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총화(慵齋叢話)
2421호 | 2015년 1월 27일 발행
성현이 말하는 조선 초기 우리의 삶
홍순석이 옮긴 ≪용재총화≫
조선 초기의 모든 인생
황필은 발문에 이렇게 썼다.
“조정과 민간의 기쁘고 놀랍고 즐겁고 슬픈 이야기는
웃고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든다.
역사에 빠진 것이 이 책에
모두 있다.”
홍녀에게 반한 서거정
“화사(畵史) 홍천기(洪天起)는 여자인데 얼굴이 한때의 절색이었다. 마침 일을 저질러 사헌부에 나아가 추국(推鞫)을 받았다. 달성(達城) 서거정(徐居正)이 젊었을 때에 여러 소년들의 무리를 따라다니며 활 쏘고, 술을 마시다가 또한 잡혀 와 있었다. 서거정은 홍녀(洪女)의 옆에 앉아서 눈짓을 보내고 잠시도 돌리지 않았다. 이때 상공(相公) 남지(南智)가 대사헌이었는데, 보다 못해 말하기를, “유생이 무슨 죄가 있는가. 속히 놓아주어라” 했다. 서거정은 나와서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어찌 공사(公事)가 이처럼 빠르냐? 공사는 마땅히 범인의 말을 묻고 또 고사(考辭)를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 뒤에 천천히 하는 것이거늘, 어찌 이렇게 급하게 하는가?” 했다. 이것은 홍녀의 옆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을 한탄해서 한 말이었다. 친구들이 듣고 모두 웃어 마지않았다.”
≪용재총화(慵齋叢話)≫, 성현 지음, 홍순석 옮김, 345~346쪽
‘용재총화(慵齋叢話)’가 무슨 뜻인가?
‘용재’는 저자 성현의 호다. ‘총화’는 여러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용재총화는 성현이 지은 잡기류 문헌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썼는가?
고려 때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왕세가·사대부·문인·서화가·음악가 등의 인물 일화를 비롯해 풍속·지리·제도·음악·문화·소화(笑話) 등 사회 문화 전반을 다뤘다.
구성은?
내용으로는 기실(記實)·골계(滑稽)·기이(紀異)·잡론(雜論)으로 나눌 수 있지만 유형이나 내용에 따라 분류하지는 않았다. 336편의 이야기를 특별한 기준 없이 10권으로 나누어 실었다.
‘기실’이 뭔가?
사회·경제·문화·지리·풍속·제도·불교·정치·행정·인물 일화 등 성현 당대의 역사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 기록과는 다른가?
사서(史書)에 없는 세시풍속이나 사신, 왜인의 풍속까지도 기록했다. 특히 인물 일화가 많다.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누구의 일화인가?
인용한 글처럼 사대부는 물론 장수, 음악가, 궁사, 사냥꾼, 독경사, 맹인, 성대묘사꾼 등 거의 모든 유형을 망라했다.
골계는 어떤 이야기인가?
우치담(愚痴談)·낭패담(狼狽談)·사기담(詐欺談)·예지담(睿智談)·호색담(好色談)이다. 장덕순은 그중에서도 호색담이 ≪용재총화≫의 가장 특징적인 설화라 했다.
기이는 괴담인가?
귀신 이야기, 꿈과 해몽, 점복 등이다. <최영 장군의 홍분(紅墳)> <강감찬과 호승(虎僧)> 등은 대표적인 지괴설화(志怪說話)다.
잡론은 무엇인가?
개인 기록과 시화(詩話)로 구분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의 가문과 일가친척, 형제며 외숙에 관한 이야기가 36편이나 된다. 민간의 속언과 옛이야기도 세심하게 기록했다. 시화는 본격적인 것도 있으나 대개는 인물 일화에 삽입된 것이다.
성현은 왜 이 책을 썼나?
<촌중비어서(村中鄙語序)>에서 “가히 후대 사람들에게 권계(勸誡)가 될 만하고, 야외(野外)의 일사(逸事)로서 늙마에 즐길 만하며, 한가한 때에 소일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잡기류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를 실천한 것이다.
그는 어쩌다 잡기류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가족과 지인의 영향이다. 성종 시대 관료층 문인들은 잡기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저자의 형인 성임, 성간은 경전만 추종하는 도학자(道學者)와는 다른 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성임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태평통재(太平通載)≫를 엮었다. 같은 시기에 서거정은 ≪필원잡기(筆苑雜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은 ≪촌담해이(村談解弛)≫, 이육은 ≪청파극담(靑坡劇談)≫을 저술했다.
당대의 ≪용재총화≫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
황필이 쓴 <용재총화발문>을 보자. “무릇 우리나라 문장 각 세대(世代)의 고하(高下), 도읍 산천의 민풍(民風)과 시속(時俗)에서 숭상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추함, 성악(聲樂) 복축(卜祝) 서화(書畵), 모든 잡기(雜技)에 이르기까지 조야 간(朝野間)의 기쁘고 놀랍고 즐겁고 슬퍼함은 담소(談笑)의 자산이 되어 심신(心神)을 온화하게 할 수 있다. 국사(國史)에 갖추지 못한 것도 이 책에 모두 실려 있다.”
성현은 누구인가?
조선 초기의 문인이다. 1439년에 태어나 1504년에 죽었다. 용재 외에 부휴자, 허백당이라는 호도 사용했다. 음률에 정통해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등을 남겼다.
당신은 왜 이 책을 번역했나?
조선 초기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기록은 오늘날 사회학·민속학·구비 문학은 물론 한국학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홍순석이다. 강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