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문화는 유교·불교·도교를 토대로 발전, 유지되어 왔다. 신라에는 3교를 포함한 풍류도(風流道), 즉 선교(仙敎)라는 것이 있어 사람들을 교화시켰다. 예컨대,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함은 유교의 가르침이고, 자연 그대로 행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함은 도교의 주장이며, 모든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만 받들어 행함은 불교의 교화였다. 이러한 선교를 따르는 무리들을 화랑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화랑세기≫에 전한다.
≪화랑세기≫ 서문에는 화랑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 배경이 나와 있다. 지소 태후가 원화(源花)를 폐지하고 화랑을 설치해 국민들로 하여금 받들게 했으며, 그 무리를 풍월이라 했고, 우두머리를 풍월주라 했다고 적혀 있다. 본문에서는 1세 위화랑(魏花郞)부터 32세 신공(信功)까지 32명의 풍월주를 대상으로 출생 배경과 성격, 외모, 혼인과 남녀 관계, 활동, 임명과 퇴임, 화랑도의 조직, 계파 등을 적고, 용모와 행적 등 뛰어난 부분을 찬양하는 내용의 찬을 달았으며, 특히 가족 관계와 계보를 중시해 마지막에는 생애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여기에는 풍월주의 계보뿐만 아니라 화랑의 조직과 활동, 계파에 대한 이야기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랑세기≫의 내용들은 기존의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고대사 연구자들은 빈약한 자료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반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창작된 소설일 뿐 역사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선교만큼이나 고대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불교였다. 불교에서는 불보·법보·승보 등 3보를 가장 중요시하며, 이들 가운데 승보, 즉 부처와 경전을 모두 배우고 따르는 승려들을 살펴봄으로써 고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승려들의 전기로는 김대문이 지은 ≪고승전≫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고려 시대에 승려 각훈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해동고승전≫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필사본 ≪해동고승전≫마저도 완전한 것이 아니고, 유통편 1-1(권1)과 1-2(권2)만이 남아 있다.
≪해동고승전≫ 권1은 삼국의 불교 전래와 그 수용에 대한 기록이고, 권2는 중국과 인도로 구법의 길을 떠났던 승려들의 기록이다. 또한 고대 불교사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이설을 내포하고 있으며, 고구려에 왔던 순도와 아도의 국적, 불멸의 연대, 신라 불교 전래설 등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문제가 되는 귀중한 기록들이 적지 않다. 이 책 또한 진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전하는 최고의 고승전이라는 점과, 이 책에서 참고하고 인용한 문헌들 가운데 현재 전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200자평
화랑의 삶을 그리는 ≪화랑세기≫와 가장 오래된 승려들의 열전인 ≪해동고승전≫을 통해 고대인들의 유교·불교·도교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환경과 정서에 알맞게 변화한 유불도 3교의 가르침이 한국 문화의 저변에 흐르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책은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지은이
김대문
704년(성덕왕 3년) 한산주 총관(지금의 경기도 지사)을 지냈으며, ≪화랑세기≫ 외에 ≪계림잡전≫, ≪고승전≫, ≪한산기≫, ≪악본≫ 등의 저술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모두 전하고 있지 않다. 그는 진골 출신으로서 진골 귀족의 입장에서 신라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계림잡전≫에서 신라의 불교 수용에 관한 내용, 이차돈의 순교 사실과 신라 초기 왕호, 즉 차차웅, 마립간에 대해서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최치원이 ≪제왕연대력≫에서 모두 왕이라고 칭했던 것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유학을 내세우기보다는 전통적 사상인 선교와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학자였다.
본 책에 수록된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역대 풍월주를 배출한 화랑의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28세 풍월주 오기공이고, 조부는 20세 풍월주 예원공, 증조부는 12세 풍월주 보리공, 고조부는 4세 풍월주 이화랑, 6대조는 1세 풍월주 위화랑이었다. ≪해동고승전≫에도 수록된 원광 법사는 그의 증조부 보리공의 친형이었다.
각훈
고려 중기의 화엄종 승려로서 영통사·흥왕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규보는 그를 화엄종의 동량이라고 평할 정도로 화엄학의 고승이었다. 화엄월사·각월선사라고도 하며, 호는 고양취곤이라 했는데 술을 즐겼던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1215년(고종 2년) 오관산 영통사의 주지를 지내면서 왕명으로 ≪해동고승전≫을 지었다. 그는 당시의 대문장가이자 대학자였던 이인로·임춘·최자·이규보와 서로 친했던 문장가이기도 했다. ≪해동고승전≫ 외에 글과 시를 모은 초집(草集)·시평(詩評)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모두 전하지 않는다.
옮긴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신라 중대의 입당구법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민대, 방송대 등에서 한국사, 불교문화, 역사문화권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 불교와 역사 문화에 대한 글을 썼고, 쉽고 재미있는 내용을 다루면서 역사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신라 중대의 입당구법승 연구> <신행의 생애와 사상> <입당구법승 지장의 행적과 사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신라왕조사≫(2002), ≪Q&A 한국사≫ <고대Ⅱ>(2008)가 있으며, 한국 문화권에 관심을 갖고, ≪안동문화권≫(2003), ≪경주문화권≫(2004), ≪금강문화권≫(2005), ≪태백문화권≫(2005), ≪영산강문화권≫(2006) 등을 공동 집필했다. 이 밖에 ≪한국불교학연구총서≫(2003), ≪한국고대의 역사와 문화≫(2006)를 공동 집필·편찬하기도 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화랑세기
화랑세기 서문
제1세 위화랑(魏花郞)
제2세 미진부공(未珍夫公)
제3세 모랑(毛郞)
제4세 이화랑(二花郞)
제5세 사다함(斯多含)
제6세 세종공(世宗公)
제7세 설화랑(薛花郞)
제8세 문노(文弩)
제9세 비보랑(秘寶郞)
제10세 미생(美生)
제11세 하종(夏宗)
제12세 보리공(菩利公)
제13세 용춘(竜春)
제14세 호림(虎林)
제15세 유신공(庾信公)
제16세 보종공(寶宗公)
제17세 염장공(廉長公)
제18세 춘추공(春秋公)
제19세 흠순공(欽純公)
제20세 예원공(禮元公)
제21세 선품공(善品公)
제22세 양도공(良圖公)
제23세 군관공(軍官公)
제24세 천광공(天光公)
제25세 춘장공(春長公)
제26세 진공(眞功)
제27세 흠돌공(欽突公)
제28세 오기공(吳起公)
제29세 원선공(元宣公)
제30세 천관(天官)
제31세 흠언(欽言)
제32세 신공(信功)
화랑세기 발문
해동고승전 권 제1
유통 1-1
순도(順道)
망명(亡名)
의연(義淵)
담시(曇始)
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阿道)
법공(法空)
법운(法雲)
해동고승전 권 제2
유통 1-2
각덕(覺德)
지명(智明)
원광(圓光)
안함(安含)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혜업(慧業)
혜륜(慧輪)
현각(玄恪)
현유(玄遊)
현대범(玄大梵)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옛날에 선도들은 단지 신을 받드는 일을 주로 했는데, 국공들이 차례로 이를 행한 후 선도들은 도의로써 서로 권하고 격려하여,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났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이로 말미암아 나왔으니, 화랑의 역사는 가히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24쪽
무릇 불타의 가르침이란 것은 이러하다. [부처님은] 본성과 현상을 늘 함께 갖추고 있으며, 중생 제도의 자비로운 서원은 넓고 깊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통하고, 사방·사우·상하의 시방세계에 고루 미친다. (…) 도는 스스로 널리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널리 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통 편을 지어 뒷사람들에게 보인다.
-113~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