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럽, 어제의 시간
유럽의 유럽, 어제의 시간
오늘을 알고 싶다면 어제를 봐야 한다. 불행하게도 츠바이크는 그의 시대에 유럽의 존재에 대해, 이성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도 찾지 못했다. 우리에게 유럽은 익숙하다. 그러나 유럽의 유럽, 곧 조지아도, 루마니아도, 헝가리도, 세르비아도, 우크라이나도 영 낯설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럽에 대해 무엇을 아는 것일까? 유럽의 어제만이 유럽의 오늘을 말할 수 있다. 들어보라, 그들의 어제를.
호피를 두른 용사 조지아 문학의 모태가 된 민족 서사시다. 중세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세계 문학사에서도 위대한 서사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인도 문명과 아랍 문명이 융합된 서사시다. 남을 배척하지 않고,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조화로운 문화를 형성한 조지아인들의 독특한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조지아와 캅카스, 중동과 러시아를 연구하는 학자들 모두에게 무척 중요한 자료다. 쇼타 루스타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어제의 세계 “이성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동기도 찾을 수 없다.” 20세기 초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자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쟁의 비참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그는 유럽이 잃어버린 ‘어제의 세계’를 떠올리고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기억’이란 의식하면서 정리하고 쓸데없는 것을 현명하게 줄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위해 그는 치열하게 기억하고 기록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괴뫼리 민중 발라드 헝가리 최고의 민속학자 졸탄이 가장 헝가리적인 괴뫼르 지역의 민중 발라드를 묶었다. 헝가리 민중의 애환과 해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로 우리 민중의 노래이기도 하다. 헝가리 민중의 발라드는 대개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주제와 낭만적 이야기를 다룬다. 일상 언어를 사용하며 운율은 단순하다. 가장 극적이고 신나는 것들만 묘사하고, 그 사이에 생략된 부분은 상상력으로 보충하게 한다. 우이바리 졸탄 엮음, 이상동 옮김 |
교수된 자들의 숲 천줄읽기 레브레아누는 루마니아 전쟁문학의 대가다. 주인공 볼로가는 동족인 루마니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전선으로 내몰린다. 군사법정에서 루마니아 병사들에게 형을 집행하도록 강요당한다. 탈출구 없는 벼랑의 끝으로 내몰리는 볼로가의 심리 상태가 전쟁의 사실적 묘사와 결부되어 있다. 볼로가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인간주의적 확신과 신념,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리비우 레브레아누 지음, 김정환 옮김 |
쇼팔로비치 유랑 극단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세르비아의 작은 도시 우지체에 쇼팔로비치 유랑 극단이 찾아온다. 시민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공연에 냉담하다. 전쟁 중이고 먹고살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단원들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결국 극단은 공연을 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떠난다. 세르비아 최고 문학가 시모비치는 역경 속에서도 꿈을 좇는 모습을 보여 준다. 류보미르 시모비치 지음, 김지향 옮김 |
타라스 불바 고골은 16세기 말 우크라이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속에 살아가던 당시 카자크인들의 생활상도 자세하게 그렸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엽 폴란드에 대항한 우크라이나 해방운동의 개별적 사건과 전투를 일반화했다. 물론 그가 주장한 카자크인과 폴란드인의 종교적 갈등은 허구에 불과하다. 이교도를 악마로 간주한 고골의 문학관이 엿보인다. 니콜라이 고골 지음, 김문황 옮김 |
근대 유럽의 인쇄 미디어 혁명 15세기 유럽에서 새로운 인간 유형이 등장한다. 표준의 인간, 합리의 인간, 과학의 인간이다. 나누고 쪼개고 조직하는 데 능한 이 인물과 함께 근대 국민국가의 맹아가 싹튼다. 관료제와 상비군이 체계화되고 표준 국어가 제정되며 국경이 또렷해진다. 이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이 역사상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두의 시발점인 기예를 사람들은 ‘신성한 기술’이라 불렀다. 인쇄술이다.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 지음, 전영표 옮김 |
메리 루이스 프랫, 제국의 시선 감성적 서사는 18∼19세기 유럽 여행문학의 특징이었다. 동식물의 종명과 속명만 나열하는 과학적 서사와 달리 감성적 서사에서 유럽인은 일인칭 주인공이 된다. 현지인과 호혜 관계를 맺거나 이질적 문화를 존중하는 역할이 그에게 주어진다. 여기서 제국과 식민지, 유럽인과 현지인은 낭만적 사랑을 꽃피우고 서로 환대한다. 정작 실제 지배 관계는 은폐된다. 감성적 서사는 유럽 제국주의를 보조한 이데올로기 전략이었다. 김남혁 지음 |
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나치 패망 후 조국으로 돌아온 아도르노는 유럽 정신의 황폐화를 극복하려 했다. 그리고 독일 이상주의의 오랜 전통, 곧 변증법에 천착한다. 변증법은 주어진 현실을 ‘응당 그래야 하는’ 이념에 비추어 봄으로써 그 둘의 어긋남을 직시하게 한다. 현실감이 부족해 보이는 이 사유 방식의 정수는 ‘돌파력’에 있다. 현실의 불가능함을 직시하는 힘이 바로 불가능을 뛰어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변증의 동력을 상실한 대륙에 바치는 가장 세밀한 성찰이 여기 있다. 이순예 지음 |
유럽 텔레비전 문화사, 공영방송에서 리얼리티쇼까지 1950~2010 1950년대에 출범한 유럽 공영방송은 단순 방송 체제가 아니었다. 대중매체를 공공 서비스로 파악하는 유럽의 관점이 투영된 테크놀로지였다. 텔레비전을 국가 업무로 인식하고 정보와 교양의 배양을 핵심 가치로 여긴 이유다. 1970년대 탈규제 바람으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도 이 원칙만은 유지되었다. 유럽 공영방송의 흥망성쇠에서 문화와 교육을 존중하는 유럽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제롬 부르동 지음, 김설아 옮김 |
2864호 | 2016년 7월 12일 발행
유럽의 유럽, 어제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