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문화연구 특집 5. 우리 문화연구의 짧은 역사
한국문화연구학회가 만드는 <<문화연구>>
행복은 계발될 수 있을까?
자유주의적 경쟁, 불안에 의한 자기계발, 끝없는 상품 소비, 기호가 기호를 좇는 열망 그리고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부재감. 문화연구는 문화의 더 넓은 의미를 묻는다.
<<문화연구>>는 어떻게 태어났나?
68혁명을 전후로 태동했던 문화연구의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소비자본주의가 더 이상 유의미한 삶의 양식일 수 없다는 시대 인식 말이다. 2010년대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연구≫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모색이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어떻게 모색하는가?
노동자 계급의 일상생활과 주체 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와 생활양식이 아니라 대중이 주체적이고 상호 부조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는 새로운 삶과 문화, 주체 양식을 살피려는 시도다.
눈에 띄는 생태적 접근도 같은 맥락인가?
생태적 문화정치학 비판, 생태적 문화경제학 비판도 <<문화연구>>의 핵심 목적이다.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생태적 태도는 어떤 긴장 구조를 만드는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새로운 삶의 양식이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다. 생태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려 한다.
<<문화연구>>는 누가 만드는가?
한국문화연구학회다. 2008년 12월 창립총회를 개최했고, 201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교수와 석박사과정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약 200여 명의 회원들이 제도권 문화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있다.
초기 국내 문화연구의 형편은 어땠나?
문화연구가 서구 비판 이론의 한 조류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1980년대 후반이었다. 그때는 지식사회의 주된 관심이 변혁 이론과 정치경제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화연구는 변경에 있었다.
문화연구의 전환점은 언제 찾아왔나?
1990년대 초반 동구권 붕괴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전투적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같은 변혁 운동이 퇴조한다.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도래하고 소비자본주의 시대가 개막한다. 시대 화두가 정치에서 문화로 변한다. 문화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개입 방식이 필요해졌다.
현실은 문화에 어떻게 개입하였나?
크게 두 갈래 이루어졌다. 하나는 1992년에 창간된 <<문화/과학>>처럼 신좌파적 관점을 취한 방식이다.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소비자본주의를 비판하려 했다. 다른 하나는 1992년에서 1993년 사이에 창간된 <<상상>>, <<이매진>>, <<리뷰>>의 방식이다. 문화 확장의 의미를 신세대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했다.
비판과 해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평론적 관점을 취했다. 반면 전자는 비판적 문화연구의 전통을 수용하되 이를 1980년대 변혁 운동의 기본 방향과 절합하려 했다. 영국 문화연구의 비판적 전통을 한국적으로 수용한 효시다.
비판적 문화연구는 성공하였나?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문화평론적 관점을 선호하던 당시 시대 흐름 때문이다. 더구나 IMF 위기 직후에는 시대의 화두가 문화에서 경제로 다시 전환된다. 비판적 문화연구가 지식사회에서 주목받을 여지가 또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지식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경제 위기가 회복되고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본격화되었다.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자기계발 담론 활성화에 앞장선 출판 시장에 적응해 나갔다. 인문학 진영은 신자유주의적 경영학이 대학과 학문 체제를 포섭하는 데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비판을 위해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취했다.
문화가 다시 기회를 맞은 것인가?
2000년대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문화 지형이 확장되고 대중문화와 생활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된 시기다. 하지만 한국영화와 아이돌 중심 대중음악의 부상은 ‘한류 열풍’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화 지형을 형성했고 지식사회의 주된 관심은 문화산업정책과 문화콘텐츠산업처럼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의 확산으로 쏠렸다.
문화의 비즈니스 확산은 문화연구의 걸림돌인가?
비판적 문화연구가 학과 수준으로 자리 잡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2005년을 전후로 산학협동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맞물리면서 전국 모든 대학에 비즈니스에 역점을 두는 문화콘텐츠학과가 신설된다. 문화에 대한 관점을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런 악순환을 활성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문화연구학과가 협동과정의 형태로 신설된 곳은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두 곳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에게 비판적 문화연구가 절실한 까닭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하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 경제주의적 물신화, 삶의 피폐화, 전망 부재가 눈에 띄게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면서 상품 소비로 위안을 찾는 삶의 양식은 더 이상 대중의 삶에 유의미하지 않다는 인식이 일상생활에서 확산된다. 새로운 삶의 양식, 곧 비판적 문화연구에서 말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구성해야 할 시대적인 필요성이 부상할 수밖에 없다.
<<문화연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문화연구학회는 다양한 연구 분과를 통해 연구 성과를 쌓아 나가고 있다. 문화경제, 교육문화, 대중문화, 서사문화, 미디어문화, 페미니즘과문화, 정보기술문화, 아시아문화, 라틴아메리카문화 연구 분과가 그것이다. 또한 매년 2회씩 정기적인 국내·국제 학술대회와 학술 혹은 시사 주제로 비정기 워크숍을 개최한다.
향후 전략은 뭔가?
분과 학문의 틀에 묶여 있는 기성 교수들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극 관심을 갖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자유로운 ‘말 걸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학회원 이외에 한국 문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대안 모색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동참을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심광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한국문화연구학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