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역 천줄읽기
인간의 안과 밖
주역은 우주 변화와 역사 흐름으로 인간을 본다. 우주가 인간을 바꾸는가, 인간이 우주를 바꾸는가? 성이심은 하늘이 큰 사람이고 사람이 작은 하늘이라고 했다. 안에는 마음이 있고 밖에는 세상이 있으니 그 사이에 항상 인간이 있다.
易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변화인 天易, 또 하나는 산가지로 상징된 竹易,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변화인 人易이다. 역의 道는 펴면 천하의 모든 일에 있지만 접으면 한 사람의 덕과 행위에 있다. 오직 인간만이 그것을 신묘히 해 밝힐 수 있으니 역이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산가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인역 천줄읽기≫, 성이심 지음, 심의용 옮김, 49쪽
‘인역’을 정의하는 내용인가?
본래 양만리(楊萬里)의 ≪성재역전(誠齋易傳)≫ 권17 <계사상>에 나오는 구절이다. 성이심(成以心)이 가져다 뜻을 살렸다.
≪人易≫은 ≪주역≫을 재구성한 책인가?
그가 “역학의 올바른 宗旨이며 마음의 깨달음에 대한 기묘한 법”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易이니, 곧 인간의 마음에 관한 책이다.
≪주역≫은 흔히 점치는 책으로 여겨지는데, 잘못된 생각인가?
잘못된 인식이 아니지만 잘못된 인식이다. ≪주역≫은 점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잘못된 인식은 아니다. 그러나 占이란 무엇인가?
점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래 예측이다. 그래서 ≪주역≫은 천문학과 깊이 관련된 문헌이고, 미래 예측의 근거를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실용적 효용성까지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 미래 예측의 근거를 제시하는 학문은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점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과학이다. 과학의 시대다. 이 시대에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읽는다면 시대착오다. 그런 점에서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미래를 말하지 못한다면 ≪인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과학의 시대에도 점을 치려는 사람이 넘치는 지금, ≪주역≫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알려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는 어떤 진상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인간 욕망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뜻인가?
나는 이 책을 인간의 마음을 말해 주는 마음의 과학으로 읽는다. 이 책은 마음의 과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문헌이다.
≪주역≫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
象數易과 義理易으로 나뉜다. ≪주역≫ 해석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우주 운행의 변화’와 ‘인간과 역사의 변화’라는 두 가지다. 우주 운행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우주론적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인간과 역사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행위와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 곧 德과 역사적 정의, 곧 義에 대한 문제였다. 전자를 상수역, 후자를 의리역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은 의리역을 취하고 있나?
성이심은 “의리는 상수의 실체이고 상수는 의리의 모양”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실체다. 그래서 실체로부터 모양을 구해야지 실체를 보지 않고 모양을 그리려고 하면 안 된다고 비판한다.
의리를 먼저 구하면 상수를 알 수 있나?
의리 문제는 곧 인간 마음의 문제다. 마음을 통해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우주의 원리는 마음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크게 하면 하늘이고, 작게 하면 사람이다. 하늘은 큰 사람이고 사람은 작은 하늘이다(大而天, 小而人. 天者大人, 人者小天)”라는 그의 말처럼, 하늘과 인간은 다른 영역이 아니라 동일한 영역이고, 동일한 이치로 이해될 수 있다.
≪인역≫이 감정의 백과사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책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64괘를 인간의 여러 감정에 견주어 논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정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단지 자의적으로 나열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어떤 구조에 넣어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64괘는 어떻게 형성되어 마음을 표상하는가?
≪주역≫은 태극으로부터 시작해 음양, 사상, 8괘로 이어지고, 이것이 64괘를 구성한다. 이것은 단지 64괘의 발생 순서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생성 과정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성이심은 이를 온전히 마음의 현상에 견준다.
성이심의 설명은 무엇인가?
우선 이를 ‘의의설(擬議說)’, 즉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글’로 설명한다. 64괘에 나온 괘상, 괘사, 효상, 효사 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각 괘의 특성에 맞는 마음을 괘에 견주어 배치했다.
문자회와 도설은 어떤 기능이 있는가?
전체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권까지는 이러한 내용들을 ‘문자를 회 친다’는 뜻의 문자회(文字膾) 형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5권은 도설(圖說)이다.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도표로 설명한다.
문자를 회 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물고기를 회 치듯이 여러 현자들의 문자를 잘게 쳐서 독창적인 사유를 만든다. 경전과 제자(諸子) 그리고 선현들의 말들을 간략하게 인용하면서도 인용한 문장을 자신이 취한 맥락에서 다른 의미로 살아나게 한다. 이는 마치 여러 가지 천을 기워서 아름다운 문양을 띤 자신만의 옷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발췌했는가?
태극부터 8괘까지에 대한 설명이 담긴 문자회 1권을 옮겼다. ≪인역≫의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자 핵심이 된다.
성이심은 어떤 사람인가?
18세기 조선의 학자인데 알려진 것이 적다. 숙종, 경종, 영조가 통치한 시기에 살았으나, 명시적으로 드러난 학맥(學脈) 없이 세상을 등지고 학문에만 매진했던 은둔거사였다.
숨어 있던 이 책을 당신은 왜 지금 들고나온 것인가?
담론이란 지식인들의 논박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아무도 인용하지 않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담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논의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문제로서 제기되는 법이다. 그는 권력의 바깥에서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했다. 그의 사유가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접하고 번역한 계기는?
정이천이 해석한 ≪주역≫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나서, 조선조 사람들은 ≪주역≫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했다. 성균관대학교에 ‘한국경학자료시스템’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그곳에는 사서삼경을 해석한 조선조의 모든 문헌이 망라되어 있다. 놀이터로는 최고다. 거기서 놀다가 ≪인역≫을 발견했다. 내 관심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해 번역하게 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심의용이다. 성신여대 연구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