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토기 천줄읽기
2587호 | 2015년 5월 14일 발행
의리남의 탄생기, ≪백토기≫
오수경이 옮긴 ≪백토기(白免記)≫
의리남의 탄생
남편은 부인과 생이별한 뒤 승승장구한다.
부인은 홀로 아이를 낳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부인을 찾지 않았다.
남자의 배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의리남을 기대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배신은 의리의 이름을 얻는다.
유지원: 삼랑!
이삼랑: 누가 삼랑이라고 내 이름을 부르나요? 올케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빨리 가시오!
유지원: 유지원이 여기 돌아왔소이다.
이삼랑: 누가 그 사람이 내 남편인 걸 모른단 말이오?
유지원: 삼랑! 우리 헤어질 때 내 세 가지를 이루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했소. 기억하시오?
이삼랑: 세 가지가 무엇이오?
유지원: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벼슬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이홍일의 원수를 갚을 만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이삼랑: 이건 내 남편과 수박밭에서 나눈 얘긴데, 당신 같은 사람이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이오? 어디 좀 봅시다. 아!
≪백토기≫, 작자 미상, 오수경 옮김, 107∼108쪽
유지원과 이삼랑은 부부인가?
그렇다. 당말 오대 시기 후한을 세운 유지원과 그의 조강지처 이삼랑이 헤어진 지 16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이다.
어쩌다 이별했나?
이홍일 내외 때문이다. 이홍일은 이삼랑의 오라비다. 가난뱅이 유지원을 쫓아 버리기 위해 간계를 부렸다.
이홍일의 간계란?
유지원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인 뒤 귀신이 출몰한다는 수박밭으로 보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다.
수박밭에 귀신이 나타나는가?
나타난다. 그러나 유지원은 귀신의 위협을 물리친다. 귀신이 사라진 곳을 파자 보검과 병서가 나온다. 보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 보검을 유고(劉暠)에게 주노니, 오백 년 만에 영웅이 나타나리라.”
오백 년 만의 영웅이 되는가?
그렇다. 유지원은 병주의 악 절도사 휘하에 들어간다. 악은 유지원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딸 악수영과 혼인시킨다. 이후 유지원은 승승장구하여 구주안무사에 오른다.
이삼랑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홍일 부부의 구박과 핍박을 견딘다. 이들의 재가 요구를 거부한 채 낮에는 물을 긷고 밤에는 방아를 돌리면서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다 방앗간에서 혼자 해산한다. 가위가 없어 이로 탯줄을 끊는다. 아이 이름을 교제랑이라고 짓는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
이홍일의 처가 달려와 아기를 연못에 던져 죽이려 한다. 이때 불 지피는 노인이 나타나 아기를 구해다가 병주에 있는 유지원에게 보낸다.
모자의 인연은 끝인가?
출산한 지 사흘 만에 아들을 떠나보낸 이삼랑은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 간다. 그렇게 16년이 흐른다. 흰 토끼를 쫓던 교제랑이 우연히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이삼랑을 본다. 교양 있어 보이는 부인이 봉두난발에 맨발인 사연이 궁금해진다.
드디어 모자 상봉인가?
이삼랑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유지원과 헤어져 혼자 아이를 낳은 사연을 얘기한다. 교제랑은 사연에 등장하는 자의 이름이 자기 아버지와 같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신을 구주안무사의 자제라고 소개하고 이삼랑에게 남편을 찾아 주겠다고 약속한다. 교제랑이 돌아가 유지원에게 이삼랑과 있었던 일을 말한다. 유지원은 교제랑이 만난 부인이 자신의 조강지처임을 알아차린다. 그 여인이 생모임을 알게 된 교제랑은 부친의 의리 없음을 비난한다. 유지원은 서둘러 이삼랑을 찾아간다.
부부는 어떻게 재회하나?
유지원은 옛적의 초라한 행색으로 이삼랑 앞에 나타나 그간의 사정을 들려준다. 사흘 뒤 다시 와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 증표로 구주안무사의 금 도장을 맡긴다. 병사를 데리고 돌아와 이홍일 내외를 벌하고 이삼랑과 재결합한다.
유지원은 부부 의리를 지킨 것인가?
그는 조강지처를 버렸다. 아들의 비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아내를 찾는다. 이렇게 보면 그는 결코 의리남이 아니다. 하지만 사대부는 물론 민중도 그가 의리남이기를 원했다. 때문에 점차 의리남으로 변신하게 된다.
변신하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민간 희곡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또 문인들이 그것을 정리해 출판하면서 남성과 통치 계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지는 경향이 있다.
<백토기>가 민간 희곡인가?
명나라 희곡 이론가인 왕기덕은 <백토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속하고 천근한 것이 마치 한 사람 손에서 나온 듯하다. 그때 병란이 계속 일어나고 사람들이 유리되었다. 전하는 작품은 대개 그 시절 시골 선비나 노인들이 대충 읊어 놓은 것이다.” <백토기>가 민간 연극인 남희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남희가 무엇인가?
송원대 남방에서 유행한 희곡 형식을 말한다. 명대 성화 연간에 간행된 판본에서 민간의 남희 연출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토속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민간 가요가 그대로 사용되었고, 남희의 발상지로 알려진 절강성 온주 지역 방언도 많이 쓰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수경이다. 한양대학교 중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