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쿠마 강 스케치
2430호 | 2015년 1월 30일 발행
시마자키 도손의 고모로 지쿠마 강 이야기
김남경이 옮긴 ≪지쿠마 강 스케치≫
교사로 가 학생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 고원에 지쿠마 강이 흐른다.
피폐한 영혼은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혹독했다.
자연과 싸우고 자연에 기대는 농부의 삶을 만난다.
눈과 귀의 허위와 편견 걷어 내고 바르게 보는 법을 얻었다.
“자네는 우유가 언 것을 본 적이 없겠지. 초록빛에 우유 향도 없다. 여기서는 달걀도 언다. 그걸 쪼개면 흰자도 노른자도 사각사각 씹힐 기세다. 부엌 개수대에 흐르는 물은 모두 꽁꽁 언다. 파뿌리, 차 찌꺼기까지 얼어붙는다. 불 켜진 창으로 약한 빛이 새어 나올 무렵, 뾰족한 식칼인지 뭔지로 개수대의 얼음을 꽝꽝 두들겨 깨는 광경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이다. 밤을 넘긴 홈통의 물은 아침이 되면 반은 얼음이다. 그걸 햇볕에 쬐고 얼음을 두들겨 떨어뜨린 후 물을 퍼 담는 식이다. 단무지도 쓰케모노도 얼어서 씹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쓰케모노까지 더운 물로 헹구지 않으면 안 된다. 고용인의 손을 보니 거칠고 꺼뭇꺼뭇하며 피부는 찢어져 군데군데 붉은 피가 나고 물을 퍼 올릴 때는 장갑 끼고 두건을 쓰고 한다. 마루방에 걸레질한 자리가 금방 허옇게 얼어 버린 아침이 전혀 낯설지 않다. 밤이 이슥해지고, 방마다 기둥이 얼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독서라도 하고 있으면 정말이지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지쿠마 강 스케치≫, 시마자키 도손 지음, 김남경 옮김, 173~174쪽
여기는 어디인가?
고모로 마을이다. 일본 나가노 현이다. 해발 700미터의 고원 지대다. 활화산인 아사마 산이 있고 지쿠마 강이 흐른다. 인용문은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절정에 이른 고모로 마을의 겨울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편지인가?
수필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의 일부다. 도손이 고모로에 있을 때 습작한 글을 1911년 6월부터 1912년 8월까지 ≪중학세계(中學世界)≫에 연재했다. 독자층을 고려해 젊은이들이 읽기 쉽게 수정하면서 은인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의 자녀 시게루(樹) 앞으로 쓰는 형식을 취했다.
무엇을 썼나?
마을 주변의 자연, 사람들의 생활, 행사, 풍물을 스케치했다.
형식은?
12장 65편이다. 각 편은 독립된 내용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썼다. 봄에 시작해 봄에 끝난다.
왜 봄인가?
도손에게 봄은 ‘이상의 봄’, ‘예술의 봄’, ‘인생의 봄’이다. 인생 고비마다 새 생명이 싹트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이겨 냈다. 그에게 ‘봄’은 위기에서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을 상징한다.
위기란?
이십 대 초반, ≪새싹집(若菜集)≫을 통해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시인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낮았고 일본어로 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경제적으로도 큰형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정신과 재정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899년 도쿄를 떠나 고모로 생활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봄’을 찾는가?
“고모로에 시골 교사로 가서 학생이 되어 돌아왔다”고 고백한다. 거친 자연에 투쟁과 순응을 반복하는 농부들의 지혜와 검소한 생활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7년이었다. 생활 양식은 물론 문학 형식까지 바뀌었다.
문학 형식의 변화란?
스케치, 사생(寫生)이다.
회화 기법 말인가?
그렇다. 인상파의 기법이다. 수채화가 미야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물을 바르게 보는 법’으로 사생을 배워서 이를 글에 응용했다. 사물을 허위와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긴다.
어떻게 연습했나?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이나 다윈의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자연과학적 관찰을 익혔다.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에서 회화를 보는 듯한 신비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묘사는 ≪지쿠마 강 스케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계절 변화를 바탕에 깔고 물질의 자연과 감상의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자연이나 풍경의 외면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을 실감나게 스케치했다.
이후 도손은 어떻게 달라지나?
≪선집(選集)≫ 상권 서문에 자신의 산문은 ‘이 스케치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다. 사생 기법은 그의 언어 표현 지평을 넓혔고 이로부터 서정시에서 소설로 전향해 ≪파계≫, ≪봄≫, ≪신생≫ 등 자연주의 소설의 대작을 남겼다.
시마자키 도손은 누구인가?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1872년에 태어나 1943년에 죽었다. 메이지 낭만주의 시인이고 자연주의 소설가다.
당신은 왜 이 책을 번역했나?
이 수필은 도손이 시에서 산문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정신적 풍토가 되고 문학 방향을 결정지은 고모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시적이고 소박한 삶의 형태를 간직한 산촌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남경이다. 명지전문대학 일본어과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