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유고
원시(怨詩)
蓐食向東阡 새벽밥 먹고 동쪽 밭에 나갔다가
暮返荒村哭 저물어 황량한 마을에 돌아와 통곡하네
衣裂露兩肘 옷은 찢어져 양 팔뚝 드러나고
缾空無儲粟 단지는 텅 비어 남은 곡식이 없네
稚子牽衣啼 어린 자식은 옷 잡고 울어 대나
安得饘與粥 어디서 죽이나 미음을 얻을 건가
里胥來索錢 아전들은 와서 세금 독촉하고
老妻遭束縛 늙은 아내 돈 없어 묶여 가네
踰墻陟崢嶸 담장 넘어 가파른 산 올라가서
十日竄荊棘 열흘 동안 가시밭에 숨었다네
潛身草間行 몸을 숨기며 풀섶 사이로 다니니
日落山谷黑 해는 떨어져 산골은 어둑하네
魑魅憑岸嘯 산도깨비는 언덕에서 울어 대고
凄風振林木 처량한 바람은 나무숲을 흔드네
凜然魂魄裭 벌벌 떨리고 혼백이 흩어지니
一步三四息 한 걸음에 서너 번 숨을 몰아쉬네
嗟嗟黠吏徒 슬프다! 저 간특한 아전들아
誅求何太速 가렴주구 어찌 그리 다그치는가
公門非不仁 관가가 어질지 않은 건 아닐 텐데
汝輩心甚毒 네놈들 마음은 매우 지독하구나
≪진일유고≫, 성간 지음, 홍순석 옮김, 200~201쪽
성간은 누구인가?
조선 중기 문인이다. 자는 화중(和仲), 호는 진일재(眞逸齋)다. 1427년 태어나 1456년 병사했다. ‘서음전벽(書淫傳僻)’이라고 놀림받을 정도로 독서에 몰두했다. 사서와 제자백가는 물론 천문, 지리, 의약, 복서 같은 잡예에도 능했지만 관직 생활은 고작 3년을 했다.
관직 생활이 짧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추한 외모 때문이다. 세조가 그를 보고 “비록 재주는 있으나 모양이 너무 추하니 관직은 괜찮지만 승지 같은 가까운 자리는 불가하다” 했다. 이후로 ‘어람좌객(御覽座客)’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집현전 장서각에서 독서에만 몰입했다.
≪진일유고≫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그가 죽은 뒤 형 성임이 글을 모으고 동생 성현이 편집해 1467년 목판으로 간행했다.
책의 구성은 어떤가?
4권 1책이다. 책머리에는 서거정이 쓴 서문과 성현이 쓴 편문이 있다. 권1부터 권3에는 시 115제 245수가 실렸다. 권4에는 부(賦), 서(序), 기(記) 등 13제의 글이 있다. 맨 끝에는 이승소가 쓴 발문이 있다.
어떤 시를 지었나?
악부시(樂府詩)·기행시(紀行詩)·관각시(館閣詩)·교유시(交遊詩)로 다양하다. 특히 동생 성현과 함께 15세기 조선 악부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시풍은 어떠한가?
호방하고 심오하며 건장하다. 정밀하면서도 법도가 있다. 틀에 박히지 않았다.
당대 문인들은 뭐라고 평했나?
서거정은 “마음에 근본하고 글에 표현되는 것이 고고하고 맑으며 온후하고 우아해 훌륭히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어 옛 작가의 풍모가 있었다”고 했다. 이승소는 “참으로 화중 씨는 시를 짓는 법에서 기이했는바, 배운 바가 풍부하고, 기른 바가 크며, 용공하는 데 익숙하고, 용심하는 데 고심했음을 잘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임경은 “학이 청전에 날고 봉황이 단혈에 깃들인 것과 같다”고 평했다. 중국에 조선 시를 소개한 허균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
허균의 평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고시를 본받은 자가 없었다. 유독 성화중이 안연지·도연명·포조 세 사람의 시를 의고해 그 법을 깊이 터득했다”고 했다. “조선 초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소동파를 숭상했는데 홀로 이 사람은 성당(盛唐)의 시를 알아 법도로 삼았다”고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동문선≫, ≪청구풍아≫, ≪국조시산≫, ≪기아≫, ≪대동시선≫ 같은 조선 대표 시선집에 빠짐없이 수록되었다. 중국의 조선 시선집인 ≪채풍록≫, ≪명시종≫, ≪어선명시≫에도 수록되어 널리 알려졌다.
중국에 알려진 계기는 무엇인가?
예겸과 사마순이 사신으로 조선에 왔을 때 지어 준 송별시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예겸이 시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조선의 문장이 중국보다 못하지 않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감탄했나?
성당의 시를 전범으로 하고, 특히 두보의 시 경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현은 <진일선생전>에서 그가 “두시를 천 번이나 읽어서 막힘없이 통달했으며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두보를 천 번 읽고 무엇을 얻었나?
남다른 현실 인식이다. 지배층 관료의 위치에서 백성의 피폐한 모습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의 위치에서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참상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백성과의 일체감은 어떤 문학을 만들었나?
경전만 추종하는 도학자들의 문학관에서 벗어났다. 성현, 서거정, 이육을 중심으로 패관 문학이 발전했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옮겼나?
체재는 원전을 그대로 따랐다. 초간본인 금서문고본을 저본으로 하고, 중간본인 만송문고본과 계명대본을 비교해 교감하고, 원문을 확정했다. 교감한 내용은 각주로 밝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성현의 ≪허백당집≫에 수록된 <진일선생전>을 부록으로 실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홍순석이다. 강남대 국문학과 교수다.
2809호 | 2015년 11월 30일 발행
두보를 천 번 읽고 백성과 공감하다
홍순석이 옮긴 성간의 ≪진일유고(眞逸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