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라르 드 네르발은 1841년 정신병 발작을 겪고 요양원에서 퇴원한 후, 1842년 12월부터 만 1년 동안 동방 여행을 한다. 거기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1844년 2월부터 친구 아르센느 우세가 경영을 맡은 ≪라르티스트≫ 지에 규칙적으로 발표한다. 이 여행기는 1851년 5월 말, ≪동방 여행기≫라는 표제로 전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된다. 광증의 발작 상태에서도 동방을 꿈꾼 그의 정신적 여정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칼리프 하켐 이야기/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는 ≪동방 여행기≫의 방대한 이야기 속의 삽화 두 편이다.
<칼리프 하켐 이야기>는 네르발이 드루즈의 족장에게 칼리프 하켐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듣고 이를 독자에게 전해 준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원 1천 년경 여동생을 왕비로 맞으려는 동방의 칼리프 하켐과 그의 분신 이야기다. 친구였던 분신이 연적이 되었다가 다시 그를 구해 주는 이야기 속에 타락한 섭정, 팜파탈의 계략 등이 얽혀 이야기가 풍부하고 신비롭다.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는 신전의 건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발키스, 명인(名人) 아도니람 사이의 애증 관계를 그린다. 작품의 무대는 기독교 ≪성서≫의 전통적인 이야기와 같지만 신비주의와 프리메이슨 사상에 입각해 있어 성서와 시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발견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살해당한 명인 아도니람은 프리메이슨의 선조로 인정되는 인물이고, 작품에는 더욱이 19세기 낭만주의자들과 보들레르를 비롯하여 상징주의 시인들이 선호한 ‘카인 숭배’ 사상이 완연하다.
200자평
제라르 드 네르발의 ≪동방 여행기≫ 속 삽화 두 편이다. 광증의 발작 상태에서도 동방을 꿈꾼 그의 정신적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원 1천 년경 여동생을 왕비로 맞으려는 동방의 칼리프 하켐과 친구에서 연적이 되었다가 하켐을 구해 주는 그의 분신을 다룬 이야기, 신전 건축을 중심으로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발키스, 명인(名人) 아도니람 사이의 애증 관계를 그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은이
제라르 드 네르발은 180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라르 라브뤼니다. 1820년 샤를마뉴 고등학교에 입학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국민의 엘레지(Élégie nationale)>, 풍자 희극 <아카데미 또는 만날 수 없는 회원(L’Académie ou les membres introuvables)>을 발표한다. 1827년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한다. 작품을 집필하고 유럽 여행을 다니며 지내다 1841년 파리에서 광기 발작을 일으켰다. 1851년 이후 간헐적으로 정신병이 재발했으며, 1855년 파리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대표작으로 ≪실비≫, ≪산책과 추억≫, ≪불의 딸들≫, ≪오렐리아≫ 등이 있다.
옮긴이
이준섭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파리 소르본(파리4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와 제라르 드 네르발 연구로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1980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임한 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2002년에는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프랑스 문학사(I)≫(1993), ≪제라르 드 네르발의 삶과 죽음의 강박관념≫(1994), ≪프랑스 문학사(II)≫(2002), ≪고대 신화와 프랑스 문학≫(2004) ≪프랑스 문학과 신비주의 세계≫(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불의 딸들≫(2007), ≪실비 / 산책과 추억≫(2008), ≪오렐리아≫(2013)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18세기 프랑스 신비주의와 G. de Nerval>, <테오필 고티에와 환상문학> 외 다수가 있다.
차례
칼리프 하켐 이야기
해시시
흉작
왕국의 귀부인
모리스탄
카이로의 화재
두 명의 칼리프
출발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
라마단의 밤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를 끝내면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 불공정의 극치여! 아담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브는 이 세상에 나를 낳은 죄로 낙원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해관계로 마음의 문이 닫힌 그녀의 심정은 온통 아벨에게 쏠려 있었다. 귀염만 받아서 오만해진 아벨은 나를 그들 각자의 하인으로 취급했다. 아도나이가 그의 편이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또한 게으르고 어리광 부리는 그가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는 이 땅을 내 땀으로 적시고 있는 동안, 그는 가축 떼를 방목하면서 단풍나무 아래서 졸고 있었다. 나는 불평을 했지만, 우리의 양친은 신의 공정성만 상기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나의 것, 내가 길러 낸 밀단, 여름의 맏물인 나의 제물은 경멸로써 거부되었다….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 204~205쪽
바람도 그의 얼굴을 방해하지 않았고, 벌레를 낳는 유충도 그에게 근접할 수 없었다. 새들과 네발 달린 설치류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고, 물도 그 증기를 되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주술의 힘으로 육신은 200년 이상 망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솔로몬의 수염은 자라서 그의 발에까지 펼쳐졌고, 손톱과 발톱은 장갑의 가죽을 뚫고 신발의 도금된 천에 구멍을 냈다.
그러나 한정적인 인간의 지혜가 어찌 ‘무한(無限)’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솔로몬은 하나의 벌레를,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미세한 벌레를 막는 것을 등한히 하고 말았다…. 진드기를 잊었던 것이다.
진드기는 신비롭게… 보이지 않게… 다가왔다. 그것은 왕좌를 지탱하는 기둥 하나에 붙었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멈추지 않고 기둥을 갉아 먹었다. 극도로 민감한 청각도 이 미미한 존재가 긁고 있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해마다 미세한 부스러기 몇 톨을 그의 뒤로 털어 냈다.
진드기는 224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긁힌 기둥이 왕좌의 무게에 휘어져서 굉장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시바의 여왕과 정령들의 왕자 솔로몬 이야기>, 309~3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