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백승무가 옮긴 그리고리 고린(Григорий Горин)의 ≪초능력자(Феномены)≫
초능력의 정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인간, 그는 초능력자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신비와 마술, 신념과 열정의 결과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한때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면.
라리체프:안녕하시오, 동무들! 제가 맞게 왔죠? 왜 말이 없으실까? 대답해 보세요, 맞게 왔나요?
클랴긴:제대로 왔는지 안 왔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아시겠죠. 누굴 찾아오셨나요?
라리체프:여기가 몇 호실인가요? 425호실 맞죠? (방에서 나가더니 잠시 후 돌아온다.) 425호실 맞네요. 당신들이 바로 그 특별한 사람들인가요?
클랴긴:우리가 초능력자들입니다.
라리체프:초능력자! 제가 말하려던 게 그거예요. (프로호로프와 클랴긴을 쳐다본다.) 음, 그래요. 상상하던 대로군요. 누가 누구인지 한번 맞혀 보리다. 당신이 프로호로프고, 당신은, 그 불쾌하고 딱딱한 시선으로 보아 클랴긴이군요. 맞혔나요? 그런데 이바노프는요? 이바노프 어딨나요? 이바노프 씨가 있어야 하는데.
프로호로프:이바노프는 나갔어요.
클랴긴:(라리체프에게) 당신은 누구요?
라리체프:아, 저는 라리체프입니다.
≪초능력자≫, 그리고리 고린 지음, 백승무 옮김, 26쪽
초능력이라니?
프로호로프는 정신 집중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염력을 가졌다. 클랴긴은 어떤 벽이든 뚫고 볼 수 있고 이바노프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라리체프는 누구인가?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 옐레나 페트로브나의 남편이다.
그녀가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가 뭔가?
학회에 이들의 사례를 보고해 초능력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라리체프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는 이들을 사기꾼이라 의심한다. 아내가 망신당하지 않도록 이들의 학회 참석을 막으려 한다.
사기꾼인가?
클랴긴의 투시력은 거짓으로 밝혀진다. 이바노프는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프로호로프의 염력도 사기인가?
그는 좀 다르다. 염력이 있다. 그러나 움직이려는 물체에 대해 적의를 갖고 분노해야만 염력이 발동한다.
학회의 인정은 물 건너간 것인가?
아니다. 아내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라리체프가 이들을 돕는다. 감기 때문에 학회에 참석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이들과 학회에 간다.
학회를 속일 수 있었는가?
관계자를 매수해 시험 과제를 빼돌린다. 클랴긴과 이바노프는 시험을 통과한다. 프로호로프는 전날 과로 때문에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혼자만 탈락한다. 낙담하던 차에 매수 사실을 알게 된다. 매우 분노한다.
분노의 결과는 무엇인가?
모든 사실을 옐레나에게 폭로하려 한다. 라리체프가 말리다 총까지 들게 된다. 마침 현장에서 이 소동을 보게 된 옐레나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옐레나의 반응은?
라리체프는 사랑이라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남편을 감싼다. 프로호로프를 원망하면서 분노가 아닌 사랑의 감정으로 물체를 움직여 보라고 충고한다.
멜로드라마인가?
초능력이 소재지만 주제는 평범한 사랑의 감정이 바로 인간의 진실한 초능력이라는 반어적 메시지다. 코믹 멜로드라마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풍자적 기지와 철학적 사유가 깊은 작품이다.
풍자의 대상은 무엇인가?
1980년 봄, 소련은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사회주의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거리를 화려하게 치장했다. 국가 차원에서 초능력자를 발굴, 육성하던 정책도 이러한 겉멋의 소산이었다. 이 국가사업을 풍자한 것이다.
이 작품의 철학 사유는 무엇을 묻는가?
고린은 동시대인의 고독과 자아 상실, 정체성 혼란을 그린다. 세 초능력자가 옥신각신하면서 만들어 내는 갈등은 현대인이 처한 실존 문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고린은 누구인가?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러시아 극작가다.
어떻게 명성을 얻었나?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글을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텔레비전 코미디쇼에 고정 출연해 자신의 유머 작품을 낭독했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고린의 유머는 무엇이 특별한가?
일회적인 휘발성 유머가 아니라 세련된 플롯과 위트 있는 대사에 사회성 있는 테마와 철학적 사유가 녹아 있었다. 그와 비교할 만한 극작가나 풍자 작가가 없을 정도였다. 답답한 시대에 그가 선사하는 웃음은 대중에게 산소와도 같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백승무다. 연극 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