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악몽 같은 보드빌”
새벽 2시, 아직 잠들지 못한 당신에게 권합니다.
잠이 안 와 컴퓨터를 켰습니다. 메신저에 남은 몇 안 남은 사람 중에 당신의 대화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밤새 쫓기는 꿈을 꿔 자고 나면 더 피곤하다고 했죠. 그래서 쉬 잠들지 못한다구요.
일이 바빠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벌써 여러 달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 또한 당신의 악몽과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결혼식 당일 이른 아침, 한 남자는 말을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나무에 걸린 밀짚모자를 먹어버리죠. 모자를 찾기 위해 쫓아온 두 남녀는 그를 다그칩니다.
모자를 찾아야만 결혼할 수 있습니다.
종일 쫓깁니다. 옛 애인을 만나고, 테너로 오인받아 노래를 부르고, 하객들은 그를 따라 동분서주합니다.
모자를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외젠 라비슈의 희곡 ≪이탈리아 밀짚모자≫(1951)입니다. 이야기는 시종 긴박합니다. 급전환되는 장면은 주인공을 매번 내달리도록 만듭니다. 연이은 황당한 사건들은 우습기까지 합니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달리면서도, 한자리에서 맴돕니다. 악몽에 시달리는 우리의 경험과 맞닿습니다. 영화감독 ‘르네 클레르’는 그래서 이 연극을 ‘악몽 같다’고 했나봅니다.
연극이 공연되던 첫날, 한 관객은 너무 웃다가 졸도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처음 발표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젠 라비슈의 연극이 사랑받는 이유죠. 그의 작품은 현대적인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단조로운 현실을 과장된 표현과 대비해 희극적 재미를 주죠.
당신의 악몽을 위로해 줄 작품이 될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엔 푹 잠들 수 있길 바랍니다.
200자평
프랑스의 희극작가 라비슈가 보드빌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해 작가적 명성을 획득한 초기 대표작이다. 극 중 가요를 삽입해 관객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었던 보드빌(vaudeville)의 성격을 잘 보여 주면서 라비슈는 오해의 요소, 부조리하고 예상치 못한 황당한 상황들을 작품 속에 배치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지은이
외젠 라비슈는 1815년 파리에서 부유한 식료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서 학업을 마칠 무렵 작고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에 정착해 1888년 작고할 때까지 파리와 솔로뉴 지방 저택을 오가며 집필 생활을 했다. 그의 창작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나폴레옹 3세의 등극과 제2제정 시기에 해당된다. 왕정 시대의 지지자이며 권력의 지배 계층으로 부상한 시민계급, 부르주아 계층이 정치,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제2제정 사회에서 라비슈는 동시대의 관중, 연극에 열광하는 관중을 위해 작품을 썼다. 작가는 특히 무역업자, 제조업자, 은행가, 건설업자, 공증인, 법률가, 건축가, 투자가 등 근대 산업 직군들에게서 작중 인물들에 대한 영감을 부여받았다. 그의 희곡들은 수량 면에서 무척 방대하지만 대략 두 가지 영역으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는 환상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작품들로 보드빌과 소극(farce)이 여기에 속하고 두 번째는 사실성에 근접한 희극(comédie)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 <이탈리아 밀짚모자>(1851)를 비롯해 <까마귀 사냥>(1853)은 협업자 마르크 미셸(Marc-Michel)과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1860년 에두아르 마르탱(Eduard Martin)과 협업한 작품, <페리숑 씨의 여행>(1860)을 발표한 이후 4년은 그의 화려한 작품 경력이 펼쳐진 시기다. 라비슈 작품의 정점에 해당되던 이 시기에 발표된 주요 작품들로 <눈에 낀 먼지>(1861), <샹보데 정거장>(1862), <사랑하는 셀리마르>(1863), <판돈 상자>(1864), <나>(1864), <표적>(1864)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영미권에서 <천연자석(Lodestone)>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 <표적>은 콩피에뉴 궁전에서 초연되어 나폴레옹 3세와 왕비 외제니의 찬사를 받은 라비슈의 후기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결혼에서 돈이 사랑이나 인격보다 중시되는 프랑스 사회의 천박한 물질주의를 하나의 게임처럼 풍자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결혼 문제를 통해 동시대인의 냉소적이고 사악한 일면을 그려 낸다. 특히 부르주아 중산층의 권태와 속물근성이 묘사된 1막 전면에서는 근대 부조리극의 전형으로 불리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에 도입된 살롱 드라마의 진경이 펼쳐진다. 라비슈가 1870년대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혼 외 애정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사랑하는 셀리마르>에서도 남녀 삼각관계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외적인 시각에 불과했다. 반면, 대표작 <세 명 중 가장 행복한 사람>(1870)과 <그것을 말해야 할까요?>(1872)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남편과 애인이 벌이는 이야기의 내면을 철저히 파헤쳐 보여 주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들의 미천함을 눈부신 유머로 깨닫게 해 준다. 1830년대를 풍미한 스크리브의 ‘잘 짜인 극’의 창작 기법을 계승한 라비슈는 1850년대 이후 소극의 활기찬 연극 장치들을 동원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치밀한 극 구조를 포함시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극도의 사실성으로 투영해 희극의 새로운 경지를 발전시켰다.
옮긴이
장인숙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수학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 연극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3년 현재 수원과학대학 공연연기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기와 연극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 이탈리아 근현대 희곡을 중점적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유럽 연극의 실기(연기, 연출)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연출가들≫(공저), ≪아리안느 므누슈킨과 태양극단의 공동창작 연극≫이 있으며 역서로 ≪바르바와 오딘극단의 연극 여정≫, 라비슈의 희곡, ≪이탈리아 밀짚모자≫, ≪표적≫, ≪페리숑씨의 여행≫이 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나타난 인물의 변형적 특성>, <보드빌의 극작술 연구>, <작크 코포의 연극 교육 : 실천적 의의와 방법>, <골도니의 연극 개혁: 쟁점과 양상>, <조르지오 스트렐러의 연출 미학>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등장인물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파디나르: (방백으로) 맙소사? 클라라… 옛날 여자친구! …내 결혼식 하객들이 문 앞에 있소! (큰 소리로, 출입구 쪽을 향해) 거기들 계시죠? 잠깐만요… 곧 갈게요….
클라라: (그를 제지하며) 아! 당신이군요… 아니, 어디 있다가 오셨어요?
파디나르: 쉿! …조용히 …그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소뮈르에서 왔소.
클라라: 6개월 만에요?
파디나르: 그래요… 승합 마차를 놓쳤소…. (방백으로) 하필 여기서 만나다니!
클라라: 아! 그렇군요! …그래서 여자들을 마차에 태우고 다니시는군요.
파디나르: 쉿! 조용히! 착오가 좀 있었소, 인정해요….
클라라: 좀이라구요? “샤토 데플뢰르에 같이 가자…”라고 하셨죠. 길을 걷다가… 소나기가 내리니까… 삯마차를 부르지 않고, 어떻게 했죠? …파노라마 골목으로 들어갔죠.
파디나르: (방백으로) 맞아… 그때 난 치사한 놈이었어.
클라라: 그러더니, “여기서 기다려, 우산을 사 올게…”라고 말씀하셨죠.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6개월 만에… 나타나셨군요… 우산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