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시인 조병화에게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은 곧, 시였다. 그는 스스로의 말처럼 “살아 있는 시인으로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평생 ‘말의 힘’을 찾기 위해 시를 읽고 썼다. 그의 시가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집부터 마지막 시집까지 수천 편이 넘는 시편들 속에서도 그는 줄기차게 생의 본질과 근원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철학적 사유에 의존하지 않으며 심각성이나 근엄한 시적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반면에 난삽하지 않은 보편적인 정감을 통해 언어를 다루어 내는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만남, 헤어짐, 고독, 사랑, 죽음 의식, 어머니 등 그의 감정의 주류를 이끌어 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시 속에 끌어안는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드러낸다.
이 평범한 ‘진리’ 속에는 독자와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절대적 원천인 ‘진실성’이라는 미립자가 가득 차 있다. 이것이야말로 비교적 그의 시가 읽기 쉽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대한 대답이자 시인이 기다리던 독자 반응의 촉매제가 된다. 시인은 개인의 존재 의식에 대한 기록’이자 ‘스스로의 역사’인 자신의 시를 통해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그가 추구해 온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이자 고독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그 자각 속에서 얻는 자기 확인의 여정이었다. 그런 만큼 조병화의 시는 느낌의 세계다. 지성이나 오성의 세계가 아닌, 감성이 그 저변에서부터 생산해 내는 지성과 오성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느낌, 그 느낌으로 공감하는 장소이자 세계인 것이다.
200자평
조병화는 1949년 첫 번째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통해 문단에 나왔고, 데뷔 이후 첫 시집에서부터 마지막 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까지 무려 53권의 창작 시집을 발표했다. 이는 2012년 현재까지 국내 시인들 중 가장 많은 개인 창작 시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폭넓은 문학 세계를 98편의 시에 압축해 실었다.
지은이
조병화(趙炳華, 1921∼2003)는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부친 조두원(趙斗元)과 모친 진종(陳鍾) 사이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미동공립보통학교(渼洞公立普通學校)를 거쳐 1943년 3월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보통과 및 연습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이과에 입학해 물리, 화학을 수학했으며, 이후 1945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 3학년 재학 도중 귀국했다.
1945년 9월부터 경성사범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면서 교단생활을 시작해 인천중학교(仁川中學校, 6년제) 교사, 서울중학교(6년제) 교사로 재직했다. 1949년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을 출간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시론을 강의했으며, 1959년 서울고등학교를 사직하고 경희대학교 조교수를 시작으로 부교수·교수를 지내게 된다. 1972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고, 1981년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 1982년도엔 인하대학교 대학원장과 부총장으로 재직했다.
1986년 8월 31일 정년퇴직을 하기 전까지 이와 같은 교육자로서의 공적과 문학사에 남긴 커다란 업적을 인정받아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명예철학박사, 중앙대학교와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또한 아세아문학상(1957), 한국시인협회상(1974), 서울시문화상(1981), 대한민국예술원상(1985), 3·1문화상(1990), 대한민국문학대상(1992),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1996), 5·16민족상(1997) 그리고 세계시인대회에서 여러 상과 감사패를 받았다.
국내 문단에서도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면서 동시에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 제4차 세계시인대회(서울, 1979) 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세계시인대회에 한국 대표 또는 단장으로서 수차례에 걸쳐 참석했으며, 이 대회에서 추대된 계관시인(桂冠詩人)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 P.E.N. 이사로 1970년 국제 P.E.N. 서울대회에서 재정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시뿐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유화전 8회, 시화전 5회, 시화?유화전 5회 등 여러 차례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엮은이
김종회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과 주간을 맡아 왔다. 현재 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국제한인문학회의 회장으로 있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평론집으로 ≪위기의 시대와 문학≫, ≪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 ≪문학의 숲과 나무≫, ≪문화 통합의 시대와 문학≫, ≪문학과 예술혼≫,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맡은 경력과 관련해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으며 그 결과로 ≪북한문학의 이해≫(전 4권) 및 ≪북한문학 연구자료 총서≫(전 4권)와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전 2권) 및 ≪해외동포문학 전집≫(전 24권) 등을 엮은 바 있다.
차례
≪버리고 싶은 유산≫
탄생
탈피
숲길
계절풍
한 송이 꽃
肖像
길
羅氏 일가
옛 엽서
해변
≪하루 만의 위안≫
하루 만의 慰安
落葉끼리 모여 산다
호올로
오히려 비 내리는 밤이면
落葉樹 사이길을 걸어간다
回想
꽃·BEGONIA
토요일의 하늘은
一九五○年
午後 七時
하늘
우산을 접고
≪패각의 침실≫
샘터
薔薇와 盜賊
바다의 少女
人形
海峽의 아침
女人
봄
거미가 사는 果樹園
薔薇의 祝盃
酒店·에트란제
찬란한 꽃다발은 없이
回路
黃昏
≪인간 구도≫
人間 構圖
당나귀
길을 걷자
≪사랑이 가기 전에≫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가랑닢 내리는
한 떨기 요란스러운
도시와 문명의 틈바귀에 끼어
무더운 여름밤
당신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나 돌아간 흔적
가을은 당신과 나의 계절
내 마음 깊은 곳에
沙漠
마음의 터전이 무너지듯이
헤어진다는 것은
가을이 오면
당신이 없는 침실은
마침내 깊은 안개가 개이듯이
≪서울≫
비
早春
서울 한구석
소멸하는 것과 생존하는 것
가을의 계단을 내리면
≪밤의 이야기≫
밤의 이야기·20
밤의 이야기·47
≪공존의 이유≫
바람
스스로의 외로움을 위하여
공존의 이유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이 世上에서
片紙
왜냐고 묻지 마오
얼굴
어딜 가느냐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椅子
≪가을은 남은 거에≫ 이후
가을은 남은 거에
시간
당신이 주신 눈물 다 쓰곤
남남·28
안개로 가는 길
어느 존재
나귀의 눈물
슬픈 바람을 주는 여인
산사
늘, 혹은
길은
황홀한 모순
낙타의 울음소리
어느 노인의 회고록
내일
개구리의 명상·1
시간의 속도
등불
아내의 방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의 귀향
먼 약속
서로 그립다는 것은
나무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기다림은 아련히
따뜻한 슬픔
詩를 살다 보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
세상에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읍니다
작은 소망도 까닭도 없읍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읍니다
아세아 동방 양지 바른 곳
경기도 안성 샘 맑은 산골
산나물 꿀벌레 새끼 치는 자리에
태어
서울에 자라
당신을 만나 나 돌아가는 흔적
아름다움이여
두고 가는 것이여
먼 청동색 이끼 낀 인연의 줄기줄기
당신을 찾어 세상 수만 리 나 찾어왔읍니다
까닭도 가난한 소망도 없읍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읍니다
이 세상은 사랑의 흔적
두고 가는 자리
사랑이 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이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수만 리
소망도 까닭도 없이
그저 당신 곁에 잠시 나 있으러 나 찾어왔읍니다
-<나 돌아간 흔적> 시 전문.
●
인생처럼 반짝이고 있는
물 건너 저 등불들,
등불은 먼 나그네의 그리움이런가
쉴 새 없이 달려 온 나의 길은
머지않아 연락선이 와 있을
바다에 다다를 것이러니
아, 인생이 나그네
내가 찾는 것은 항상 먼 곳에
남아서
가도 가도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부른다
아직도.
-<등불> 시 전문.