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평북 출신의 작가 허준의 중단편 소설 다섯 작품을 실었다. 1936년에 등단해 1948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강렬한 인상의 작품들을 남기고 월북했다.
허준은 1936년 <탁류>로 등단한 이래 1948년 <역사>에 이르기까지 결코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성을 보여 줬다.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개인의 재능 차원을 넘어 어떤 시대정신 차원에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력을 보면 혼돈기의 지식인이 대개 그러하듯 그 역시 좌익 단체인 ‘경성조소문화협회’라든가 조선문학가동맹 주최의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시지부 부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좌파 문인들과는 달리 그는 어떤 선명성을 내세운 것도 또 그것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과 반성을 행한 것도 아니다.
선명한 깃발을 내세우면서 혼돈의 중심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회의의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그의 소설은 자의식적인 자기 고민과 성찰이라는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식민지와 해방기 지식인이 보여 주는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그가 보여 주는 자기 고민과 성찰이 시대의 우울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그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탁류>나 <습작실에서>, <야한기> 같은 해방 이전 작품들에서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혹은 지식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의 우울에 대한 자의식보다는 ‘인간의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운명의 힘과 허무를 묘파하고 있는 것’(신수정)이 사실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나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에 앞서 이렇게 운명의 힘과 허무를 천착하는 것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채 실존의 현장으로 내던져진 인간으로서의 개인에 대한 인식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방기 소설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꼭 이러한 운명의 힘과 가치 상실로 이어지는 허무만은 아니다. 그의 허무는 ‘강렬한 윤리적 의의’(김동리)를 동반한다. 이것은 그의 허무가 단순히 개인적인 욕구나 욕망의 차원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서재길은 “<탁류>의 숙이, <야한기>의 은실 모친, <습작실에서>의 노인과 같은 인물군이 그러한 윤리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폐쇄적인 존재론에 갇혀 있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타자성에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해방 이전 소설에서 윤리적 의의를 발견한 것은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200자평
평안북도 출신으로 1936년에 데뷔한 작가 허준의 작품 다섯 편을 수록했다. 작품 활동 기간은 12년 정도로 확인되지만 문단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표작 <탁류>, <야한기>는 지식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허무를 다뤘다.
지은이
허준(許俊, 1910∼?)은 1910년 2월 27일 평안북도 용천군 외상면 정차동 100번지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허민과 어머니 정순민 사이에서 5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의학을 전공한 허신이 그의 형이다.
1922년 여름 서울로 이사해 중구에 있는 다동(茶洞)공립보통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1923~1928년 중앙고보(中央高普)를 다녔고 이어 도쿄로 유학을 떠나 호세이대학 문과에 입학한다. 졸업은 1936년 4월에 한다.
1934년 귀국해 ≪조선일보≫ 10월 7일자에 <초>, <가을>, <실솔>, <시(詩)>, <단장(短杖)>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이후 ≪시원≫(1935), ≪조선일보≫(1935), ≪조광≫(1935∼1936), ≪개벽≫(1946)에 시를 발표한다.
1936년 2월 ≪조광≫에 <탁류(濁流)>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한다. ‘탁류’라는 제목은 백석이 붙여 주었으며, 그를 추천한 이는 문학평론가인 백철이다.
1938년 김동리와 유진오가 벌인 이른바 ‘세대-순수’ 논쟁의 일환으로 ≪조선일보≫가 기획특집으로 마련한 ‘신인 단편 릴레이’에 <야한기(夜寒記)>를 연재하게 된다. 신인 단편 릴레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연재는 1938년 9월 3일에 시작해서 11월 11일에 끝난다. 이로써 그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1941년 2월 ≪문장≫에 <습작실(習作室)에서>를 발표한 뒤 만주로 간다. 1942년 7월 ≪국민문학≫ 주최의 좌담회인 ‘군인과 작가, 징병의 감격을 말하다(軍人と作家, 徵兵の感激を語ゐ)’에 참여한다.
1945년 12월 27일 홍명희, 임화, 박태원, 김기림 등과 함께 ‘경성조소문화협회(京城朝蘇文化協會)’ 창립식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 참가한 뒤 월북한다. 10월에 ≪문장≫ 속간호에 <역사(歷史)>를 연재하다 중단한다. 이 소설이 현재까지 확인된 허준의 마지막 작품이다.
엮은이
이재복(李在福)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상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문화계간지 ≪쿨투라≫, 인문·사회 저널 ≪본질과 현상≫, 문학계간지 ≪열린 시학≫, ≪시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에 제5회 젊은 평론가상과 제9회 고석규 비평문학상, 2009년에 제7회 애지 문학상(비평)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몸과 몸짓문화의 리얼리티≫(공저), ≪몸의 위기≫(공저), ≪한국현대예술사대계≫(공저) 등이 있다.
차례
잔등(殘燈)
야한기(夜寒記)
탁류(濁流)
습작실(習作室)에서
한식일기(寒食日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회령에서는 정거장이 전체적으로 폭격을 받아서 어느 모양으로 어떤 건축이 서 있었던 것인가를 조금도 분간하여 알지 못하리만큼 완전히 부서져 있었지마는, 청진은 하 커서 그랬던지 어떠한 규모로 어떻게 서 있었던 정거장인가의 상상을 허락할 만한 형적은 남아 있었다.
시가지에서 정거장에 이르는 광장 전면에 와 서서 보면 걷어치우다 남은 무대의 오오도구(大道具)처럼 한 면(面)만 남은 정거장 본건물의 정면만이라도 남아 있었다.
건물의 입체적 내용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평면 속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이 간판적인 의미밖에 없는 형해(形骸)만도 미미하나마 사람 마음에 일종의 질서감을 깨뜨려 주기에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없지 아니한 듯도 하였다.
정거장 정면 좌우에는 회령 이래 낯익히 보아 온 새끼줄 대신에 콘크리트 말뚝을 연결하여 나아간 철조망까지 있었다. 더러는 썩어서 끊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끊기인 것 같기도 한 그 중간 중간 철선 사이로 무시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데에는 여기도 다름이 없었으나, 그 저편 폼 구내에 예전 같으면 도록고 창고로밖에 안 쓰였을 납작한 판장으로 만든 집 안팎으로 소련병과 역원들과 또 드물게는 피난민들의 몇 사람조차 섞이어서 무엇인가 지껄이며 어깨를 치며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도 한갓 여유감을 주는 풍경이 아닐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