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원잡기
2506호 | 2015년 3월 24일 발행
조선, 실록에는 없고 잡기에는 있는 것
박홍갑이 옮긴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조선 인물의 진면목
서거정은 당대 인물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적었다.
실록에서 알 수 없는 것을 잡기에서 만날 수 있다.
조선 초 인정과 풍물, 인물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이만한 자료가 없다.
“공간공(恭簡公) 허성(許誠)은 성품이 고집스러웠다. 일찍이 이조판서가 되어 공사를 행할 때 공도를 지켰으니 뇌물이 오지 않았고, 사람들의 청탁을 싫어하였다. 청탁이 있으면 반드시 원하는 반대로 해주었다. 어느 조정의 관리가 자리를 옮겨 지방관으로 발령 나게 되었을 때 남도에 가기를 청하니 도리어 평안도 변방으로 보냈고, 한 문사가 문관의 화려한 벼슬을 청하니 도리어 지방의 교수직을 주었다. 흥덕사(興德寺)에 일운(一雲)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권모술수가 많았다. 단속사(斷俗寺)에 가서 살려고 거짓으로 호소하기를, “소승이 들으니 서도(西道)의 영명사(永明寺)는 산수의 승지라 하니 가서 한번 머무르고자 합니다. 만일 단속사로 가게 되면 소승의 일은 다 그르치게 됩니다” 하였다. 수일 만에 비답이 내려지길, “일운은 단속에 머물러라” 하니, 일운이 크게 웃으며 “늙은 도둑이 내 꾀에 빠졌도다” 하였다.”
≪필원잡기≫, 서거정 지음, 박홍갑 옮김, 120쪽
≪필원잡기≫는 어떤 책인가?
서거정이 쓴 한문 수필집이다.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시중에 떠돌던 한담(閑譚)을 채록했다.
어떤 내용을 실었나?
제목처럼 붓 가는 대로 주위에 널린 이런저런 사실을 모았다. 역대 창업으로부터 공경대부들의 도덕과 언행, 문장과 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 국가 전고(典故), 떠도는 민간 풍속,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까지 자유롭게 기록했다.
우리가 봐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조선 초기의 인정과 풍물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역시 그의 저작인 ≪태평한화골계전≫과 함께 설화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설화 문학이라면 소설인가?
채록한 것이지만 꾸며낸 옛이야기보다는 실화에 가까운 내용이 많다.
≪태평한화골계전≫과의 차이는 뭔가?
≪필원잡기≫의 내용이 더 격조 있고 품위 있다. ≪태평한화골계전≫이 전형적인 소화집이라면 ≪필원잡기≫는 좀 더 고상한 수필집이다.
형식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제목 없이 짤막한 내용을 차례로 이어 간다.
이야기의 연원은 어디인가?
서거정은 ≪역대연표(歷代年表)≫, ≪동문선(東文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같은 국가 편찬 사업을 두루 관장했다. 문형 혹은 경연 시독관으로도 오래 활동했다. 후세에 남길 만한 자료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한문 수필은 언제 나타나는가?
신라 때로 볼 수 있다. 혜초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나 최치원의 ≪쌍녀분(雙女墳)≫이 초기 작품이다. 이후 고려 말부터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이제현의 ≪역옹패설(櫟翁稗說)≫ 같은 작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선에는 어떤 것이 있나?
서거정의 ≪필원잡기≫·≪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가 대표적이다.
서거정은 누구인가?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이자 학자다. 1420년에 태어나 1488년에 사망했다. 자는 강중(剛中) 또는 자원(子元)이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다.
조선은 그의 문장을 어떻게 평했나?
“덕을 이루고 공을 세웠으며, 바른말로 세상을 가르치고 임금께 간했다”고 칭송한 것은 어세겸이었다. 신위는 그를 초당 사걸에 비유했고, 허균도 그의 문장에 매혹되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이 꼽는 이 책의 묘미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깃거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다. 특히 당대에 한가락 했던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많아 흥미롭다.
당신은 누군가?
박홍갑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