. 규봉 인 선백의 운을 빌려 답함
21. 난송선사 인 공의 운을 빌려 답함
22. 안렴 김 시어에게 보내는 시
23.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서 김 제형에게 부침
24. 분간 김 시랑에게 희롱으로 답함 2수
25. 운흥법주 대이를 곡함
26. 스스로 희롱함
27. 평양에 부임하는 아우 수령 문개가
28. 막내 동생 추원당후 선이 앞의 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차운해 보냈으므로 다시 그 운을 따서 답함
29. 전 동각사인 우 공이 앞의 운을 따라 시를 지어 보내 주었으므로 그 운을 사용해 답함
30.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2수
31. 규봉 인 공이 월헌 강 박사에게 준 시의 운을 따라 4수
32. 나는 출가하면서부터
33. 원흥사 임정에서 놀면서
34. 왕암에서 자면서 그 경지의 청유함을 사랑해 졸시를 씀
35. 서원목백인 상서 이 공이… 2수
36. 서원 이 상서에게 보냄
37. 지원 13년 12월 요청을 받고 다시 서원에 도착해 현암난야에 우거하면서, 목백상서 이 공에게 드림
38. 밤에 많은 눈이 내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새벽에 일어나 성안을 바라보면서 짓다
39. 전 서원 반자 이 직강에게 보냄
40. 노 교서의 운을 따라 답함
41. 천안부의 군수 한 낭중에게 보냄
42. 낙화를 애석히 여겨 읊음
43. 정축년 3월 13일 진각사에서 놀면서
44. 현암사의 자리를 파하고 되돌아오려고 한 수 남김
45. 서원 지방의 도속들이 성을 나와 울면서 전송하므로 느낌이 있어 시를 짓다
46. 서원을 떠나 회덕에 이르렀다가 서원성 밖의 이별을 기억하고 시를 지어 목백 영각으로 보냄
47. 회덕 여관에서 비를 만나
48. 3월 24일 천호산 개태사에서 자면서
49. 우연히 진나라 사람 곽문의 전기를 읽다가
50. 한가로운 가운데 우연히 씀
51. 무인년 11월 6일 대중을 거느리고 산을 벗어나 다음 날 장경을 지고 되돌아와 게를 짓다
52. 조계산의 누교를 지나다 원주 신 공이 누각을 수리하는 것을 보고 감탄해 시를 지어 그를 칭찬함
53. 정혜사 판상의 운을 따라
54. 채방사 김 시랑의 운을 따라 답함
55. 벽자운에 답한 시를 삼장장실에 부침
56. 절구
57. 다시 앞의 운을 따라 채방사 김 시랑에게 답함
58. 우중에 혼자 앉아
59. 한가로운 가운데서 우연히 씀 2수
60. 김녕 최 태수 알(謁)이 사임하려고 서울에 갔더니
61. 채방사 김 시랑의 운을 따라 답함
62. 규봉 인 선백을 생각하면서
63. 굉소선인이 산중을 방문해 준 시에 답함
64. 운흥장실에 드림
65. 백운암의 검 선객이 가타 3수를 보내 주었는데… 4수
66. 이별할 때 김 찰방의 운을 따라 답함
67. 상국 농서공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68. 산속 봄날
69. 더위 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임
70. 안렴사 반 공이 산에 이르러
71. 운을 따라 삼장장실에 드림
72. 삼장 공이 지팡이를 옮겨 동쪽으로 간다는 소문을 듣고 거친 말로 삼절을 지어 드림
73. 안렴 반 공이 다시 산속을 방문했으므로 산어를 지어 드림
74. 날씨 갬을 기뻐함
75. 삼가 농서상국 존비가 아름다운 시 두 수와
76. 즉석에서 시를 지음
77. 게송을 지어 여러 승려에게 보임
78. 산어로 회포를 서술해 단양상국 각하에게 드림
79. 영남 지방의 어려운 모습. 24운
80. 도통 홍 상국 막하께 드림
81. 안집 권 시어에게 보냄
82. 9월 9일에 꽃을 대하고 느낌이 있어서
83. 섣달 20일 하루 종일 강풍이 불고
84. 초봄 열 선백에게 드림
85. 일본 정벌을 칭송함
86. 도순문 이자추 행헌의 방문을 맞으면서 드림
87. 보림사 입 공이 서울 가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구를 지어 보냄
88. 병중에 홍 상국이 깃발을 돌려
89. 사자수 공이 석장을 강동 백운암으로 옮긴다는 것을 듣고 감탄해 지음
90. 농민을 불쌍히 여겨 흑양 4월 1일 빗속에서 지음
91. 한 평양 사기가 최 선사를 곡한 운을 따라 답함
92. 재가 끝나고 우연히 희어 한 편을 지어 인 선백에게 보임
93. 우연히 절구 한 수 씀
94. 만연사의 선로에게 두 수의 절구를 줌
95. 김 시랑 훤의 운을 따라 답함
96. 선석암에 우거하면서 대나무를 심어 놓고 감상함
97. 암자 주인이 산을 내려간 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절구를 지어 부침
98. 참선하는 사이에 절구를 지어 동지에게 보여 줌
99. 가을날에 우연히 씀
100. 졸다 일어남
101. 오산 꼭대기에 좌선암과 행도석이 있는데
102. 눈 속 추위에 괴로워하는 시를 지어 평양에게 줌
103. 정회를 쓰다
104. 근래 벼슬을 그만둔 시중 하동영 하가 화전 한 폭을 보내면서 산어를 요구하므로 억지로 4절구를 지어 각하에게 드림
105. 이 사관이 임금을 호종하고 조정에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절구를 지어 부침
106. 이 상국이 가산 섭무실이 만든 좋은 먹 한 개를 보내 준 데 대해 감사함
107. 우러러 법제에 화답해 자인실에 삼가 드림
108. 지병마 상서 김석에게 부침
109. 5월 15일 밤에 동루에 오르니
110. 게송을 지어 선석암 선로에게 보냄
111. 만연선로의 운을 따라 받들어 답함 2수
112. 운을 따라 연곡선사에게 답함
113. 다시 운을 따라 연곡선사에게 답함
114. 능가산에 놀다
115. 운을 따라 김 시랑에게 답함
116. 한소향에게 보낸 절구 3수
117. 아픈 다리를 스스로 희롱함
118. 아침 설법을 마친 후에
119. 다시 규봉 인 공이 월헌 강 박사에게 준 시의 운을 따라서
120. 한가로이 살면서
121. 우연히 씀
122. 나한율림 항 선객에게 부침
123. 운을 따라 한 사군에게 부침
124. 초봄에 한 사군에게 부침
125. 운을 따라 홍 상국 막하에 절하고 드림 6수
126. 김 소경이 양주수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구를 지어 부침
127.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김양주가 새로 사업에 임명되고 부름을 받아 대궐에 다다름을 축하해 부침
128. 김 시랑의 <송선객을 보냄>이라는 시를 보고 운을 따라 지어 부침
129. 고양 가는 길에 제호조 소리를 듣고 짓다
130. 주상 폐하가 천조를 뵙고
131. 새 붓을 시험하기 위해 손 가는 대로 한 게송을 써서 시자에게 주다
132. 가을 산
133. 병중에 심정을 말함
134. 겨울 자리를 시주한 광림 선로에게 감사함
135. 우연히 씀
136. 원옥상인이 산중에 이르러 중국에 간다고 하기에 그 말을 기록해 한 편의 시를 지어 전별함
137. 우서로 여러 선자에게 묻다
138. 어떤 선자가 있어 답함
139. 자신에게 줌
140. 고산대선이 방문했으므로 시를 지어 보임
141. 한거
142. 만연공의 시에 답함
143. 소 사제의 방문을 사례함
144. 영소를 보낸 후 다시 앞의 운을 따라 보냄
145. 야우송을 지어 동지에게 보임
146. 신사 박 공이 세운 방광촌의 원소난야에 제함
147. 한 시랑에게 시를 부침
148. 12월 11일 눈보라 휘날리는데 김승을 보내다
149. 12월 18일 미설 가운데
150. 새로이 월남 인 공에게 부침
151. 평양의 한 태수 단에게 부침
152. 지원 21년 5월 하순 진변원수 김 상국 주정이 변수를 순찰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절구 두 수를 지어 바침
153. 또 김 원수에게 올리는 시
154. 원수 상국이 특별히 속관을 보내 방문하지 못한 까닭을 알리기에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시를 지어 드림
155. 우연히 씀
156. 달밤에 동쪽 망루에 오름
157. 사람들에게 보임
158. 달을 읊음
159. 금장대선사가 새 차를 보내 줌을 감사함
160. 소 사제의 운을 따라 답함
161. 흠산이 “노승은 평생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매일매일 그 모양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사랑해 게송을 지어 기록한다
162. 사람들에게 보임
163. 팔이 짧음을 노래하다
164. 졸어로 회포를 펴 표형 선로에게 보임
165. 수재 홍 상공에게 보내는 시
166. 이 공 행검에게 답함
167. 남원의 조 태수가 방문하면서 시를 주기에 그 운을 따라 사례함…
168. 청암에서 계봉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지음
169. 심정을 읊음
170. 운을 따라 염 상국에게 답함 2수
171. 한 시랑이 내가 조계의 자리를 계승했다는 것을 듣고 시를 지어 하례하므로 운을 따라 답함
172. 죽당 이 중사에게 답함 2수
173. 서울 가는 장륙선사 진 공을 전송하면서
174. 만연 신장로 묵 공을 전송하면서
175. 운흥 신장로 열 공을 전송하면서
176. 계봉장로 우 공에게 답함
177. 산에 살다 2수
178. 장난삼아 씀
179. 조백론을 설명하던 차에 게송을 지어 동범 제덕(諸德)에게 보임
180. 조백론의 강을 마치던 날 계봉에서 장구 4운을 주므로 차운해 답함
181. 계봉의 우 공이 절을 떠나 진원의 취봉난야에 옮겨 살면서 시를 보내 주기에 운을 따라 그에게 답함
182. 더위의 고통스러움을 읊음 3수
183. 한가한 가운데 이것저것 읊다 6수
184. 도안장로에게 부침
185. 평양의 신태수 이 공에게 보냄
186. 옛날을 생각해 절구 두 수를 지어 계봉장로에게 보냄
187. 조계산의 방장 동쪽 담 아래 동백나무 한 그루
188. 선국사가 원소암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으면서 지은 시에 받들어 답함
189. 산에 살다
190. 가을날 진락대에 오름
191. 원소암 벽 위의 옛 시제를 보고 기록함
192. 자서
193. 어버이를 뵈러 서울 가는 연숙선자를 보내면서
194. 원각소를 강설하던 차에 짓다
195.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서 짓다
196. 신묘년 초여름에 난을 피해 불대사에 이르러
197. 밤에 앉아서 2수
198. 사군 윤해가 산중을 방문해 머물도록 했으나 하루도 자지 않고 갔으므로 보낸 뒤 시를 지어 부침
199. 돌아오기를 재촉하는 시를 지어 진행·진경 두 소사에게 보냄
200. 소사 심선이 취봉에서 되돌아오면서
201. 취봉선로가 방문해 절구 세 수를 주므로 운을 따라 답함
202. 한가한 가운데 회포를 읊음
203. 네 명의 성인을 찬양하다
204. 가을비 오는 원소탑원에서
205. 감로장로에게 답함
206. 시자가 게송을 청하므로 써서 주다
207. 빗속에 졸다가 일어남
208. 우연히 읊음
209. 저무는 봄에 즉사
210. 봄을 아쉬워하며 읊음
211. 한가한 가운데 우연히 씀
212. 큰 소나무
213. 일찍이 옛 시를 본떠서 지은 것이 있으므로 추가해 기록함
214. 사람을 경계함 2수
215. 내가 평소에 풍악산의 뛰어난 경치를 듣고
216. 상국 농서공이 중국의 중사와 같이
217. 사자수의 공이 조계에서 회강암으로
218. 우연히 2수를 씀
219. 둔재 김훤에게 희롱으로 답함. 2수
220. 삼가 보내 준 운을 따라 수재 홍 상공 좌우에 드림
221. 운을 따라 소경 한사기가 연도에 있으면서 보내 준 시에 답함
222. 평양에 새로 부임한 수가 시랑으로 있으면서부터 정치의 교화를 폈다는 것을 알고 지어 보냄
223.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해 한 국박에게 보냄
224. 별동에 놀면서
225. 계봉의 고통
226. 병중에 혼자 앉아 회포를 서술함
227. 우연히 설당의 운을 써서 인·묵 두 선인에게 보이다
228. 앞의 운을 써서 희우에 답함
229. 앞의 운을 써서 인 선백에게 답함
230. 앞의 운을 써서 암자의 즐거움을 씀
231. 앞의 운을 써서 인 선백에게 답함
232. 삼현을 애도하는 시
233. 새로 부임한 승선 이 공을 축하해 부침 3수
234. 산속의 즐거움
235. 다보사에서 읊음
236. 흥룡사에서 읊음
237. 최이가 보낸 다향에 감사하며
238. 집의 아우 문개가 벼슬에 나아감을 축하함
239. 금강진에서 읊음
240. 서울에 이르다
제문(祭文)
1. 충경왕사 제문 冲鏡王師祭文
2. 혜소국사 제문 慧炤國師祭文
3. 박량 최 선사 제문 泊良崔禪師祭文
4. 이오 상서 제문 李敖尙書祭文
소(疏)
1. 단본대장경찬소 丹本大藏經讚疏
2. 감로입원축법수소 甘露入院祝法壽疏
3. 정혜입원축법수소 定慧入院祝法壽疏
4. 법수재소 法壽齋疏
5. 대원황제축수재소 大元皇帝祝壽齋疏
6. 우 又
7. 우 又
8. 우 又
9. 축수소 祝壽疏
10. 우 又
11. 우 又
12. 우 又
13. 축성소 祝聖疏
14. 우 又
15. 우 又
16. 우 又
17. 우 又
18. 우 又
19. 우 又
20. 우 又
21. 우 又
22. 우 又
23. 우 又
24. 우 又
25. 우 又
26. 우 又
27. 우 又
28. 대가환국축수소 大駕還國祝壽疏
29. 미타재소 彌陀齋疏
30. 도원수김시중축수소 都元帥金侍中祝壽疏
31. 천충경왕사소 薦冲鏡王師疏
32. 충경왕사소상재소 冲鏡王師小祥齋疏
33. 천최사주소 薦崔社主疏
34. 천박량최선사소 薦泊良崔禪師疏
35. 천망우이오상서소 薦亡友李敖尙書疏
36. 사사어제서족축성소 謝賜御製書簇祝聖疏
37. 축영수소 祝令壽疏
38. 은문이상허축수소 恩門二相許祝壽疏
39. 청상당소 請上堂疏
40. 축성동안거기시소 祝聖冬安居起始疏
41. 우 又
42. 대원황제절일재소 大元皇帝節日齋疏
43. 정혜입원축성하안거기시소 定慧入院祝聖夏安居起始疏
44. 하신등보위축성소 賀新登寶位祝聖疏
45. 우 又
46. 축대가소재인왕천수지론사종법석소 祝大駕消災仁王千手智論四種法席疏
표(表)
1. 상대원황제표 上大元皇帝表
2. 상대원황제사사복토전표 上大元皇帝謝賜復土田表
3. 우 又
4. 하신등보위표 賀新登寶位表
5. 하대가환조표 賀大駕還朝表
서(書)
1. 재청주현암사기충청도지휘사곽상서서 在靑州玄巖寺寄忠淸道指揮使郭尙書書
2. 기진정통오대선서 寄眞靜通奧大禪書
3. 기대조요동로안찰부사홍공혁서 寄大朝遼東路按察副使洪公革書
4. 답선월서 答禪月書
5. 답김소감윤부서 答金少監允富書
6. 답정판추가신서 答鄭判樞可臣書
원문(願文)
1. 감로사 기사년 동안거 원문 甘露社己巳年冬安居願文
2. 규봉암 갑술년 동안거 원문 圭峯庵甲戌年冬安居願文
3. 조사 예참 겸 발원문 祖師禮懺兼發願文
발(跋)
1. 발문 跋文
2. 발 跋
3. 원감록인사발문 圓鑑錄印寫跋文
부록(附錄)
1. 원감국사비명 원본 圓鑑國師碑銘原本
2. 조계산제6세증시원감국사비명 曹溪山第六世贈諡圓鑑國師碑銘
원문(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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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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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계봉의 괴로움 지금 비유할 수 없어
한두 가지 먼저 말하려니 코가 찡하네
지은 지 오래된 집은 쇠락했고
처마 끝 기와와 담벼락은 모두 무너졌네
매양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면
체처럼 비가 새어 의지할 곳 없네
사철 불을 지필 땐 두어 가지 나무
의상은 남루하고 안색은 초췌하네
재 올릴 땐 나물과 연뿌리, 새벽엔 묽은 죽
험한 산에 올라 하루에도 서너 번 나무를 나르네
● 새끼에게 먹이 먹이다가 나는 법 가르치니
늙은 어미의 깊은 애정 다시 논하지 마라
은근히 계족봉 아래로 정을 보내오니
뼈가 가루 된들 어찌 이 은혜 갚으랴
누각이 첩첩 옛 범궁(梵宮)이여
산수의 형승(形勝) 천하제일일세
내가 자리 이어받음 진실로 분수 아니거니
당년의 국로풍을 욕되게 할까 두렵네
● 농사는 모름지기 때가 있는데
때를 놓치면 어쩔 수 없네
농사 때란 얼마 안 되니
봄, 여름 바뀔 때가 가장 좋네
봄이 다하고 여름 되니
농사일은 늦출 수 없네
하늘이 시절을 알아서
은택을 사방으로 자주 베풀지만
일본 정벌이 시급한데
농사일은 누가 다시 생각하랴
사신은 끊이지 않고
동으로 서로 달리네
백성들이 전역에 가니 고을은 비었고
오랫동안 달려 강가로 향하네
밤낮으로 벌목해
전함 만들다 힘은 다했고.
척지(尺地)도 개간하지 못했으니
백성은 무엇으로 연명하랴
가구마다 묵은 양식 없고
태반은 벌써 굶어서 우노라
하물며 다시 농업을 잃었으니
당연히 다 죽음만 보겠네
슬프다! 나란 무엇하는 사람인가?
눈물만 공연히 흘러내리네
슬프다! 동토(東土)의 백성이여
하늘마저 슬퍼하지 않네
어찌 장풍(長風)이 불어와서
나의 읍혈시(泣血詩)를 실어 가려나
한번 부니 천상에 이르러
임금 계신 뜰에 이르나니
시에 못다 한 말들
상제로 하여금 다 알게 하리
● 영남 지방의 간고한 모습
말하려 하니 눈물이 먼저 흐르네
두 도(道)에서 군량을 준비하고
세 곳의 산에서 전선(戰船)을 만들었네
부세와 요역은 백배나 되고
역역(力役)은 3년에 뻗쳤네
징구(徵求)는 성화(星火)같이 급했고
호령(號令)은 우뢰처럼 전하네
사신도 항상 계속되었고
서울의 장수는 잇달았네
팔은 있어도 모두 묶여 있고
채찍 맞지 않은 등이 없었네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보통 익숙했고
밤낮으로 수송이 이어졌네
우마(牛馬)도 등이 온전할 때 없고
인민도 쉬지 못했네
새벽엔 칡 캐러 가고
달빛 맞으며 띠풀 베어 돌아오네
수수(水手)는 밭고랑으로 몰리고
초공(梢工)은 해변으로 가네
하인 뽑아 갑옷 입히고
장사 뽑아 창 메게 하네
단지 시간이 촉박하니
어찌 촌각이라도 지연이 용납되랴
처자식은 땅에 주저앉아 울고
부모는 하늘 보고 울부짖네
유명(幽明)이야 다르지만
성명(性命) 온전함을 어찌 기약하랴
남은 사람은 노인과 어린이뿐
억지로 살려니 얼마나 고달프랴
고을마다 반은 도망간 집이요
마을마다 모두 전지가 황폐했네
어느 집인들 수색하지 않으며
어느 곳인들 시끄럽지 않으랴?
관세도 면하기 어려운데
군역을 어찌 덜겠는가?
백성의 질곡은 날로 심하고
피곤과 병은 어찌 회복되랴
접하는 일마다 모두 슬픔을 견디려니
삶이란 진정 가련하구나
비록 형세 보존키 어려움을 알지만
하소연할 곳 없음을 어찌하랴
제(帝)의 덕은 푸른 하늘처럼 덮었고
황제의 밝음은 백일 같구나
어리석은 백성은 진실로 기다리니
성택은 반드시 베풀어지리라
삼한 안에서 볼 수 있으리
집집마다 베개 높이 베고 잠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