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친구
도서관의 고민은 무엇일까?
어떤 책을 어떻게 갖춰 놓아야 더 많은 이용자가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지역에 따라, 테마에 따라, 규모에 따라 고민은 제각각입니다. 컴북스닷컴의 도서관 담당자들은 도서관의 착한 친구, 사서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왔습니다. 이제부터 담당자들(이정섭, 010-3355-6963/02-3700-1278, jslee@eeel.net)이 경험한 도서관의 문제와 대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하여
노인 특성화도서관인 S소재 J도서관.
담당 K 선생은 노인들을 위해 큰글씨책을 수서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목록을 뒤져 봤지만, 원하는 큰글씨책을 갖추고 있는 출판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도서관 문 열자마자 출근하다시피 하는 P 할아버지가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 왔다. 그 인자한 얼굴에 더욱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컴북스의 도서관 영업자인 나, 이정섭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 손엔 큰글씨책 목록이 무려 2600종이나 들려 있었다. 나는 이 도서관이 노인특성화 도서관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분명 이 목록이 한 줄기 빛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서들 중 가장 노인분들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은 얼굴, K 선생을 발견하고는 뚜벅뚜벅 걸어가 목록을 내밀었다. 그때 기뻐하던 K 선생의 얼굴, 잊을 수가 없다. K 선생은 ‘그동안 내가 그렇게 널 찾아 헤맸는데 어디 있다 이제 왔니?’ 하는 딱 그 표정. 당장 80종을 선정했다. 그 이후로도 K 선생은 지속적으로 큰글씨책을 찾았다. 2600종이나 되는 목록이라면 사고 싶은 책이 수없이 많을 터. 도서관에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돋보기 없이도 책을 읽는 모습을 떠올리며 K 선생은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K 선생은 4개월 후 개관 도서관인 S 소재 B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컴북스가 국내 최대 큰글씨책 보유 출판사란 걸 잘 알고 있는 그. 개관 목록으로 지구촌 고전 브랜드인 지만지의 큰글씨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노인분들을 위해 큰글씨책 도서목록을 뒤적거리고 있다. 노인분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K 선생은 분명 복을 받을 것이다.
고민이 있는 사서들을 촉을 세워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 이정섭 스타일!
큰글씨책 있지요?
아니, 이분. 내가 3개월 전 방문해서 큰글씨책을 소개해 드린 그분 아니신가. 근데 분명 처음 만났을 때 큰글씨책 매력도 모르겠고 예산도 없다고 했는데 그새 매력을 발견하셨나? 사실 큰글씨책 매력이야 꼽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처음에는 다들 그걸 모르시지.
“얼마 전 소외 계층을 위한 장서를 마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소외 계층에는 노인분들도 포함되거든요.”
“아, 네. 요즘 노인 인구가 많이 늘었죠.”
“그러니까요. 큰글씨책이 필요한데 이거 만든 출판사가 거의 없네요. 정보도 없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최제환 씨가 떠오르더라구요.”
그러면서 다른 도서관에서는 어떤 큰글씨책을 구매하고 서가는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물어 왔다. 컴북스는 국내 최대 큰글씨책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답게 도서관 영업 노하우도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자세하게, 친절하게 답해 드렸다. 우선 다른 도서관은 큰글씨책 서가를 어르신들이 찾기 쉽게 일반자료실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마련한다고 알려 드렸다. 그런 다음 한껏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도서관들이 어떤 책을 구매하는지를 잘 알 수 있도록 구매 베스트 목록을 보내 드리겠다고 했다. 살짝 공개하자면, 사서 선생들이 선호하는 목록은 문학이나 대중성 있는 책들이다.
“시중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들도 살 수 있어요?”
아, 아쉽게도 우린 우리 출판사 책만 판다. N 선생은 컴북스 책만 집중해서 살 수는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물론,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큰글씨책을 출간하는 타 출판사 목록을 알려 드리고 꼼꼼하게 비교해서 구매해 달라고 했다.
몇 주 후 내가 소개한 우리 출판사 목록에서 적지 않은 책이 선정되었다. 정말 감사! 그런데 사실 속마음을 말하자면, 우리 책을 구매해 준 것보다 쪼끔 더 고마운 건 나를 잊지 않고 떠올려 준 것이다. 하핫!
청소년파 S 선생과의 인연
도서관 영업을 하다 보면 인연이란 참 끈끈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수많은 사서 선생들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은 사서 선생이 다른 곳으로 옮겨서도 지속된다. 어느 날 방문한 도서관에서 문득 아는 얼굴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S 선생은 2013년 Y 소재 W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영업자와 사서의 쿨한 만남이지만, 그걸 넘어서 뭔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지던 분이었다. 그때 나는 지만지에서 출간된 초판본 한국 소설 100종을 소개했다. S 선생은 중요한 작가들이고, 초판본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 있지만 이용자들이 읽기에는 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의 수서 원칙 중 하나는 이용자 중심의 장서 구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동서와 일반서 가운데에 있는 청소년 도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딱히 청소년 도서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이렇게 인연의 돌탑 하나만을 쌓고는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1년 후 Y 소재 H도서관에서 전근한 S 선생을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이곳에서는 어떤 인연의 탑이 쌓아 올려질 것인가?
이전에 청소년 도서의 필요성을 말하던 S 선생은 여전히 청소년파! 잘됐다. 나는 마침 비장의 무기도 장착하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지만지에서 출간한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고전 247종. 이 책들은 국내외 유수 대학들의 추천 도서다. 가히 최강의 목록이다. H도서관에 청소년 이용자들이 많다고 하는 순간, 그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S 선생 역시 인연의 끈을 느꼈던 걸까? 아무 말 없이 복본을 확인한 후 꽤 많은 책을 선정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청소년용 도서가 부족했는데 서가를 채울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S 선생과 나 이정섭, 어떤 인연으로 묶여 있을까? 그와 나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동네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다른 도서관에 절대 뒤지지 않게 번듯한 청소년 서가를 막 만든 C 소재 S도서관. 자신이 낙천적이라고 자부하며 살던 L 선생은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동네 청소년들이 다 어디로 갔나? 그는 청소년들이 도서관을 재미있는 곳으로 여기고 몰려오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 당연히 그것. 재미있는 책이 있어야지. 여긴 도서관이니까.
내가 방문했을 때 L 선생은 나를 붙들고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분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하면서 어떻게든 고민을 해결해 드리고 싶었다. 나도 한 프로페셔널하는 사람. 이때다 하고 늘 목숨처럼 지니고 다니던 지만지 청소년 고전 247선 브로슈어를 척 꺼내서 보여 드렸다. 이 브로슈어는 타블로이드 신문 형태로 우리 출판사가 자랑하는 기획력과 디자인 파워를 보여 주는 엄청난 것이다. L 선생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목록에 매료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이 청소년 고전 목록은 마성의 목록이 아니던가? 누구나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목록을 살핀 L 선생, 책 소개 글을 오려서 서가에 붙여도 되겠느냐고 했다. 내가 이 도서관을 위해, L 선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던가? 이분이 매료당한 이 목록을 마음껏 사용하게 하는 것 아니던가? 얼마든지 서가에 붙이시라고 넉넉히 더 챙겨 드렸다.
얼마 후 S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종합자료실 청소년 서가에 우리 브로슈어가 예쁘게 코팅되어 각 섹션별 소개 포스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뿌듯했다. 브로슈어 때문에 도서관이 빛나고, 도서관 때문에 브로슈어가 더욱 빛났다.
L 선생은 복본이 많아 구매를 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뭐, 괜찮아. 우리 브로슈어가 저렇게 잘난 모습으로 붙어 있으니까. 내가 실망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L 선생은 브로슈어 덕분에 이용률이 오르는 재미를 봤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서가를 더 채워야 하니 목록을 엑셀로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내 얼굴에 화색이 돈 건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L 선생과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낸다.
뭔가 특별한 책을 갖다 놓고 싶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지만, 대학교 주변에도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지역 주민의 구성에 따라 장서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대학교 주변의 도서관은 당연히 대학생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S 소재 M도서관도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다. Y 선생은 대학생들 방문이 유독 많은 자신의 도서관을 남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뭔가 특별한 책들을 갖다 놓고 싶었다. 게다가 예산도 여유로웠다. 취업에 목매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죽어 버린 청년 감수성을 일깨우려면 어떤 책을 갖춰 놓아야 할까?
Y 선생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다가 나는 아주 특별한 시리즈 하나를 소개했다. 바로 한국 대표 희곡 100선이다. 희곡은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은 문학 장르이고 그만큼 도서관에서도 흔하지 않은 수서 목록이다. 특별함으로 치면 최고다. 더구나 한국 희곡을 100권이나 출간한 출판사는 우리 회사밖에는 없다. 특별함은 우주 최강이라고 할 만하다. 희곡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과 예술성, 연극 대본이라는 현장성, 주제의 보편성 등은 청년들의 감수성을 만족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내가 희곡을 Y 선생에게 권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M도서관의 주변에 연극영화학과가 있는 대학과 극단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희곡 출간 당시 시장조사를 해 보니 입시 시즌에 학생들이 희곡 책을 많이 찾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Y 선생은 자신의 도서관에 특별함을 부여해 주는 이 계획이 좋은 생각이라며 무릎을 쳤다.
영업자의 생각에 이렇게 동의해 주는 분들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지만… Y 선생은 아직 수서를 해 주지 않았다. 시무룩! 언젠가는 해 주겠지, 하며 오늘도 기다린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나는 영업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수서를 해 주지 않는 분들을 보면…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옥 도서관의 운치에 어울리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이 보인다. 별장인가? 하고 이끌려 가다 보면 매끈하게 빠진 한옥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201*년에 개관한 N도서관. 외관만 봐도 한국문학과 전통 분야로 특화되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서가에 유독 시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한옥 도서관과 시. 왠지 찰떡궁합처럼 여겨졌다. 이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시심을 가지고 있겠다. 푸른 숲 속 도서관에서 시를 읽는 사람들. 운치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시집들이 있고 저마다 운치를 뽐내지만, 운치도 운치 나름. 이 도서관의 운치에 딱 어울리는 시집을 찾아야지. 두둥! 그런 시집이 우리 출판사에 있다. 바로 시인들이 한 자 한 자 손으로 눌러 쓴 육필시집이다. 아마 이런 시집은 한국에서도 전무후무,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내 머릿속에 도서관 이용자들이 육필시집을 읽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들은 분명 숲 속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육필의 향이 날아가 버릴까 염려되어 시집을 꼭 끌어안을 것이다.
나는 열정적인 어조로 K 선생에게 육필시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K 선생은 난생처음 보는 시집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그 역시 시심을 갖고 있는 사서. 즉시 육필시집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아마 내가 머릿속에 그린 장면을 그도 떠올리지 않았을까? 어쩐지 그가 시집을 꼭 끌어안더라니.
목록을 보내 달라는 K 선생의 말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게 들렸다. 회사로 돌아와 육필시집 목록을 푸르른 숲처럼, 시원한 바람처럼 맑게 싸서 보내 드렸다.
도서관이 어디 책만 읽는 곳이랴. 책 속에 들어 있는 마음도 얻어 오는 곳. 나는 앞으로 시심이 고프면 N도서관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뭐 꼭 K 선생이 육필시집을 또 사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니다. 사심을 채우기 위해 시심을 찾는 게 절대 아니라니까!
고급 이용자를 위한 독립투사가 되리라!
강원도 Y 소재 T 도서관. 인구가 많은 도시가 아니어서 이용자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책이 그렇듯 도서관도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건 아니다. 단 한 사람이 이용하더라도 얼마나 커다란 만족을 얻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런 마인드를 가진 나는 작은 도서관을 방문할 때 더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T 도서관의 K 선생으로 말하자면 나와 마인드 면에서 쿵짝이 아주 잘 맞는 분이다. 그분에게 도서관의 성적표와도 같은 대출 빈도라는 건 먼 나라 이야기인 것이다. 보통 도서관에서 수서할 때 대출 빈도가 우선순위가 되고 그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선호한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가를 위해 존재하는 멋진 사서 K 선생, 그녀는 단 한 사람이 읽더라도 만족한다면 수서하겠다는 소신을 가졌다. 독립투사와도 같이 결연한 그녀의 소신에 박수를!
T 도서관의 이용자는 대부분 원주민보다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더 많다. 도시 생활을 하다 은퇴한 사람들이 이 도시에 많은 까닭이다. 그들은 대부분 도서관 이용 경험이 있고 비교적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K 선생은 이들에게 적당한 책, 그걸 찾고 있었다.
우리 출판사가 괜히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한 책을 찾으면 다 나온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지만지 고전 50종을 소개했다. 처음 출간이란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읽어 본 적 없는 참신한 책이라는 뜻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 남들에게는 없는 지식이 자신의 머리에 쌓인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에 갈증을 느끼는 고급 지식인들이 원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 도서관과 딱 맞겠쥬?”
내 말을 들은 K 선생은 얼굴 표정이 더욱 결연해지더니 15종을 선정했다.
넉 달 후 방문해 그 책들이 잘 대출되고 있는지 물었다.
“지만지는 대출 빈도가 높진 않아요. 그렇지만 단골 이용자 중 은퇴한 지식인 중심으로 간간이 대출되고 있어요. 우리 판단이 맞았어요. 그분들께 적합한 책이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수서할 계획이에요.”
우리. 그녀와 난 우리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이 죽어 가고 있는 이 시대. 마인드로 대동단결하는 우리는 책을 위해, 도서관을 위해, 고급 이용자를 위해 독립투사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